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때 MB, 지하 벙커에서 "F-15로…"

[전진한의 알권리] 이동관 전 수석의 유체 이탈 화법

전 고위급 공무원들이 재임 중에 취득한 각종 비밀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팩스 입당'으로 화제가 된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은 얼마 전 본인이 집필한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통 전화, 이른바 핫라인을 통해 수시로 통화했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우리 측 핫라인은 국정원에 있어 24시간 상시 대기했다고 밝혔다.

위 내용은 전형적인 비밀 정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남북 간 신뢰 관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발언이다. 보다 못한 국정원은 자신들이 상사로 모셨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을 국가정보원 직원법(17조 비밀의 엄수)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만복 전 원장의 발언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발언으로 보여 더욱 심각하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장까지 지낸 인사가 새누리당에 팩스 입당했다가 제명까지 당했으니 보는 사람들조차 민망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로 공직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 홍보수석을 지냈던 이동관 전 수석 또한 자신의 회고록 <도전의 날들-성공한 대통령 만들기>에서 지난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당시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공개해 파문을 낳고 있다.

▲이동관 전 홍보수석 ⓒ프레시안
공개 내용을 요약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F-15 전폭기로 원점 타격을 지시했지만, 군 관계자들이 미군과 협의가 되지 않았고, 동종·동량의 무기로 반격해야 한다는 유엔사령부 교전 수칙에 어긋난다며 반격을 반대했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 전 수석은 당시 출격했던 F-15 전폭기에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조차 돼 있지 않았다며 군 지휘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하지 않은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작전 효율성 상 초계전력에는 대체로 공대지 미사일 탑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수석의 비판은 대통령은 강력한 주문을 요구했지만 '군 관계자'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았고, 군 체계도 엉망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며, 연평도 포격전의 대응은 그 자체로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반대를 했던 인사들조차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를 통해 낙점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자 중 한 명이 연평도 포격전에 관한 책임을 군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은 전형적인 후안무치한 발언이다.

책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들을 그대로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군의 무능함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보좌진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당시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우왕좌왕 하면서 아무것도 못한 사이, 연평도는 북한 미사일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군의 무능함에 대해 통탄하기 보다는 당시 포탄에 노출되었던 연평도 주민과 군인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도리이다.

이 전 수석은 자신이 어떻게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 이 전 수석은 "사람이 판단을 잘못 할 수는 있지만,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눈높이로 접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또한 "마이크 잡고 자기 면피하는 얘기를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이 소통이 아니고, 진정성 있게 민초에 다가가는 것이 소통"이라고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관련 기사 : MB맨 이동관, 세월호 책임 망각한 '유체 이탈' 화법)

위 발언들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2010년 디트로이트 공항 테러 미수 사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대국민 연설에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

"제가 남 탓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제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뉴스타파> 2015년 7월 1일)

위 발언처럼 한 정권을 책임졌던 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은 관료와 군을 비판한다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전직 고위인사들의 무책임한 발언들은 매우 위험한 징조이다. 책임 없이 권력만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때 권력을 얻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하더라도 투명성과 책임성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권력을 얻고자 자신의 과거를 왜곡 및 활용하는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 퇴임 후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리더의 자리를 오를 자격이 없다. 한 때 한 정권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자들은 입을 닫고 속세를 떠나 있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는 것을 염두 해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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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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