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에서 정도전(김명민 역)은 토지대장을 불태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정치, 정치가 무엇이요?"라고 묻는다. 혼자서 답답해하기만 할뿐인 나와 달리, 드라마에서 정도전은 정치에 대해 아주 명료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정치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요.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요. 정치의 문제란 결국 누구에게 거둬서 누구에게 주는가의 문제요."
드라마와 달리 현실 정치는 그리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말로 치장한다고 해도 결국 정치의 본질은 얼마나 잘 나누고 분배했느냐 하는 것이다. 조세의 적절성과 정부 재정을 활용한 복지의 수준이야말로 정치가 얼마나 잘 작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일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삶을 바꾸는 정치'
며칠 전에 대전 보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대전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월례세미나가 열렸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인 이상구 선생이 '지방 정부의 복지국가 정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나는 이 강연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절실한 강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앙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방 정부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충분히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솔깃했던 것은 대전시 예산에서 주민 생활과 관련된 예산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과 비교해서 매우 작다는 것이었다. OECD 국가들의 경우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조금 다르지만, 기초자치단체는 전체 예산의 80∼90% 정도를 주민 생활 지원과 관련하여 지출한다. 선진국이 된 뒤에도 여전히 토목과 건설에 우리나라처럼 많은 예산을 지출하는 국가는 대표적인 토목 국가로 손꼽히는 일본 외에는 없다고 한다.
지난 2015년도 대전시 예산은 구청 예산을 포함해 5조 8980억 원이나 된다. 사용처별로 보면, 주민 생활 관련 예산이 57%, 토목 건설 예산 20%, 그리고 기타 인건비 및 운영비 등이 23%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 토목과 건설 등 지역 개발 관련 예산의 비중이 적고, 평균 30% 수준에 불과한 주민 생활 관련 예산의 비중이 월등히 높으니, 대전은 상대적으로 복지 예산의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이상구 운영위원장의 분석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사는 대전시에는 상대적으로 저소득 취약계층의 비중이 높고,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산 비중이 높다. 시가 복지비를 많이 지출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앙 정부에서 지정한 예산이 지방 정부를 거쳐서 집행될 뿐이어서 지방의 자체적인 복지 사업이 많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 복지 지출도 대부분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육,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고정 지출을 줄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중산층을 포함한 대전 시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서 내수를 활성화하는 효과로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경제사회 활동을 역동적으로 지원하고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은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도 배치된다.
대전의 문제에서 대한민국의 문제로
선진국들은 국민 소득이 1만 달러 수준이었을 때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5∼23%를 복지 분야에 지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민 소득 1만 달러 진입 시점 복지 예산 비중은 GDP의 7.4%에 불과했다. 국민 소득 2만 달러 진입 시점에서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GDP의 30%를 사회 복지 비용으로 지출했지만, 우리나라는 2만 달러 진입 시점에서 여전히 10%를 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좋은 일자리가 적은 이유 중의 하나이고, 청년 실업의 중요한 원인이다.
좋은 일자리가 적은 원인을 살펴보면, 대기업의 고용 감소,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안정적인 일자리의 감소, 전체 고용의 50%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의 비중과 낮은 임금, 전체 고용의 5% 수준인 일부 대기업의 정규직을 제외하고 300만 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전반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 등 여러 가지 구조적인 원인들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 개선할 수 있는 공공 부분에서 일자리가 너무 적다는 것도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이다.
선진 복지국가들은 대개 공공 부문의 고용이 전체 일자리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공 부문 고용은 전체 고용의 5%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가 왜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지 아주 쉽게 다가온다. 아동 1인당 보육 교사의 숫자나 유치원 선생님의 숫자도 매우 적고, 초·중·고등학교 교사의 비율도 산정 기준을 실제 수업하는 교사로 환산하면 학생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지금도 13.7만 명이나 부족한 실정이었다.
간호사 등 보건 의료 부문의 일자리는 무려 33만 개나 부족하여 병상 당 간호사 숫자나 환자 당 간호사 숫자가 주요 선진국의 30%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상황에서 의료 산업화를 이유로 의료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워졌다. 내가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고 설명을 들을 시간이 부족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나는 당연히 내가 간병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복지국가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니 속에서 분노가 일어났다.
고용이나 주거, 노후 소득 보장이나 노인 돌봄 등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왜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살아왔는가를 생각하면, 내가 그동안 투표했던 정당이나 내가 당선시켰던 정치인들에게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올해 초의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들의 공식 실업률이 9.2%나 된다고 한다. 10명 중 대충 1명은 실업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을 했으면 취업 상태로 보고, 공무원이나 공기업 입사 준비 등으로 조사 당시를 기준으로 4주 안에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실업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니 실제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작년에 고등학교 3학년인 우리 둘째 아이는 수능 보고 대학에 지원하면서 생물학과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한 목소리로 거긴 취직이 안 되니 공대로 가라고 강요에 가까운 조언을 했다. 그렇게 말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고, 이것이 아이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인 것을 어찌하랴. 어느 나라에 태어나면, 아니 우리나라도 언제쯤이면, 자기의 적성이나 재능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고, 대학 공부를 할 것인지를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을까? 이는 복지국가라면 당연한 일이다.
보통 아줌마는 이렇게 정치에 나서게 됐다
토목과 건설 예산을 줄이고, 주민 생활 관련 예산을 늘리는 것은 아마도 정치의 영역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바꾸기 위해 필요하다면 당장은 국민이 싫어하고 선거에서 표가 떨어지는 "증세"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개선하여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런 방향으로 노력해봐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내게 마침 '복지국가당'이 출범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성공한 엘리트가 아니어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더 나아가 보통 사람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이해하고 공유하는 보통 사람들이 직접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 우리나라가 진짜로 바뀔 수 있다는 주장도 마음에 와 닿는다. 가슴 가득한 열정과 우리나라를 바꾸어 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가득한 내게, 전문 보좌관 제도와 상임위별 전문가 자문단 제도, 그리고 사이버 상임위를 통해 전 당원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당헌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보육과 교육, 주거, 의료, 일자리와 노후 등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정책 제안에 솔깃해졌다. '복지국가당'의 창당 과정에서 지금의 "헬조선"을 만든 기성 정치인들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지난 8년 동안 꾸준히 역동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담론과 정책을 생산해낸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출신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데 믿음이 갔다.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통해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를 통해 침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고 성장의 동력을 복지국가에서 다시 만들어낸다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정책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복지국가당'이라면, 나와 같은 평범한 아줌마도 정치를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서 정도전은 권문세족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소리친다. "당신들은 누구에게 빼앗아왔고 누구의 배를 채웠소이까?" 이어서 정도전은 이렇게 말했다. "밀직부사 나 정도전은 지금부터 정치를 하겠소." 드라마의 대사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에 빨간 물이 들도록 토지대장을 불태우는 600년 전 개경 시장의 불꽃과 같이 나도 현재 우리나라의 '낡은 정치'를 그렇게 불태우고 싶어졌다.
이제 정말 나도 정치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내 아이와 내 아이의 친구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아줌마 나, 지금부터 정치를 하겠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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