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평양 가면 북핵 문제 해결되나?

[정세현의 정세토크] 변화된 북-중 관계, 미국 따라가는 대북정책 재고해야

지난 13일 <한겨레>는 중국 국무원이 북한과 접경지대인 압록강변 지안(集安)과 두만강변 허룽(和龍)에 국가급 변경경제합작구 건설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북-중 경제 관계가 기존의 일방적인 '지원-수혜 관계'를 넘어서 '상호협력과 연계성 강화' 쪽으로 명확한 방향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소원했던 양측 관계가 회복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미 그런 조짐이 있었기 때문에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도 참석한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북-중 관계가 3차 핵실험 이전과 같은 관계로 복원되고 경제 협력이 가속화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도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정 전 장관은 "경제특구라는 구멍을 통해 북한으로 웬만한 것은 다 들어가게 된다"고 내다봤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도 변화되고 있는 북-중 관계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북정책을 가져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하면 제재하면 되지 뭐'라는 안이하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한다"면서 "우리가 계속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은 제재하면 끝'이라는 식의 대북정책을 끌고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평양행과 관련, 정 전 장관은 "북쪽에서 반 총장의 방문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반 총장이 평양을 가서 성과를 내려면 미국이 평화협정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반 총장 손에 들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할 수 있고, 만나더라도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유엔의 권능이 약해진 데다가 미국의 북핵 정책 핵심인 이른바 '전략적 인내'가 현재 상태로 유지되는 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는 역부족"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근 <한겨레>가 중국 국무원이 북한과 접경지대인 압록강변 지안(集安)과 두만강변 허룽(和龍)에 국가급 변경경제합작구 건설을 승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북-중 경제 관계가 기존의 일방적인 '지원-수혜 관계'를 넘어서 '상호협력과 연계성 강화' 쪽으로 명확한 방향을 잡았다고 분석했는데요.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 관계 경색으로 북한 경제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북한의 중국 예속이 우려됐었는데, 이런 경향이 가속화되는 건 아닌지요.

정세현 : 중국과 북한이 서로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고 봅니다. 지안과 허룽의 경우 중앙정부가 공식 발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해당 지방관리한테 확인을 받았다고 합니다. 중국은 지방에서 일을 저질러 놓고 국가가 불가피하게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전략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북한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해지면 북한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좁아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특구를 통해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체제가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을 우리가 심어줬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그런 역할을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최근 2~3년 사이에 우리가 했었어야 할 역할을 중국이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북한 경제가 너무 어려워지는 것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해서라도 북한 경제가 먹고 살 수 있다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과 같은 조치를 통해 당장 북한은 어려운 경제의 활로를 뚫는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경제를 좀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으로 나가야 하는데, 개혁·개방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인 중국을 '벤치마킹'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러다가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 중 하나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북한의 대(對)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업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과연 중국의 '동북 4성' 중 하나가 될 정도로 끌려들어가게 될까요? 이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만 봐도 그렇습니다. 과거 막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제국 중국 옆에 있으면서도 한반도는 한 번도 '중국화(化)'되지 않았습니다. 중원을 차지하며 한(漢)족을 지배했던 주변 변방 민족들이 많았지만, 이들 국가들은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것과 상당히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대개 중국과 전쟁에서 패배하면 중국에 굴복한 이후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됐는데 한반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중국과 한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국제 정치적인 환경이 있었음에도 독자성을 유지했던 곳이 한반도만은 아닙니다. 베트남도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한 곳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문화적 연원을 생각해봤을 때 북한 경제가 중국으로 기운다고 해서 북한의 중국화가 일어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예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15 정상회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붙어있기 때문에 영토적인 야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막는 방법은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영토적 야심을 가지기 어려운 나라, 예를 들면 미국과 같은 나라를 활용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남북이 손을 잡자고 했다는 겁니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을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인데, 이런 생각을 김정일 위원장만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이건 김일성 주석 때부터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북한이 6.25전쟁 때부터 중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중국-소련 분쟁 시기에 북한이 중국에 보여준 외교 행태를 보면 그냥 엎어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이 강하게 나오면, 다른 힘을 빌려서 견제하면서 한편으로는 실익은 실익대로 챙기려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자국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군사적으로도 찍어 누르려고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너무 먼 훗날의 이야기 같지만 북-중 간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커지는 과정에서 자연히 중국의 의도가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은 견제를 가하기 위해, 소위 '이이제이'를 위해 또 다른 '오랑캐'를 찾을 것입니다.

다만 북한의 중국화는 안될지라도 북한 경제가 중국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 남한 경제가 소위 북한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좁아질 겁니다. 이를 넓히려면 중국을 밀어내야 하는데, 그럴 경우 한-중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과 중국이 이런 식으로 가까워지면 북한을 압박하는 국제적 공조가 사실상 와해되는 것 아닌가요? 지난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제재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이후 북-중 관계가 상당히 나빠졌다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지금 이렇게 북한과 경제 협력을 추진한다는 것은 중국이 국제적 공조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정세현 : 북-중 간 국가급 경제특구가 들어서면 기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제재도 실효적으로 이행되기 어렵습니다. 경제특구라는 구멍을 통해서 북한으로 웬만한 것은 다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 신압록강대교 ⓒ김동수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자원을 가져다가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산업 구도가 굳어지면 북한과 왕래를 끊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대북 제재에 동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미국이 좀 현실을 인정하고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북-중 경제 관계가 이렇게 긴밀해지면 미국의 관점에서 북한이 세계 평화에 도전하는 중대한 도발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제재 자체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서 미국이 망신당하는 것보다 전략적 인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죽하면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역임했던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전략적 혼수상태'로 전락했다고 비난했겠습니까.

프레시안 : 한편으로 이번 조치는 북-중 관계가 이전처럼 되돌아갔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장성택 처형 이후 소원했던 양측 관계가 회복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기 때문에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도 참석한 것 아니겠습니까?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으로 북-중 관계가 사실상 끊어졌다는 분석들이 조금 머쓱하게 된 셈입니다.

중국은 지정학적인 가치 때문에 북한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안으려고 합니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얻어낸 것도 꽤 있습니다.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 등 국경 지역 점유 협상에서 북한이 중국보다 유리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을 봐도 그렇습니다.

백두산의 경우, 1712년 조선 숙종 때 백두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습니다. 이 비석은 백두산 정상에서 조선 쪽으로 한참 내려온 지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1962년 이후 바뀌었습니다. 당시 북한과 중국은 '조중국경선조약'을 체결하고 국경 확정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협의 이후 양국은 동쪽 자암봉에서 서쪽 제운봉을 경계로 백두산을 반분했고, 백두산 천지도 나누었는데 54.5%는 북한, 45.5%는 중국이 차지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압록·두만강의 섬과 모래톱 61개 중 13개는 중국, 48개는 북한이 소유하는 것으로 확정했습니다. 황금평이 중국 쪽에 훨씬 가까운데도 북한 소유로 확정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위화도도 사실 압록강 한가운데 있는데, 이걸 북한 소유로 인정해줬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북한은 땅이 좁으니까 갖고 싶은 거고 중국은 '그 정도야 뭐'라면서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면에는 중국-소련 분쟁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다는 데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북한은 국경 협상을 비교적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이 보다 장기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국의 전략적 판단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에 밀리지 않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얻어낸 것만은 분명합니다.

남북관계, 양안 관계와 비교해보면

프레시안 : 북-중 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에 맞춰서 미국과 한국의 대북전략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세현 : 박근혜 정부도 현재 북-중 관계의 변화상을 제대로 알고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하면 제재하면 되지 뭐'라는 안이하고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방할 수 있다면 예방에 힘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이 제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힘든 국제정치적인 상황이 있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도록 우리 정부가 선도해야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각) 정상 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 회견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한국은 내년 총선, 내후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북-중 관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여든 야든 우리가 계속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은 제재하면 끝'이라는 식의 대북정책을 끌고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8.25 합의에 포함된 남북 당국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대북 전단 문제에 갇혀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로 조건만 내세워서는 회담을 열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북쪽에 예비접촉을 제안했을 때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서신을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 비서 앞으로 보냈다고 하는데,(김양건은 통일전선부장 겸직) 북한은 통일부 장관과 통일전선부장이 회담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전선부장보다 정치적인 서열이 높은 당 비서 앞으로 보냈다고 하니 북한이 이를 받을 리가 없습니다.

프레시안 : 2013년에도 회담 대표의 '격'(格) 문제 때문에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박근혜 정부는 회담 대표의 격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좋게 보면 북한 길들이기로 볼 수도 있지만, 나쁘게 보면 북한과 회담할 의지가 없다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정세현 : 박근혜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남북회담은 이뤄질 수 없는 일을 한 셈입니다. 지금까지 장관급 회담을 스무 번 했는데 박근혜 정부 기준으로 보면 남쪽 통일부 장관의 격이 많이 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남북관계를 개선시킨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북한과 완벽하게 맞는 회담 상대방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체제가 다르지 않습니까?

1990년 남북 총리급 회담 당시 북측 대표단에서 회담 배석 인원 중 안병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장관급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표단의 대변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도 통일부 장관이 회담 대변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평통 서기국장이 우리 측 통일부 장관과 동격으로 회담에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까지 도출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면, 내년 봄쯤에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정세현 : 북한이 수차례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거론했는데 미국이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대북 전단 이야기를 때마다 거론했는데 남쪽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아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북한으로서는 자신을 괄목상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고를 칠 수 있습니다.

1993년 3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 개발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1년 전, 북한은 당시 김용순 당 비서를 미국 뉴욕으로 보내 미 국무부 아놀드 캔터 차관과의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당시 김 비서는 미군 주둔을 전제로 한 북-미 수교를 맺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미국은 북한의 제의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1년 뒤, 북한은 'NPT 탈퇴'라는 강수를 두면서 미국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계속 칭얼거리는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면 장독대를 깨고 덤비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북한이 '평화협정'이라는 열매만 따 먹고 비핵화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북한을 악의적으로 무시하는 전략으로 나가면 북한이 사고 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협상 카드를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이 소위 '벼랑 끝 전술' 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극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남북은 이렇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지난 7일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대만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분단 후 66년 만에 최초의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내년 대만 총통 선거에 야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서 라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누가 대만 총통이 되더라도 양안 관계를 원만히 끌어가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비공식 양안 정상회담을 선례로 만들어 놓으면 민진당 소속 후보가 총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양안 대화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즉 중국이 선제적으로 양안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정세현 : 중국은 대만에 민진당 정부가 들어서서 '대만 독립주의'를 다시 기치로 내걸고 양안 관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싶은 겁니다. 8년 동안 구축됐던 양안 경제 협력 관계가 깨지게 되면, 안 그래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에 또 하나의 문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7일 (현지시각)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양안 정상회담을 진행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 ⓒAP=연합뉴스

대만 경제 역시 중국과 나빠져서 좋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대중 무역이 전체 무역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관계가 나빠지면 대만 경제는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대안을 찾겠다고 동남아로 눈을 돌리자니, 그쪽은 구매력이 약합니다. 중국의 빈부 격차가 크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선 GDP의 총액이 월등하고 1인당 소득 3~4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인구가 1억~2억 명 정도 있기 때문에 대만 입장에서는 놓치면 안되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시진핑과 마잉주는 이런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내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이 아닌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게 만들고 싶은 계산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양안 관계가 흔들리면 대만 경제도 잃을 것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죠. 즉 현재 양안 경제 관계에서 득을 보고 있는 대만의 기득권 계층에게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현재의 양안 관계를 유지하라는.

프레시안 :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대만의 20배라고 합니다. 남한의 GDP는 북한의 거의 40배 정도 됩니다. GDP가 20배 차이 나는 양안 사이에서 중국이 먼저 손을 내민 것처럼,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힘과 역량이 있는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세현 : 그래서 철학이 중요한 겁니다. 중국과 대만도 서로 피 터지게 싸웠는데 지금 저렇게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중국과 대만은 일본에 대항했다는 전통이 공통적으로 있긴 하지만, 이념 갈등은 뚜렷합니다. 국민당은 항일 전쟁 과정에서 공산당과 두 차례 국·공 합작을 했지만 자기들만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국민당만 앞에서 죽어라고 싸우고, 뒤에서 공산당은 항일 전쟁보다는 민심만 챙겼다는 겁니다. 실제 마오쩌둥(毛澤東)이 싸움에 나서는 홍군(紅軍)들에게 전체 역량을 10으로 본다면 항일은 1, 국민당과 합작은 2, 민심에 7을 쓰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 국민당은 대만에 정부를 세우고 나서도 국·공 합작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 체제가 들어서고 중국은 대만에 통우(通郵)·통항(通航)·통상(通商)의 이른바 '3통'(通)을 제안했습니다. 서로 연락하고 왕래하고 경제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이에 대해 공산당과는 접촉하지 않고, 담판하지 않으며 타협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不)'로 맞섰습니다.

이후 1992년에 와서야 양측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라 명칭을 사용(一中各表)' 하기로 합의한 '92공식'을 도출해 냈습니다. 이후 민간 차원의 왕래를 허용하다가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 때 상당한 냉각기를 거쳤습니다. 이후 마잉주 총통은 '대만은 중국과 통일(統)하지 않고, 독립(獨)하지도 않을 것이니, 서로 무력(武)도 쓰지 말자'는 새로운 '3불'을 선언하면서 관계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이랬던 양안 관계는 내년에 다시 기로에 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는 국민당과 같은 노선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수이볜 총통처럼 아예 양안 관계를 막을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애매한 상황에서 양안 관계가 악화되면 미국 역시 이를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 그래도 남중국해 때문에 골치가 아픈 상황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또 하나 늘어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기문 평양행, 성과 내기 어려운 이유

프레시안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반 총장의 방문이 북핵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쪽에서 반 총장의 방문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지금 상황에서 북한을 방문한다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첫 번째 주문은 당연히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북핵 문제 해법은 유엔 사무총장 손에서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이른바 '전략적 인내'의 기본 틀을 바꾸지 않는다면 반 총장이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5일 오후(현지시각) 터키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전략적 인내'의 양대 축은 북한의 '선(先)행동론'과 '중국 역할론'입니다. 북한의 '선행동론'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라든가 핵실험 유예를 선언하는 등의 행동을 먼저 보여줘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나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북한이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중국이 북한을 설득·압박하라는 것이 중국 역할론입니다.

반 총장은 북한의 행동을 끌어내 달라는 미국의 주문을 받고 평양행을 택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 총장이 간다고 해서 북한이 '얼씨구나' 하고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이 공짜로 나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미국이 평화협정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갖고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대화에 나올 겁니다.

북한은 지난 10월 1일부터 17일까지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세 번이나 언급했습니다. 10월 1일에는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7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17일에는 외무성 성명을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한-미 정상이 16일(현지시각)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북한을 압박했지만, 이에 대한 일체의 대응 없이 평화협정 이야기만 했습니다. 이는 비핵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결국 반 총장이 평양에 가서 성과를 내려면 미국이 평화협정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반 총장 손에 들려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대접도 받고 실제 성과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할 수 있고, 만나더라도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유엔이 창설된 이후 유엔의 위상과 권능이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던 냉전 시대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일종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첨예한 대결을 벌였던 미국과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사무총장에 동의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양쪽으로부터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발언권도 높았고 권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엔, 특히 안보리 내에서 미국의 '슈퍼 파워'가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면서 유엔의 기능이 허약해졌습니다. 탈냉전 이후 소련에 이어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미국이 사실상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6대 유엔 사무총장인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가 연임을 하지 못한 사건도 그렇습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한사코 갈리의 연임을 반대했습니다. 당시는 탈냉전 이후였기 때문에 미국의 거부권에 어떤 국가도 토를 달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나 출신 외교관 코피 아난이 사무총장이 된 것입니다.

이런 단적인 상황만 보더라도 유엔은 실질적으로 미국의 지도를 받는 기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회원국들도 유엔의 권능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유엔이 분쟁을 조정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기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이미 유엔의 권능이 약화됐고 사무총장의 역할과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북한이 반 총장 방문에 선뜻 큰 기대를 걸고 거꾸로 반 총장한테 '선행동'이라는 선물을 줘서 미국을 설득할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반 총장이 북한을 설득해서 북한의 선행동을 이끌어내고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합니다. 특히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게 일종의 '프라이드'가 될 수 있죠. 하지만 유엔의 권능도 약해진 데다가, 미국의 북핵 정책이 현재 상태로 유지되는 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엔 역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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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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