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녀상 제거 등 다 얻었다"

[분석] "아베의 위안부 사과는 '대독 사과'…'최종 해결' 말할 수 없어"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 타결을 선언했지만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와 전문가들은 위안부 문제의 종결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일본 입장을 과도하게 배려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요구한 것이 사실상 모두 관철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28일 한-일 외교 장관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 형식으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메시지를 밝힌 점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직접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대신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힌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며 아베 총리의 사과 메시지를 대독(代讀)했다.

▲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이날 입장 발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범죄가 일본 정부 및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라는 점은 이번 합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관여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사실과 '위안부' 범죄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양현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전까지 일본 측이 '통석(痛惜)의 염'과 같은 표현을 썼는데, 이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런데 무엇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가 빠져있다. 책임 대상이 불분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죄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경북대학교 김창록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베 총리가 사과 메시지를 밝혔지만, 이는 기시다 대신이 대신 읽은 것"이라며 "대독 사과, 실무 사과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번 합의에서 '도의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이 과거와 다른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면서 "책임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지난 1995년 총리의 사과와 금전적인 보상을 약속하며 발족한 '아시아 여성기금' 사업에서, 기금을 수령한 피해자들에게 총리의 서한을 보냈다. 당시 서한에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 총리는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만 언급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기시다 외무 대신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일본 기자들과 만나 "일-한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즉, 법적인 배상 문제는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종결된 사안이며, 따라서 이번에도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인 수준의 책임이라는 설명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

한-일 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不可逆)적인 합의에 도달했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일본은 이미 이번 회담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양현아 교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하려고 했다면, 그동안 피해자와 피해단체들이 주장했던 '사실 인정, 사죄, 배상, 진상규명, 역사교육, 추모사업,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졌어야 했다"며 "이것은 유엔에서도 정립해놓은 문제 해결의 기준인데 이것에 부합하지도 않았으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말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이번 합의에서는 위안부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역사 교육, 책임자 처벌 문제 등이 모두 빠져있다. 특히 진상규명과 관련해 위안부 문제의 타결과는 별도로 역사적 진실이라는 측면에서 학술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이미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선언한 일본 정부가 진상 규명에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김창록 교수는 "법적 책임에는 진상규명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면서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공개해야 (진상규명이) 가능한데, 아베 정부 들어와서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술이 빠졌다"면서 역사적 진실 규명에 아베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정대협은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번 합의를 두고 정부가 최종 해결 확인을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라며 "광복 70년의 마지막 며칠을 앞둔 이 엄중한 시기에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커다란 고통으로 내모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으로는 한-일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선언할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1996년 보고서를 통해 위안소 설치는 국제법 위반이며,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지고 진상규명,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 등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김창록 교수는 "국제사회는 국제법적인 차원에서 위안부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만 판단의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히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고 일갈했다.

일본의 속셈은 평화비 철거?

일본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눈엣가시같이 여겼던 위안부 평화비를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서울 종로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돼있는 평화비는 지난 2011년 12월 14일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1000회차를 맞아 제막됐다.

당시 평화비를 제막했던 정대협은 정부가 평화비 철거 및 이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되를 받기 위해 말로 줘버린 한국 정부의 외교 행태는 가히 굴욕적"이라고 비판했다.

▲ 위안부 평화비 ⓒ연합뉴스

정대협은 "평화비는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1000번이 넘는 수요일을 지켜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평화를 외쳐 온 수요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산 역사의 상징물이자 우리 공공의 재산"이라며 "한국 정부가 철거 및 이전을 운운하거나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일본이 앞에서는 사죄를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평화비 이전이나 철거라는 외교적 목표를 달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한국 정부가 일본 총리의 사죄와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를 얻어내기 위해 과도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창록 교수는 "이번 회담과 결과를 보면, 전체적으로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한국 정부가 문제의 종결을 선언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배려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양현아 교수는 "협상 절차에 문제가 있다. 피해자들하고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타결하면서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 것 같다"며 "1965년 한-일 협정(한-일 청구권 협정)을 졸속으로 처리해서 식민지 책임 문제를 해소한 것과 아주 비슷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정부가 이 문제를 진심으로 피해자 중심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제라도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6개월이든 1년이든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우리 사회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한-일 관계 차원에서도 양국의 공감대를 넓혀갈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와 평화를 위해 해결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있을 때 해결되어야 할 우선 과제이지만, 결코 원칙과 상식을 저버리고 시간에 쫓기듯 매듭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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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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