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비난' 박근혜 vs. '직권 상정 NO' 정의화

朴 "국회 존재 이유가 뭐냐?" vs. 鄭 "입법 비상사태가 뭔가?"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이른바 '대통령 관심 법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지난 9일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종료됐지만 안타깝게도 국회의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되어 버렸다"고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정의화 국회의장은 "비상사태라는데 입법 비상사태라는게 뭐냐"며 직권 상정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와 정 의장 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테러방지법을 비롯한 시급한 법안들이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특히 세계적으로 테러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경제 활성화 법안과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법안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국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내부 문제에만 매몰되고 있는 것은 국민과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17년 만에 노사정 대타협 성과와 일자리를 달라는 청년들의 절규에 응답한 노동 개혁 5개 법안의 경우 임시 국회 개회에도 불구하고 아직 법안 심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노동 5법이 통과돼서 노동 개혁이 본격 추진이 된다면 향후 5년동안 총 37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는데 정치권은 일하고 싶다고 절규하는 청년들의 간절한 호소와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 제조업처럼 재정, 세제, 금융상의 지원 근거를 부여하고 표준화, 전산화 등 서비스 산업의 인프라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왜 이렇게 누구를 위해서 오랜기간 동안 방치돼야 하는지 알수가 없다"며 "서비스 산업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의료 분야가 왜 이러한 지원 대상, 혜택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회의 상황을 심각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과거처럼 여당 단독 처리는 불가능하다. 이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관광진흥법 등 일부 대통령 관심 법안 처리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후 야당을 밟고 지나갔다. 야당에게 참패를 안기고 명분도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일방 처리가 불가능한데, 박 대통령은 연일 국회를 비난하며 여당과 국회의장을 몰아세우고 있다.

새누리당을 여전히 '입법 하수인' 쯤으로 여기는 태도다. 상황이 이러니 친박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의화 "입법 비상사태가 뭐냐?국회법 따라 직권상정 안돼"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은 박 대통령이 언급한 쟁점 법안 직권 상정을 요청하러 의장실을 찾은 친박계 원유철 원내대표,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에게 면박을 줬다.

정 의장은 "여러분들 왔으니 나도 할 말을 좀 하겠다"면서 "18대 국회에서 선진화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나. 그것을 놓고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법 처리가) 안 되는 것을 입법 비상사태라며 여러분이 (의장에게 직권 상정을) 해 달라는 것이지 않느냐"라며 "(그런데 국회 선진화법으로) 안 되게 돼 있는 것을 의장이 어떻게 하나. 의장은 월권 행위를 할 수 없다. 헌법과 국회법에 준해서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양당 합의에서 경제활성화법 등은 합의 처리한다고 되어 있는데, 합의가 안 된 것을 합의된 것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면 비상사태로 해야 되는데, 입법 비상사태라는 게 뭐냐"라고 지적하며 "일반 법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직권 상정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 의장은 다만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전반적인 위기가 오고 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할 수 없다. 내일부터 예비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데, 12월 31일이 되면 여러분 지역이 다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도 지역구 없는 의원이 되고 예비 후보도 간판 다 내려야 한다. 그것이 입법 비상사태가 될 수 있다"며 직권 상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 의장은 친박이 밀었던 황우여 후보(교육부 장관)를 꺾고 국회의장에 당선, 친박 주류 진영에 당혹감을 안겨준 인물이다. 정 의장은 박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 정국 당시 국회법 개정안 해석을 두고도 유승민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외과 의사 출신인 정 의장은 박정희 정부 때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타살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거수기 역할'을 주로 했던 과거 국회의장들과 달리 정 의장은 소신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국회의장 자리라는 게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주목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정 의장이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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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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