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미국이 가장 크게 웃는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아시아판 나토' 장애물 제거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위안부 문제 일한 합의'로 제목을 뽑았다. 기사의 핵심은 아베 수상의 사과나 사죄가 아니라, 아베와 박근혜의 정치적 결단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삐걱거린 한일 관계를 누구보다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라가 미국이다. 중국의 성장과 북한의 위협, 그리고 러시아의 복귀를 목도하면서 미-일-한 동맹의 하위 파트너인 일본과 한국이 서로 불화하는 정세가 워싱턴을 불안하게 만들어왔다.

국제 정치에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엔 별 차이가 없다. 민주당 정권이 전쟁에 더 적극적일 때가 많았다. 오바마 정권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미국 군대는 전쟁을 치르고, 미국 정보기관은 공작 중이다.

지구적 정치(global politics)의 관점에서 이번 '위안부 합의'도 미국 세계 전략의 일부다. 미국의 아시아 귀환 정책은 중국과 북한(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정치군사적 선제 대응 조치다. 아시아 귀환의 경제적 수단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물론 TPP는 중국을 지정학적으로 포위·억제하려는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다.

TPP만으로도 아시아의 정세는 대단히 불안정해지고 있지만, 미국은 TPP를 군사적으로 떠받칠 체제를 맹렬히 추진 중에 있다.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구축이다. 미국은 아시아판 나토에 우선적으로 일본·한국·필리핀·태국·호주를 참가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물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인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지도에서 이들 나라 사이에 선을 그으면 아시아로 향하는 중국의 육상로와 해상로는 완전 봉쇄된다. 미국 본토 밖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인 평택기지와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는 아시아판 나토의 전초가 된다.

아시아 귀환의 완성을 서두르는 워싱턴에게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결정적 장애물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위안부 합의'는 한국에 설치된 미군기지 안에서 그 동안 비밀스럽게 행해지던 생화학세균전 실험을 공식화한 최근의 조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21세기에 매년 시행한 미군과 한국군의 공동 군사 훈련이 한미일 군사 동맹, 나아가 아시아판 나토의 토대를 다져왔다.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집단적 자위권의 부활은 아시아 지역에서 집단 안보 기구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계획과 맞닿아있다. 미국의 이데올로그들은 국가 안보의 측면에서 아시아판 나토의 정치군사적 힘은 중국의 경제적 힘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힘의 충돌과 구조적 갈등은 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적 모순을 심화시킬 것이다.

남중국해, 즉 서태평양의 분쟁에서 미국은 일관되게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 등의 동맹국을 지지해왔다. 독도 분쟁에서도 일본을 편들어왔다. 아시아판 나토의 중추는 일본의 재무장화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은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아시아 집단 안보 기구를 추진해온 미국의 노력에 새로운 생명력과 에너지를 불어넣은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거사 갈등이 한미일 동맹을 인질로 잡고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침해해왔다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속내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9월 미국은 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본 따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만들었다. 미국·호주·뉴질랜드·파키스탄·필리핀·태국·프랑스·영국 8개국이 참가했고, 남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왕국이 이 군사 동맹 기구의 보호를 받는 형식을 취했다. 본부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 두었다.

강력한 반공주의 집단 안보를 기획했던 미국의 의도와 달리 SEATO는 군사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길 거부한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적 결정이 기구의 기반을 흔들었다. 방글라데시가 인도의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결정타를 맞은 SEATO는 1977년 6월 공식 해산했다.

아시아 귀환이라는 미국의 세계 전략 중심엔 일본의 재무장화와 아시아판 나토 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적은 중국·러시아·북한이다. 워싱턴의 바람대로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로 미국의 아시아 귀환은 결정적 장애물을 제거한 것일까. 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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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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