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는 '차벽' 대신 '돈벽'이 있다

[여기는 파리 ②] 파리, 혼돈과 분할의 공간

파리에서 진행 중인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절반이 지났지만, 주요 쟁점에서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월요일(7일)부터 각국 장관이 참여하는 고위급 회의가 열릴 예정이지만, 극적인 파리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보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의 '그들만의 회담'이 되고 있는 현장 분위기를 전해 왔다.

"지금 회의장 안은 혼돈으로 가득합니다."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 등 국제 엔지오(NGO)가 각국의 자발적 기여(INDC)를 평가하는 부대 행사에 참석한 인도 정부 대표단의 말이다. 그의 발언은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첫 주가 끝나가지만 고위급 회담을 위한 협상문 초안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2020년에 출범하는 신(新)기후 체제에 전 세계가 참여해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를 했다. 이에 따라 각국이 자발적으로 설정한 목표치를 유엔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느 나라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20년이 넘게 계속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책임 나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 많은 언론 매체들은 기후 변화의 파국을 막기 위한 장기 목표를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2도 상승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이미 결정된 것처럼 전한다. 하지만 총회장 안에서 100개국이 넘는 가난한 나라와 지대가 낮은 나라 그리고 작은 섬나라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2도가 아니라 1.5도로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오래된 논쟁만이 아니다. 총회 거버넌스의 왜곡과 편향이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과 시장이 총회장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시민 사회와 풀뿌리는 배제되고 있다.

매일 아침이면 총회장이 위치한 파리 북동부의 르부르제(Le Bourget)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셔틀 버스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이 총회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총회장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진 그린존(Green Zone)이라고 불리는 시민 사회 공간이다.

총회의 공식 회의장은 유엔이 발급한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반면 그린존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청년들, 노동자들, 농민들, 여성들, 원주민들이 이곳에서 부스를 차리고 회의를 하고 행동을 한다.

처음에는 프랑스란 나라가 시민 사회에 제법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런 첫 인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개도국의 입장을 대표하는 LMDC(Like minded Developing Countries :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같은 아시아 국가들, OPEC 국가들, 남미 좌파 국가 포함)의 말레이시아 대표는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엔지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도국일수록 엔지오의 역할은 더욱 그렇죠. 그러나 그들을 위한 공간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유엔은 몇 년 전부터 행사장이 협소하다는 이유를 들어 엔지오 참가자 수를 제한해왔다. 이 때문에 많은 시민 사회 참가자들이 참관(Observer) 자격으로 총회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시민 사회에 할애된 물리적 공간이 조금 넓어졌더라도,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거리는 더 멀어졌고 그럴 기회는 더 줄어들었다.

그 빈자리를 기업과 시장이 차지했다. 총회장 입구에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공식 후원하는 초국적기업의 로고가 새겨진 배너가 있다. 곳곳에서 이들의 기술과 상품들을 소개하는 홍보물들이 눈에 띈다.

▲ 총회장 입구에 위치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후원하는 기업들의 배너.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시민 사회가 뺏긴 공간 이상으로 기업의 영토는 커졌고 더 깊숙이 들어왔다. 이들은 지금껏 시민 사회가 주장해온 기술과 시장 중심의 잘못된 해결책을 정답이라고 선전해왔다. 보안이 삼엄해진 요새에서 소통과 평등과 정의는 점차 사라지고 불통과 이윤과 유착이 횡행하고 있다.

파리 총회에 참여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Now) 소속의 리디 낙필(Lidy Nacpil)의 논리는 단순명쾌하다.

"우리는 기후 정의를 원합니다. 지금의 저개발 국가의 가난과 기후 변화 영향에는 선진국과 초국적기업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후 부채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기후 부채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다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회의장 안에서는 또 다른 부채, 미래 세대에 대한 부채를 또 만들고 있어요. 오염자들을 기후 협상에서 배제하고 전 세계 시민들의 참여를 늘려야합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기후정의 그룹 소속의 리디 락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1월 30일 총회 개막 연설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이번 회의가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회를 주최하고 있는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도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총회의 성공은 시민 사회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올랑드 대통령이 개막 연설에서 언급했던 기후 정의가 공허하게 끝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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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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