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 박근혜와 유승민의 전쟁

[주간 프레시안 뷰] 박근혜, 유승민에게 이기고 국민에게 진다!

작년 한 해 대통령이 두려워한 사람은 누구?

설 연휴가 지나고 총선이 이제 두 달 앞으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총선의 관전 포인트를 야권의 분열, 격전지에서 여야의 승패, 새누리당의 180석 혹은 200석 획득 여부 등에 맞추고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의 싸움이 저에게는 가장 흥미진진하고 또 한국정치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봅니다.

지난해 '주간뷰'를 시작할 때부터 말씀드렸듯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문재인이 대표로 당선된 이후 야권의 분열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수 있는 몇 번의 찬스가 있었지만, 문 대표는 그 기회들을 놓치거나 일부러 잡지 않았습니다. 야권의 분열이 어차피 불가피한 것이라면, 공천을 적당히 계파별로 나눠먹는 것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나아보입니다.

야권의 분열이 새누리당에게 큰 승리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야권이 분열했다고 해도 영호남에서는 여야의 성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호남에서 새누리당은 많아야 2석, 야권도 영남에서 잘해야 3~4석이 늘어날 뿐입니다. 그나마 서로 상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호남에서는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경합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의당이 몇 석을 얻든지 여당 의석이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호남 다당제는 지역에서 건전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충청과 수도권입니다. 그래서 국민의당은 창당대회를 대전에서 열었습니다. 하지만 충청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여전히 10%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운찬 전 총리에 대한 합류 요청에는 아직 답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의당에는 충청권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충청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일어나리라고 보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결국 수도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구에서는 어느 한 편으로 야권 표의 쏠림현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중앙당이 나서지 않더라도 개별 후보자 간 단일화는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국민의당이 중앙으로 확장한다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간의 3파전이 유의미한 지역구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새누리당의 싹쓸이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어느 한 정당에게 국회를 좌지우지하게 할 만큼 표를 몰아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거 전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일이 가까울수록, 새누리당의 완승이 점쳐질수록 견제 심리는 강화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분열이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180석을 넘어서 국회를 장악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힘들어질 것입니다. 새누리당 내부가 분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규모는 제법 커서 정부 법안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180석을 얻는다 해도 30석만 반발하면 청와대는 국정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단 한 명만 이탈해도 사실상 선진화법을 무력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는 30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총선이 지나면 바로 대선 일정이 시작됩니다. 차기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시점부터 역산해보면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의 임기를 1년 남짓 밖에 남기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설령 야당이 폭삭 망한다 해도 여당 안의 야당이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작년에는 그 쪽이 역할을 더 잘했습니다.

작년 한 해, 박근혜 대통령이 두려웠던 사람이 문재인, 안철수였을까요, 유승민, 정의화였을까요? 저의 총선 관전 포인트는 여기에 있습니다.

유승민을 과연 살려둘 것인가?

여론조사만 보면 유승민 의원이 이재만 동구청장을 여유있게 앞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무성 대표가 강조한대로 상향식 공천만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는 공천관리위원장을 자기 뜻대로 임명하지 못했습니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친박계는 이한구 의원을 내세웠습니다. 서청원, 이인제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는 강경했습니다. 그러자 김무성 대표는 한 발 물러났습니다. 작년 유승민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최고위원들의 일괄 사퇴로 인한 지도부 붕괴 압박 카드가 통했을 것입니다. 김무성 대표의 정치인생은 거기서 끝입니다.

이한구 위원장은 내정 이후 "부적격자, 저성과자, 비인기자를 잘라내겠다", "상향식으로만 하면 조폭도 후보가 될 수 있다"며 현역의원에 대한 사전심사를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유승민에게 모아졌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난 11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CBS 인터뷰가 소개됐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면서 언론들은 제목을 "유승민, 저성과자 아니다"로 뽑았지만 저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저라면 "유승민, 무조건 된다고 할 수 없다", "유승민이 뭐 대단한가"로 정하겠습니다. 그 편이 사실에도 부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이한구 위원장이 어떤 현역의원들을 심사해서 탈락시킬 수 있다고 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 여당에서는 일부 예를 들어서 양반집 도련님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정당이기 때문에 야당과 꼭 대립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요새 개혁 과제 같은 거. 추진할 때 보면 일을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게 또 뒤에 앉아서 전혀 다른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야당편인지 우리편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누가 들어도 유승민입니다. 그래서 인터뷰 진행자는 유승민 의원을 직접 거명해서 물었습니다.

"◇ 김현정 : 원내대표 시절에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그래서 대통령 뒷다리를 잡았던 사람으로 얘기들 하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 같은 분, 그런 분이 결국 이 범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가.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 이한구 : 지금 저는 당헌 당규에 따라서 거기서 정한 기준 내에서 일을 해야 돼요. 제가 그냥 아무나 붙들고 잘라라 마라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 김현정 : 그 기준에 따르면 유승민 의원은 어떤 기준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세요?

◆ 이한구 : 아니에요. 그리고 유승민 의원은 뭐 대단하다고 유승민 의원에게만 하는지 모르겠네요.

◇ 김현정 : 왜 이 질문은 드리느냐 하면, 시중에서 저성과자를 걸러내는 게 결국 유승민 컷오프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 이한구 : 그러니까 그것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해서 언론에서 보도를 해야죠.

◇ 김현정 : 말이 안 되는 얘기군요.

◆ 이한구 : 유승민 의원이 보통 사람들 판단에 저성과자입니까?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 김현정 : 저성과자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훨씬 많지 않나요.

◆ 이한구 : 글쎄, 그런 걸 거기다가 연결을 시켜요. 유승민 의원은 무조건 된다? 그것은 제가 얘기를 못 해요. 그건 또 제가 얘기를 못해요. 그러나 그건 위원회에서 결정을 하는 거니까 제가 함부로 뭐라고 못 하는데, 최소한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저성과자냐. 내가 알기로는 아니거든요."

이한구 위원장은 유승민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성과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진행자 입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한구 위원장의 속내는 "유승민 의원은 뭐 대단하다고 유승민 의원에게만 하는지 모르겠네요"에 있습니다.

적어도 마지막 문단을 보면, 이한구 위원장은 유승민을 저성과자로 보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한 듯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답변에서 그 반대를 읽었습니다. 접속부사만 하나 넣어서 제가 이해한 대로 마지막 문단의 문장의 순서를 바꿔볼까요?

"제가 함부로 뭐라고 못 하는데, 최소한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저성과자냐. 내가 알기로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유승민 의원은 무조건 된다? 그것은 제가 얘기를 못 해요. 그건 또 제가 얘기를 못해요. 그러나 그건 위원회에서 결정을 하는 거니까."

이렇게 순서를 바꾸면 이한구 위원장이 하고 싶은 말이 잘 드러납니다. 이 위원장은 여기서 '그것은 제가 얘기를 못해요'를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유승민이 저성과자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유승민이 공천을 받느냐? 그것은 나는 얘기 못한다. 위원회에서 결정하니까'라는 뜻입니다.

유승민을 살려두려면, 친박이 그렇게까지 해서 이한구를 고집했을까요? 유승민을 살려줘서 이한구 위원장이 청와대로부터 들을 말은 간단합니다.

"유승민 공천하라고 시킨 줄 아세요? 그 분이 관심 있는 지역구는 단 한 곳입니다."

▲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이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예비 후보 등록을 알리며 소개한 자신의 선거용 명함. ⓒ유승민 의원 페이스북


유승민은 선거의 여왕을 잠재울까

설마 그렇게까지 무리하겠느냐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유승민 원내대표를 밀어낼 때는 어땠습니까? 사실상 여당이 쪼개질 판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대통령께서는 본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아주 잘 기억합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3년 만에 '그년'이라는 말을 대통령에게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최경환 부총리가 '진박 마케팅'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유승민을 살려둔다면 우리 대통령께서 과연 참으실 수 있을까요?

문제는 유승민을 밀어 냈을 때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꼭 유리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한다는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포기할까요?

저는 개성공단 폐쇄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대통령은 아마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대구 공천이 서울하고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지역구에서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일 뿐입니다."

어떤 영화들을 보면,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자기 몸을 해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겁을 주려고 옷을 훌렁훌렁 벗기도 합니다. 분노를 확실하게 표출하고, 정말로 복수만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나 외교를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민심을 살피고 상식을 갖춘 세력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국민에게 좋습니다. 정치를 분에 못 이겨서 상대를 이길 수만 있으면 좋다는 권력게임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외교가 상대 국가가 있는 게임이듯이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임입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발전한 곳은 해양 상업국가 고대 그리스였습니다. 거기서는 배를 국가에, 선장을 정치인에, 물을 국민에 비유했습니다. 선장은 자기 마음대로 배를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좋은 선장은 물길을 잘 보는 사람입니다. 배를 어디로 몰지 결정하는 사람은 정치인이지만 그 배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사람들은 국민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에게 이기고 국민에게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선 직후부터 지체된 레임덕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저 국정 혼란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야당이 제 역할을 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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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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