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탄저균, 용산기지에도 반입됐다

2009년부터 총 15차례 반입…미군 물품 반입 허점 드러나

지난 4월에 발생했던 주한미군의 탄저균 배달 사고와 관련, 당시 오산기지에서 탄저균 시험을 처음 진행했다는 미군의 해명이 거짓으로 판명됐다. 또 해당 탄저균을 반입하는 동안 사균화(死菌化) 여부에 대한 검사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군 물품 반입 과정에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7일 탄저균 배달사고와 관련해 한-미 공동으로 구성된 '한미 합동실무단'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오산기지 탄저균 실험실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합동실무단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용산기지에서 모두 15차례 사균화된 탄저균 검사용 표본을 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은 이 표본으로 교육훈련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주한미군이 기존에 밝힌 해명과는 다른 내용이라 미군의 '말 바꾸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앞서 주한미군은 지난 5월 29일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탄저균 표본 실험 훈련은 올해 오산기지에서 처음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은 이외에도 당시 탄저균 배송 당시 페스트균 표본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도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합동실무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24일 에지우드화생연구소가 오산기지로 탄저균을 오산기지로 발송하면서 1밀리리터의 페스트균 표본도 함께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합동실무단의 장경수 한국 측 단장은 당시 탄저균 반입 당시 포장 용기 내에 사균화된 탄저균 및 페스트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첨부 서류가 동봉됐다면서, 주한미군에 들어오는 물품은 검사를 생략하고 통과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주한미군의 생물학 탐지·식별·분석체계인 쥬피터(JUPITR) 프로그램의 목적과 반입 때 첨부한 서류, 관련 인원 진술 등을 종합했을 때, 주한미군은 활성화된 탄저균과 페스트균을 반입할 의도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활성화균 반입 의도 없었다지만…사균화 여부도 확인 못 하는 한국

합동실무단의 조사 결과 탄저균 샘플이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정부는 해당 샘플에 대한 사균화 여부를 포함해 유해성 검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샘플은 지난 4월 26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규정에 따라 3중 포장을 거쳐 민간 운송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28일 해당 샘플은 한국 세관에 '주한미군 군용'으로 수입 신고 절차를 밟았고 29일에 오산기지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 세관은 이 샘플에 대해 아무런 제지나 검사를 하지 않았으며, 주한미군 역시 한국에 샘플 반입을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정부가 확인도 하지 않았고 주한미군이 이를 알리지도 않은 이유는 현재 주한미군협정(SOFA)에 미군이 사균화된 검사용 샘플을 한국으로 반입할 경우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경수 단장이 이에 대해 "주한미군은 샘플의 반입, 취급 및 처리 과정에서 관련 규정과 절차를 준수했고 안전하게 제독 및 폐기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주한미군으로 물품이 들어올 경우 해당 물품에 대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탄저균의 '무사 통과'를 가능케 한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장 단장은 향후 대책과 관련,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주한미군이 반입하는 검사용 샘플에 대한 양국간 통보 및 관리 절차 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한미 양국은 17일 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주한미군의 검사용 샘플 반입 절차를 문서로 만든 합의 권고안을 제출했다. 권고안에는 주한미군은 검사용 샘플을 반입할 때 한국 정부에 발송·수신기관, 샘플 종류, 용도, 양, 운송방법 등을 통보하고, 어느 한쪽의 요청이 있을 경우 빠른 시일 내로 공동 평가에 착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관세청이 물품 검사를 희망할 경우 주한미군 관세조사국과 협조해서 합동 검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사태 수습에 급급한 미군…여전히 숨기고 있다

한-미 양국이 탄저균 배달 사고 이후 '사후약방문'식으로 SOFA에 검사용 샘플 반입과 관련한 규정을 마련했지만, 미국이 공개하지 않은 정보가 다수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사가 투명하고 정확한 결과인지를 두고 의심의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다.

우선 미군은 용산기지로 보내졌던 탄저균 샘플의 양과 발송 시기 등에 대해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용산기지에도 탄저균 샘플이 보내졌다는 것은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또 주한미군이 운영한 '주피터(JUPITR) 프로그램'에 쓰이는 독성물질이 15종이 넘는 상황에서, 탄저균과 페스트균 외에 다른 독성물질이 반입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미군이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는 자료에 대해서는 접근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오산기지 외에도 용산기지에 탄저균 샘플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미국이 제출한 실험 관련 자료에서 새롭게 드러났던 것처럼, 합동실무단은 지난 8월 6일 오산기지를 방문해 현장 기술평가를 진행한 것 외에는 대부분의 조사를 미군이 전해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에 조사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군이 합동조사단에게는 선별적인 자료만 제공하면서 탄저균 배달 사고의 파장을 최소화하는데만 급급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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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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