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무명용사 1535구 재검증, 멈춰라!

[주간 프레시안 뷰] 형제의 묘역을 위하여

'형제의 상'

용산 전쟁기념관에 '형제의 상'이 있습니다. 인민군인 동생과 국군 장교인 형이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상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에 박규철, 용철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해방이 되었고, 형 규철은 남한에 내려왔다가 분단이 되자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형은 국군 8사단에, 동생은 인민군 8사단에서 배속되었습니다. 이 두 부대는 죽령에서 만나 격렬한 전투를 치릅니다. 형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치열한 전투 중에 형 규철이 몇 발짝 뒤에서 추격하던 인민군이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전날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 '이 불효자식아!' 하는 호통을 들어서였을까요, 규철은 죽이지 않을 테니 고개를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땅에 엎드린 채로 힐끗 고개를 돌린 얼굴은 동생이었습니다.

"용철아, 형이야!"

동생은 형의 품속으로 뛰어 들었고, 형은 동생을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전쟁기념관 '형제의 상'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 형제의 상.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무명용사의 유해 1535구

국방부가 동작동 국립 서울 현충원에 화장되어 안치된 무명용사의 유해 1535구에 일부 적군 유해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현충원 밖으로 내 보내기로 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적군을 아군으로 판정했다는 의혹을 국회와 언론이 제기했고, 전직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개연성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적군의 유품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거나 아군의 유품을 놓아두어서 아군 유해로 속이는 일은 잘못입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방부의 말처럼 적군과 아군의 유해가 섞일 수 있고, 적군의 유해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유해를 다루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전쟁의 고통 속에 숨져간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산골에서 숨진 분들의 유골을 60여 년이 지나서 모시는 과정에서, 이것을 성과로 보고 신원을 조작해서 실적으로 올리려고 한 일은,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나쁜 종류의 일입니다.

군의 요체는 명예에 있다고 여기는 나라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보도자료나 발표하고 끝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장관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도 용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기는 포위된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도주해버린 일본 헌병 출신의 군단장이 후일 쿠데타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이 되고, 그 일로 빼앗긴 한국의 전시작전권에 대해 죽을 때까지도 환수 반대를 외쳤으니 한국군은 명예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더 큰 일은 국방부가 1535구의 유해를 쉽사리 들어내겠다고 한 것입니다. 화장된 유골함을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안장된 분들입니다. 이것은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꺼내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과지상주의라는 괴물과 파시즘적 반공주의의 결합

이 사건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일입니다.

60년 만에 햇빛을 본 전사자의 소속을 실적을 위해 바꿔치기 할 수 있다는 발상에는, 성과지상주의라는 괴물이 야기한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적군 유해가 몇 구 섞여 있을 수 있으니 1500여구가 넘는 안장된 유해를 일단 모두 현충원 밖으로 들어내자는 발상에는, 돌아가신 분의 인격을 존중하기보다 사자(死者)에게도 사상과 소속을 먼저 따져 묻는 파시즘적 반공주의의 망령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명예 따위 눈앞의 실적과 바꿔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땅에 묻기 전에 소속을 먼저 따져 묻는 비정한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현충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위한 국립묘지이기 때문에 아군과 적군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아군만 모셔야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에 현충원에서 반출한 유골을 재조사 한다고 해서 이들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반출될 유골 1535구에 대해 유전자 감식으로 아군과 적군을 가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전하는 이유에 대해서 국방부는 ‘만에 하나라도 적군 유골이 현충원에 안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아군이 적군으로 오인되어 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한다면, 그 분들의 유해를 60년 만에 발굴하여 더 큰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번 일은 국방부가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관련자를 징계하면 될 일입니다. 일부 적군의 유해가 있을 수 있지만, 증거가 상실된 데다가 이미 화장까지 된 지금 유해를 재조사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분들의 유해를 현충원 밖으로 재안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것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성과지상주의와 파시즘적 반공주의의 광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산 자들에게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죽은 자들까지 고통스럽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형제의 묘역

6월이 되면 간혹 읽게 되는 중학생의 편지가 있습니다. 전쟁 당시 동성중 3학년이었던 학도병 이우근의 옷 속에 있던 편지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우근 학생은 이 날 전투에서 전사했고, 편지는 부쳐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읽을 때마다, 인민군에서도 어머니의 상추쌈과 고향의 옹달샘을 그리던 어린 군인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유해 발굴의 과정을 보면, 실제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한데 엉켜 싸우다가 포탄에 맞아 한 구덩이에 그대로 나란히 잠들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깊은 골에서 우연히 아군과 적군이 한데 묻혔다면, 그 분들은 살아서의 시간보다 죽어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셨을 것입니다. 살아서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지만, 이제는 전쟁도 이데올로기도 없는 곳에서 오래 함께 산 늙은 형제처럼 지내고 계셨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소속이 불분명한 유해가 함께 발견되었을 경우, 아군 유해로 확신할 수 있는 경우에만 현충원에 안장하고, 불분명한 경우에는 '합동전사자 묘역'을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형제의 묘역'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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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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