젠트리피케이션, 동네는 떴지만 우리는 슬프다

[프레시안 books]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뉴욕 금융의 중심부로 일컬어지는 맨해튼.

이곳 남부 예술인의 도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동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떠돌이의 도시 바우어리(Bowery)가 나온다. 구호소가 밀집했던 이곳에 1970년대 들어 뉴웨이브(New Wave, 대중음악계에서는 속칭 1970~80년대 전자 음악과 펑크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일련의 새로운 팝 경향을 일컫는다) 세대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바우어리 315번지의 클럽 '흥겨운 음악 미식가를 위한 컨트리, 블루그래스, 블루스와 기타 음악(Country, Bluegrass, Blues and Other Music for Uplifting Gormandizers)', 즉 CBGB에 둥지를 들었다. 이곳은 곧바로 언더그라운드 대중문화의 성지가 되었다. 반항기 넘치는 예술인이 몰려들면서, 바우어리는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간이 더 흘러 21세기 뉴욕, 바우어리는 다시금 변화했다. 바우어리 스트리트는 이제 고급 레스토랑과 베스트 웨스턴 호텔을 비롯한 관광지가 넘치는 고급 동네로 탈바꿈했다. 하루 10달러짜리 싸구려 여관이었던 선샤인 호텔은 이제 한 끼에 30달러가 넘는 고급 요리를 파는 바우어리다이너라는 식당으로 변했다. 아직 바우어리는 노숙자의 도시이지만, 이제 이곳의 상징은 2005년 문을 연 뉴뮤지엄현대박물관이다.

낡은 도심이 특정한 계기로 인해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가 몰리면서 원주민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바우어리의 변화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신촌은 저 변화의 단계 너머까지 완료했고, 홍대와 이태원은 바우어리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홍대, 이태원은 이미 각지의 힙스터가 몰리는 세계적인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곳의 변화를 이끈 이들은 변화한 옛 서식지를 버리고 을지로, 북촌, 성수 등 새로운 곳을 탐구한다. 이중 한 곳이 대세로 뜬다면, 그곳 역시 성격이 바뀔 것이다. 이미 이들 지역에는 어마어마한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베를린, 도쿄의 신주쿠 등도 모두 이런 현상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이 현상의 원조 격이자, 지금도 가장 활발히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이제 우리가 옛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브롱크스(Bronx), 할렘(Harlem), 브루클린(Brooklyn)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 차별의 상징이었고, 뉴욕의 어두운 현실을 상징했던 이들 도심은 현재 젊은 뉴욕, 자본이 몰리는 뉴욕을 상징하는 '힙'한 곳으로 변했다. 원주민은 쫓겨나고, 중산층 백인이 몰려들었고, 관광객이 이들을 따라왔다.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DW 깁슨 지음, 김하현 옮김, 눌와 펴냄)은 뉴욕 시민 28명과의 인터뷰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생생한 얼굴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책이다. 전문적 용어나 학문적 정의는 없다. 부동산 개발 업자, 동네 토박이, 노숙자, 은퇴한 사업가의 이야기를 전하고, 이들의 말을 통해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 뉴욕 시민이 생각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자연히 이들은 자기 입장에 맞춰 변화하는 뉴욕을 이야기한다. 구고신의 말대로,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바뀌기 때문이리라.

한참 힙스터의 동네로 탈바꿈 중인 브루클린의 부동산 개발 업자는 자기 동네에서 이제 흑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난뱅이 동네를 채웠던 흑인의 빈자리는 백인이 메운다. 그러나 자수성가한 흑인인 그는 "브루클린이 개발돼 쫓겨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느냐"고 되묻는다. 고향에 남을 재력을 가진 그는 여전히 브루클린의 원천은 변화한 게 없다고 믿는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테러리스트의 공격 때문에 사람들이 뉴욕을 떠나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끝날까 봐 두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 곳이 다른 이는 상반되는 이야기를 한다. 시민 단체 소속 변호사는 자본이 시민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며 열변을 토한다. 5대째 브루클린에서 살아온 토박이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새로운 중산층)이 지역 사회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며, 자기가 알던 동네가 쓸쓸히 해체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더 큰 시각으로, 길거리 예술가들은 이제 뉴욕이 창의적인 예술가를 반기지 않는, 자본가의 도시로 변했다고 한탄한다.

각자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자본이다. 자본이 도시를 휩쓸고, 자본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질서가 세워진다.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세입자와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어가는 할머니는 "자본이 뉴욕의 모든 걸 망쳤다"고 한탄한다. 정반대에서는 물론, 자본의 힘을 도시의 힘으로 해석하며 뉴욕의 매력은 지금도 성장한다고 찬양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과 관계를 맺은 방식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을 정의"하는 셈이다.

책은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세계의 수도' 뉴욕 시민의 다양한 삶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허나 곁가지로 지나치게 빠지는 이야기도 많아, 주제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난점을 극복해야만 한다.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DW 깁슨 지음, 김하현 옮김, 눌와 펴냄.) ⓒ프레시안
책을 덮고 나면, 한국에서 가장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되새겨보게 된다. 아니, 이건 단순히 서울의 홍대, 이태원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도시에서 모두 자본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경북도청이 들어서는 안동시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이야기, 판교로 옮겨가는 IT 자본의 영향에 따라 테헤란로에 공실 빌딩이 늘어난다는 이야기, 상수역 부근까지 확장한 '홍대 문화'가 포화에 이르자, 이제 망원동으로 번졌다는 이야기, 문래 공장터에서 새로운 예술 공동체를 모색하던 젊은 독립 예술가들이 을지로 공장터를 찾는다는 이야기…. 첨단의 주체가 누구냐가 다를 뿐, 이 끊임없이 변동하는 흐름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힙스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야기가 됐다. 세계적인 힙스터의 도시로 떠오른 포틀랜드에서는 시민 단체가 모여 집값 올리기 거부 운동,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반대 운동 등을 이어갔다. 이들은 젊은 예술가들의 집합소를 자본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 의식을 지금도 붙들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할머니 베아는, 저자에 따르면 "개인이나 기업이 재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보다 지역 사회의 튼튼함과 개방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만이 뉴욕의 "진정한 시민이 되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물론, 저자의 말이 정답이 아니라 여길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자본의 흐름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계속해서 새롭게 바꾸고, 그 변화가 여전히 뉴욕다움을 만드는 정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선 곳은 어디인가. 당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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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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