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신발 신어본 국회의원이 보고 싶다"

[주간 프레시안 뷰] "실패한 보통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되나?"

'인재 영입'의 진짜 문제, '성공 신화'

1월 내내, 여야는 인재 영입 경쟁을 벌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총선을 앞두고 으레 벌어지는 '쇼'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정당들이 내부에서 인재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선거 때마다 밖에서 사람을 수혈하는 것은 모양새도 좋지 않고 정당 정치 발전에도 심대한 악영향을 줍니다.

영입을 급하게 서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군사독재에 영합한 과거 전력이나 비리를 저지른 인사들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습니다. 방송 등을 통해 어차피 자기 편으로 알려진 사람, 과거에 당적을 보유했던 사람들을 새로운 인물인 것처럼 영입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쇼라도 좋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에서 정치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늘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니까요. 실제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도 뭔가 새로운 듯 치장하는 것 자체를 두고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불법이 아닌 이상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인재 영입'의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이른바 '성공 신화'입니다.

'성공한 엘리트'가 없어서 야당이 어려웠나?

여야에서 영입된 '인재'들을 보면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성장 배경, 활동 분야, 성별과 심지어 학력에서도 다양성이 보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성공한 엘리트' 입니다.

한 달 동안 인재 영입 이슈를 뜨겁게 달군 더불어민주당은 총 20명을 영입했습니다. 기업의 임원과 CEO 출신이 5명, 고위 관료 및 청와대 출신이 4명, 교수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3명, 판사, 변호사 등 법조계가 3명, 시민단체 대표급이 3명, 그 외에는 영남 지역의 광역시 의원이 1명, 아나운서 출신 청년이 1명입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동안 이런 사람들이 없어서 야당이 어려웠던 것인가요? 그래서 한국정치가 문제였습니까?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는 아닌가요?

많은 시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늘 소통의 부족과 다양성의 미흡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원망이었고, 특히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야당에게는 더욱 뼈아픈 비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입은 그런 지적을 반영한 것인가요?

요컨대, 문제의 진단과 그 해결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시민들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없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정치권에 냉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은 새로운 엘리트들로 당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게 맞습니까?

'실패한 보통 사람'은 대표가 될 자격이 없을까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을 개척한 성공한 엘리트의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고향이 호남에 고졸 출신이면서 여성인 양항자 씨의 경우는 가장 극적입니다. 그런데 양항자 씨가 '고졸, 여성, 호남'이어서 영입된 것일까요? 아니면, '고졸, 여성,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임원'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양항자 씨는 "학벌의 유리 천장, 여성의 유리 천장, 출신의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노력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지역 차별, 학력 차별, 성적 차별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공동으로 노력했다가 지금도 실패하고 있는 분들은 '인재'로 영입된 양항자 씨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이 야당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당일까요?

양 씨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문제에 대해 유가족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유가족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삼성이 충분히 노력한 것을 봤다"고 신뢰를 보냈습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선 "기업과 컨센서스 형성"이 선결 과제라고 말합니다. 다시 묻고 싶습니다. 야당은 '기업과의 컨센서스 형성' 부족 때문에 지금까지 어려웠습니까?


▲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연합뉴스

'성공 신화'는 과거의 유물일 뿐

1970~80년대, 우리 사회는 '성공 시대'였습니다. 아무개가 고학을 해서 명문대학에 가고 고시에 합격을 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뉴스'가 된 것은 반대로 그런 일이 대단히 드물다는 것을 뜻합니다. 양항자 씨가 0.01%의 사례라면 같은 조건을 가진 나머지 99.99%는 그렇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의 '성공 신화' 신드롬은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이야기한 '공정한 자본주의의 신화'의 전형적인 한국판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내용이 다르기는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사람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엘리트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엘리트'들입니다. 성공한 엘리트의 신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입된 인사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건전한 식견을 갖고 있고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정책적 전문성을 가진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정치도 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야당이 정책 정당이 되지 못한 것이 과연 전문가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문제는 그 전문가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소리에 얼마나 민감하게 귀 기울여 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책으로 배울 수도 없습니다. 이전에 그런 경험을 충분히 갖고, 시행 착오를 반복해보고, 그러면서 익혀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정책적 아이디어를 가졌다는 것과 정치적 해결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기업에서 성공한 방식으로 정치에서도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정책을 정치적으로 성공시키려면, 공적 영역에서 문제의식을 투영하려고 실천해보고, 실패를 경험하고, 시민적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본주의와 다른 논리의 공공의 사고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세계 각국의 정당들이 10대, 20대부터 정치인들을 육성하고, 그래서 40대가 되면 20년 이상의 '공적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좋은 정치인이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감의 능력'

정치는 물론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전문성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는 다릅니다. 소통의 능력, 갈등 조절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이 정치적 전문성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공감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 3월, 고(故) 신영복 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셨습니다.

"대상을 그 사회적 연관 속에서 파악하는 관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파악하는 사람,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이다. 눈은 발 딛고 있는 자리에 의해서 그 시각이 결정된다. 승용차를 타면 버스의 횡포에 속상하고 버스를 타면 도로공간을 사유화한 승용차에 속상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골목에서 세상을 걸어가고 자기의 솥에서 밥을 얻을 따름이다."

대학에서 시민교육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입니까? 많은 경우 '소통 능력'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해력, 판단력이라는 답변도 있지만, 거개가 '공감'이라는 답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실 정치적 인간의 기본 덕목으로서 '공감의 능력'에 대한 강조는 동서양을 통틀어 오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공자는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을, 맹자는 '타인의 불행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정치의 필수적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흄이 정치적 도덕률의 기본으로 '공감(sympathy)'를 언급했습니다. 서양 속담에서는 남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것을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합니다.

올해 1월 정치권에 영입된 분들 중에서, 남의 신발을 자주 신어보신 분들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인물은?

실제로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인물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는 작년 11월, 시민참여형 원탁토론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를 개최했습니다. 토론회에는 "우리 힘으로 정치를 바로 세워보자"는 시민 80명이 참여했습니다.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으로 소통 능력, 다양성, 정치소신, 상생, 전문성 키워드가 다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키워드를 토대로 시민이 그려낸 이상적인 국회의원 후보는 취업, 결혼과 출산,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다시 협동조합을 통해 일을 시작한 평균 연령 39세의 여성이었습니다.

"우리는 1973년생 여성, 평범한 엄마와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다해일 후보'를 출마시키기로 했습니다. 다해일 후보는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은행에 근무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게 되면서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며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남편의 외벌이 한계를 넘어보려 빚을 내 빵집을 차렸습니다. 한창 장사가 잘 되던 중, 근처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겼습니다. 조금씩 손님이 줄더니 이제는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고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빵집을 운영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평범한 엄마와 지역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다해일 후보가 출마한 이유입니다. 소상공인살리기, 공공육아서비스 확충 같은 정책을 실현할 것입니다. 슬로건은 '엄마가 잘할게' 입니다."

"여성 국회의원이 있더라도 교수나 관직을 거치고 40~50대 넘어서 정계 진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육아정책이나 이런 걸 논할 만한 다양성을 가진 젊은 여성이 필요합니다."

다해일 후보를 출마시키고 싶다던 남성 참가자의 말입니다.

물론 다해일 후보가 당선되어서 곧바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여성정책, 보육정책, 출산정책, 노동정책에 전문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 그 정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는 사람이 다해일 후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토론에 참여한 시민들은 성별, 계층, 지역, 세대적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50대 이상의 남성, 법률가, 관료, 학자 출신들이 시민들의 삶을 체감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가정, 마을, 지역 공동체,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들이 여의도에 진출하기를 바랐습니다.

탁월성과 유사성의 조화를 기대해봅니다

총선 직전 벌어지는 각 정당의 외부 인사 영입 및 정치 신인 공천 경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매 선거 국면마다 물갈이론이 제기되었고, 현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초선 의원은 168명으로 그 비율은 56.0%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해도 국회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물이 그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거는 결국 유권자의 마음을 잡아야 이깁니다. 유권자들은 더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진심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대표로 원합니다. 전문성을 가진 성공한 엘리트도 필요합니다. 소위 '탁월성'을 가진 대표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대표도 필요합니다. '유사성'을 가진 대표들 말입니다.

<대의정부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노동자의 대표가 반드시 노동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여야가 영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인지 정당들은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충분치 않다면 2월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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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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