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만든다며 '옛노래' 부르는 안철수

[시사통] 12월 22일 이슈독털

창당선언문을 읽는 안철수 의원의 목소리엔 힘이 있었습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 대신에 음절마다 힘을 주는 발성으로 메시지 전달력을 극대화하려고 했습니다. '강철수'의 이미지를 힘껏 부각하려고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목소리만큼이나 큰 파열음이 있었고, 메아리는 빈 구멍에서 울렸습니다.

우선 파열음부터 살펴보죠. 안철수 의원은 신당의 정체성을 '낡은 정치 청산과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범국민적 연합체'로 규정했습니다. 안철수 개인의 당이 아니라며 이같이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낡은 정치 청산'과 '정권교체'는 상응하지 않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규정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또한 '낡은 정치'의 온상입니다. '낡은 정치'의 하위 범주에 '낡은 진보'가 들어 있으니까요.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연대하지 않는다고 선 그은 이유가 이것일 텐데,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일관성을 띱니다. 문제는 이 주장이 다른 주장과 만났을 때입니다. 새정치연합과 연대하지 않고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까요? 세 살배기도 다 압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또 하나. 호남 신당 세력들과는 연대 가능성을 열어놔 이들을 '낡은 정치세력'에서 열외를 시켰는데, 이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낡은 정치 청산'과 '정권 교체'가 만나면 파열음이 나고, '낡은 정치 청산'과 '호남 신당 세력 연대'가 만나면 엿가락이 됩니다.

▲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21일 "설 전에 신당의 구체적인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릴 계획"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선거 연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파열음과 엿가락 현상을 가지런히 정돈해 받아들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낡은 정치 청산'과 '정권 교체'를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낡은 정치 청산'에 일로매진해 야권의 패자로 등극한 뒤 이를 토대로 정권 교체에 나서는 접근법이죠.

하지만 현재로선 꿈입니다. 저 혼자 꾸는 꿈입니다. 기존 야권 지지층의 상당수는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호남의 지지 여론이 우세하고, 무당파의 지지 여론이 압도적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여론은 유동적입니다. 전략적 선택 경향이 강한 호남 여론의 경우 안철수 신당이 확실한 대체정당이 아니라 분열정당으로 비칠 경우 지지를 거둬들일 가능성이 있고, 충성도가 낮은 무당파 여론 역시 안철수 신당이 야권에서 대세를 점하지 않으면 지지를 행동화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동성이 큰 지지 기반을 콘크리트층으로 다지기 위해 안철수 의원이 가장 신경 썼어야 하는 게 바로 깃발입니다. 안철수여야만 하는 이유, 신당이어야만 하는 이유, 다시 말해 안철수 신당만의 킬러 콘텐츠를 제시했어야 합니다. '낡은 정치세력은 안 되니까' 청산해야 하고, '이명박근혜 정부는 아니니까'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엄밀히 말해 '안티' 범주 안에 머무는 콘텐츠입니다. 고개 끄덕이게 만들 수는 있어도 심장 뛰게 만들 수는 없는 컨텐츠입니다. 본인의 말마따나 '문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내놓는, 문제를 풀어가는' 뭔가를 내놨어야 합니다. 흔히 '비전'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게 없습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 구멍을 의식했는지 안철수 의원은 '미래를 위한 정권교체',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정권교체', '최고의 인재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권교체', '생각이 다른 사람도 머리 맞대는 정권교체' 등등을 열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저 껍데기 구호일 뿐입니다.

좋게 보자면 '새정치' 구호를 다시 꺼내 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성질서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으로 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데 어쩌죠? '새정치'는 '신상품'이 아닙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했던 2012년이나 정계진출을 알렸던 2011년 때 출시했던 '구상품'이요, '재고상품'입니다. 안철수 의원은 새 정당을 만들겠다며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3~4년간 실천력 검증이 끝난 옛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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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김종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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