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안철수, 정성을 다하고 있나?

[세상에 없는 영화 속 정치 이야기] 이시이 유야의 <행복한 사전>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만물을 생육시킬 수 있는 것이다."(중용 23장 중)

'오른쪽'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전에는 '북쪽을 향했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으로 되어 있다. '왼쪽'은? '북쪽을 향했을 때 서쪽에 해당하는 방향'이다.

오른쪽을 '숫자 10에서 0이 있는 쪽'으로 정의한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영화 <행복한 사전(The Great Passage)>(2013년)의 주인공들이다.

<행복한 사전>은 미우라 시온의 장편소설 <배를 엮다(舟を編む)>(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펴냄)를 영화화한 것이다. <배를 엮다>는 일본에서 '2012 서점 대상 1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작품이다.

▲ 영화 <행복한 사전> 중. ⓒ배를 엮다 제작위원회

<행복한 사전>은 한 대형출판사 사전편집부 사람들이 중형 사전 <대도해>를 장장 15년에 걸쳐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한 편의 소설과 같다.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액션 신(scene)은 당연히 없다. 그저 사전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이런저런 역경을 이겨내며 사전을 완성하는 길고 긴 장정을 그릴 뿐이다. 담담하지만 온 정성을 다해 세상의 변화를 담고 있는 새로운 단어들을 놓치지 않고 수집하고, 기존의 단어에 삶의 애환과 ('오른쪽'을 새로이 정의했듯이) 창의성을 담은 새로운 뜻풀이를 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회사와 집과 식당이,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대화하고 소통해가며 사전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표정이 주를 이룬다. <배를 엮다>가 우리 삶의 일상을 찬찬히 조망하는 일본의 '사변소설(事變小說)'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사전> 역시 그렇다.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긴 하다. 주인공 마지메 미츠야와 일식 셰프 하야시 카구야와의 연애 스토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 역시 차분하게 그려진다. 옆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한다. 오해도 없고, 갈등도 없다. 시종일관 서로를 보듬어준다.

그러니 <행복한 사전>은 보기에 편하고 푸근하다. 지루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상대방과 관계를 맺고 일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래서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행복한 사전>은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자신의 일과 서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평온해질 수 있음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가령 <행복한 사전>이 들려주는 단어와 사전의 의미는 이렇다. 사전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마쓰모토 편집주간의 말이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어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요.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줄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바로 <대도해>입니다."

창의적인 뜻풀이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흐뭇한 미소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웃음 말이다. 가령 우리 한국 사람들도 잘 쓰는 '사랑'과 '후지다'라는 말의 뜻을 어떻게 풀이했는지 보자(한국어 사전과도 비교해보시라).

사랑(愛) :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 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게 되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후지다(ださい) : 시대에 뒤떨어짐. 촌스러움. 어수룩함. 부끄러울 만큼 주류파. 요컨대 멋이 없음. (용례 : 술취한 프러포즈는 너무 후져)

▲ <행복한 사전> 포스터. 왼쪽이 일본판, 오른쪽이 한국판이다. ⓒ배를 엮다 제작위원회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기자 후배가 <행복한 사전>에 대해 '세상에 없는 영화 속 정치 이야기'를 쓸까 생각 중이라고 하니, 단박에 "재미없다"며 싸늘하게 반응한 적이 있다. 좋은, 혹은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가며 "착하게 살자"고 훈계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행복한 사전>은 (원작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왈가왈부하기보다, 그저 너에게 주어진 일 혹은 네가 선택한 일을 그저 열심히 하며 살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후배의 비판을 수용해 <행복한 사전>의 한계, 아니 그 영화 속 사람들의 '한계'도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점점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세상의 나쁜 것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라는 물음에 '직업윤리'라고 답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설사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실천의 태도가 지금은 오히려 답이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다. 어쩌면 내 삶을 돌이켜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 불혹(不惑)을 훌쩍 넘겨 지천명(知天命)에 닿아가는 때라, 그런지도 모른다. 남이 아닌 나의 눈과 귀에 기울여야 하는 때 말이다. '나'에게 눈길을 주고, 귀를 갖다 대야 한다고 해서 세상의 나쁨이 ('나')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잘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또 이 세상 모든 이가 직업윤리를 망각한 채 살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정치인·교육자·공무원·언론인·출판인·기업인 등의 소임과 그것의 수행 여부를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공인(公人)들이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교기레기(폴리페서)', '관피아(관료마피아)', '기레기(폴리널리스트) 등 새로운 단어가 우리가 바로 그런 현실에 놓여 있음을 잘 알려준다(<행복한 사전>의 편집자들은 이 단어들도 사전에 넣으려고 했을 것이리라). 이런 생각에 비추어 봤을 때, <행복한 사전>은 대단히 현실 비판적인 영화가 아닐까? 누군가를 부정하고 조롱하는 방식의 비판이 아니라, 좋은 삶의 모형을 제시하는 방식의 비판 말이다.

영화 <역린>(이재규 감독, 2014년)에서 정조는 중용 23장을 통치의 원리, 삶의 원리, 세상을 바꾸는 원리로 섬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이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이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이내 생육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만물을 생육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의 현실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원리이다. 변화를 추적하며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사람들의 마음과 열망을 빠뜨리지 않고 담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하는 정치도, 자신이 좋다 여겨지는 대안적 모형의 제시를 통한 비판 모두 찾아볼 수 없다. 서로를 탓하며 서로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제안을 하면서 상대방을 궁지로 모는 정치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은 팀을 깨고 뛰쳐나가거나, 누군가를 팀에서 쫓아내는 정치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도해>와 같은 작품(사전)의 탄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정치일 따름이다. '배를 엮는' 정치의 부재. 내일이 두려운 약자들이 '고통스러운 삶'이라는 바다를 건너갈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유이다.

사전의 정의처럼 창의적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오른쪽도 왼쪽도 모두 '상대적'으로 정의될 뿐이다. 자신을 기준으로 하면 어디가 오른쪽인지, 어디가 왼쪽인지 가늠할 수 없다. 각자의 기준을 정하고, 서로 달리 새로이 뜻을 풀이하면서도 '결국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치', 그것이 필요하다. <행복한 사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근슬쩍' 알려주고 있는 정치 말이다. '정성을 다하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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