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좀먹은 힙스터들, 다음 타깃은 이태원?

[프레시안 books] 'n+1'의 <힙스터에 주의하라>

몇 년 전 내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이 전형적인 힙스터 문화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불과 작년 말이다. 물론 뉴욕에 도착한 직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사실 그 느낌은 아무 대도시나 젊은이의 구역을 방문할 때마다 휴대 전화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느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때가 2010년 여름 베를린에서였다. 그곳에서 내가 지냈던 곳은 동베를린의 깊숙이,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과 학생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한, 원래는 이민자로 가득한 가난한 동네였다.

그곳은 확실히 매력적인 동네였다. 밤이면 술병을 깨부수며 싸우는 노동 계급 백인들의 술집 바로 옆에 유기농 초콜릿을 얹은 와플을 파는 카페가 있었다. 늦은 밤길에는 모여앉아 술을 마시는 가난한 터키인과 새로 생긴 바를 찾아 헤매는 중산층 백인 젊은이들이 뒤섞였다. 그 동네의 아직 상업화되지 않은 거친 풍경은 문화적인 젊은이들의 진짜(authenticity)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그런 것들이 동베를린에는 널려 있었다. 풀밭에 숨어 있는 무허가 클럽, 강가를 따라 들어선 히피를 연상시키는 문화 공동체, 곳곳의 낙서로 가득한 무단 점거된 건물들, 공터에 늘어선 캐러밴(caravan) 공동체…. 어느 날 룸메이트가 집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여기저기서 몰려든 아이들이 맥주를 들고 베란다에 늘어섰고, 룸메이트가 말했다.

"몇 년 뒤 여기도 완전히 달라질 거야. 윗동네처럼 완전히 여피 동네가 되어 있겠지. 그때가 되면, '야 그 때 우리가 여기 있었다니까' 하고 말하게 되겠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느끼던 그 이상한 느낌의 정체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도시를 불태우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젠가 유행에 민감한 일본인들을 비꼬아 '문화적 화전민'이라 부른 적이 있다. 나는, 한손에 맥주를 든 채로 베란다에 늘어선 우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몰려든 젊은 애들이 도시의 동쪽을 불태우고 있었다. 처음은 미테(Mitte)였고 그 다음은 프리드리히스-하인(Friedrichs-hain)이고, 그 다음은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그리고 이제 노이쾰른(Neukolln)이다. 나는 5년 뒤 이 동네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국적인 바와 레스토랑들과 함께 여행객들이 밀려들어오고, 집값이 오르고, 가난한 사람들은 오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유기농 슈퍼마켓이 들어오고, 아메리칸 어패럴, 스타벅스, 자라와 에이치앤엠(H&M)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최전선에 이 착하고 보기 좋은 젊은 애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울의 홍익대학교 앞에서, 뉴욕의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윌리엄스버그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미션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서 구글을 헤맸고 곧 고급 주택 단지화(gentrification)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의 관련 항목에 덤이라도 되듯이 힙스터라는 단어가 딸려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힙스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그 단어가 몇 년 간 내가 겪은 것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뭔가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위에 적은 것처럼 2010년 말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힙스터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다. 비트닉/히피 문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까 힙스터 하면 나는 팹스트블루리본 맥주와 아메리칸 어패럴의 브이넥 티셔츠 대신에 노먼 메일러와 잭 케루악 전후 샌프란시스코의 보헤미안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2010년 힙스터라는 말은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멋진 용어가 아니었다. 그건 빈티지 셔츠를 입고 좀 더 '힙'한 것을 찾아 뉴욕의 다운타운을 헤매는 젊은 애들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 <힙스터에 주의하라>(n+1 지음, 최세희 옮김, 마티 펴냄). ⓒ마티
놀라운 것은 그 힙스터와 관련된 것들을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그것들이 내가 너무 잘 알고 익숙한 것들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나를 괴롭히던 이상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낸 것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저렇게 모두에게 놀림을 당하는 멍청한 짓들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는 사실에, 그 모든 것이 전형적인 힙스터 경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얼떨떨해졌다. 사실 그것은 꽤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 책 <힙스터에 주의하라>(n+1 지음, 최세희 옮김, 마티 펴냄)을 읽는 것은 힙스터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쌓는 기회라기보다는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을 과연 잘 알고 있다며 재확인하는 경험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힙스터란 뭔가. 그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생겼고 어떤 짓들을 하는가. 책에 따르면, 힙스터 문화는 1999년에서 2003년까지 (특히 북미-뉴욕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 동안에 왕성하게 태동한 하위 문화를 뜻하며 2003년 후 널리 대중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복고풍의 커다란 뿔테 안경, 아메리칸 어패럴의 브이넥 티셔츠, 스키니 진이 이제는 완전히 대중화된 전형적인 힙스터 스타일이다.

힙스터 문화의 기원은 인디, 보헤미아, 펑크 등으로 지칭되는 1980~90년대의 문화적 경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젊은) 문화적 경향들은 처음에는 급진적이며 반문화적인 성격을 띠지만 결국 상업화를 거쳐 '패션'이라는 종착역에 닿게 된다. 같은 일이 힙스터 문화에서는 더욱 빠르게, 더욱 근본적으로 일어났다.

한마디로 힙스터들은 더 이상 창조적이며 젊은 반문화/하위 문화가 태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의 반문화/하위 문화를 패션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최첨단 소비 집단이다. 누구보다 까다롭고 앞서있는 문화 소비 집단으로서 이들은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을 취향 판단으로 환원시킨다. 즉, "오바마는 힙하고, 부시는 구리다." 삶의 모든 영역이 같은 취급을 당한다.

힙스터들은 삶의 모든 영역을 소비자로서 대한다. 즉, 자신을 표현해줄 '힙'한 품목을 마치 백화점의 구매 담당자처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모으는데 삶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된 순간 깜짝 놀라 도망치듯이 다음 품목으로 옮겨간다. 윌리엄스버그는 더 이상 힙하지 않아, 부쉬위크로 가야지, 부시위크는 더 이상 힙하지 않아, 베를린으로 가야돼, 애니멀콜렉티브는 더 이상 힙하지 않아, 제임스 블레이크를 들어야 해, 1980년대는 더 이상 힙하지 않아, 1990년대가 힙해….

그러니 힙스터 세계에서 삶의 모든 영역은 패션이 되어버린다. 아니 새로운 패션을 위해서 현실을 액세서리로 만든다. 이것은 그들이 하층 계급의 현실을 심미적으로 착취하는 데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노동 계급들이 마시는 맥주,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사는 지역의 날것인 풍경, 빈티지에 대한 애호, 언뜻 이 모든 것은 타자들에 대한 열린 태도로 느껴지지만 힙스터들은 오직 그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타자로 남아있을 때에만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니 그들이 타자들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깊이 매료되었건 아니건 자본에 의해 착실하게 점령되어가는 슬럼가에서 이 아름다운 타자들이 내쫓기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쫓아내는 운동의 맨 앞에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힙스터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힙스터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한 논평을 싣기 시작했다. 그 중 몇몇 논평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하나같이 분노와 절망이 너무 커서, 아니 그 분노와 절망을 전혀 정제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의아해졌다. 뭐랄까, 힙스터가 모두에게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처럼 보였던 것이다.

사실 힙스터를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다. 왜냐하면 힙스터처럼 만만한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힙스터란 잭 케루악의 인용구를 상황에도 맞지 않게 줄줄 늘어놓는 허세를 부리는 머저리들, 잠깐 놀다가 얌전히 여피가 될 그런 비열한, 유행이나 쫓아다니는 부동산 업자와 광고 업자들의 첩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내가 힙스터에 대해서 물었을 때 힙스터가 뭔지 아는 사람들은 즉시 힙스터가 얼마나 얼간이 같은 놈들인가 끝도 없이 욕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건 마치 요즘 화가 난 한국인들이 모든 것에 대해 이명박 때문이라고 욕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이렇게 힙스터에 대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일수록 힙스터 문화에 누구보다 익숙한, 진정한 힙스터들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힙스터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때의 문제가 사실 이것이다. 힙스터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힙스터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즉 힙스터에 대한 논의 자체가 그대로 힙스터 문화에 포섭되고 그것을 증폭시키고 그것을 소비하는 최신 경향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힙스터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이라기보다는 온갖 유행하는 품목이 진열된 상점의 쇼윈도에 가깝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분석을 하다보면 그 온갖 진기한 품목들에 매료되거나 혹은 그것들을 모두 묘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결국 논의 자체가 힙스터 품목을 늘어놓은 또 하나의 쇼윈도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이 책은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문제 모두를 피해가는 데 실패했다. 아마도 책 자체가 힙스터 문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밀도 높고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자, 이제 힙스터를 한 번 다뤄봐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식의 준비 운동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저 온갖 낯선 힙스터 품목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핵심적 문제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힙스터 문화에 생소한 독자들은 저자들이 내키는 대로 나열한 힙스터 품목 사이에서 말 그대로 길을 잃게 되고, 힙스터 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책 전체를 새로 나온 화장실 유머 책처럼 낄낄거리며 소비해버리는데 그친다. 좀 더 사정이 낫다면 뒤늦게 힙스터 세계에 뛰어든 야심찬 초심자에게 그 세계의 핵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의 역할을 하게 되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이 함정들을 피해가는 데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미 나는 너무 많은 힙스터 목록을 나열했고, 하지만 아직도 반도 나열하지 못했다는 조급함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긴 리스트를 완성하는 것으로 독자들을 힙스터라는 존재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멍청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 부질없는 희망을 포기하고 마무리를 짓겠다. 힙스터 현상은, 그것이 만약 한 권의 책으로 논의해야 할 만큼 중요한 뭔가라면, 뉴욕 다운타운에 모여앉아 특정 음악을 듣고 특정 옷을 걸친 백인 젊은이들에 한정되는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힙스터는, 최신의 소비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해낸, 최신 유행 목록으로 우회해서만이 '나'라는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초상이다.

끊임없이 최신 소비 목록을 갱신하지 않고서는 파산해버리고 말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 문제를 온 몸으로 표현해내는 순진한 어린애들이다. 그런 애들은 비단 뉴욕이나 런던뿐이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그들이 아메리칸 어패럴의 브이넥 티셔츠를 입지 않고 아이폰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힙스터가 아닌 것이 아니다. 초국적 자본주의의 단일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얼마간 힙스터들과 같은 위기에 빠져 있으며 비슷한 머저리 짓을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홍대 앞이나 뉴욕의 브루클린에 좀 더 순도 높게 응축된 형태로 존재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응축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저런 문제와 성가심이 있다고 해서 이 한심한 멍청이들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이 책의 산만한 논의 속에서, 힙스터들의 그 정신없는 겉모습 속에서, '힙'한 문화 상품의 범람과 그것의 끊임없는 갱신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이 포스트모던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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