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트뤼도'는 어디에 있나?

[주간 프레시안 뷰] "2015년이잖아요!"

"Because it’s 2015"

"2015년이잖아요!"

캐나다 정치사상 가장 역동적인 정치혁명을 이뤄낸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4일 공식 취임했습니다. 그는 첫 내각 30명을 여성 15명, 남성 15명으로 구성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반반내각'이라고 부릅니다. 취임식에서 기자가 묻습니다. 남녀의 균형을 맞춘 이유가 있습니까. 트뤼도가 대답합니다. "2015년이잖아요!" 사람들이 활짝 웃습니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느냐는 듯이 말입니다.

내각 구성도 파격적입니다. 법무 장관이 된 조디 윌슨 레이볼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원주민 출신입니다. 실종되거나 살해된 원주민 여성 1000여 명에 대한 진상 조사를 약속한 자유당의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이번에 임명된 장관 가운데는 아프카니스탄 난민, 성소수자, 테러범으로 오인받아 고문을 당했던 시크교도도 포함돼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장관은 시각 장애인이고, 국방 장관은 지체 장애인입니다. 43살의 트뤼도 총리는 "이번 내각 구성은 캐나다인들의 가치와 우선순위가 정부에 반영되길 바라는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은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캐나다는 우여곡절 끝에 미래를 향한 2015년의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사실 이 칼럼을 쓰면서 저는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습니다. 거대 양당 기득권체제를 바탕으로 과거로 향하고 있는 한국 정치를 글로 쓰는 일은 참 어렵고 지루합니다. 의외성도 상상력도 결여된 기득권 집단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일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제게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페이스북에 가끔 글을 올리면 "아직도 야당에게 기대하는 게 있느냐"는 비판이 댓글로 달립니다. 저도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정치에 희망이 있긴 한 겁니까.

그러던 차에 텔레그램을 통해 친구가 캐나다 정치뉴스가 담긴 링크를 보내주었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캐나다 국민들도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래를 위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듭니다.

트뤼도 총리는 선거 기간 내내 긍정의 정치를 역설했습니다. 거대 기득권 체제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했습니다. 캐나다 국민들은 거기에 열렬히 호응했습니다. 그는 2008년 퀘벡주 파피노 지역구 하원 의원으로 처음 정계에 입문한 뒤 5년 만인 2013년 자유당 당수가 됐습니다. 한때 긴 장발을 휘날리고 다녔던 그는 국정감사 질의에서 환경장관에게 욕설을 하는 등 혈기 왕성한 성격으로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캐나다판 막말 정치인일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1998년 눈사태로 막내동생을 잃습니다. 그는 눈사태 방지 홍보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당연히 환경 문제, 안전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욕은 했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이 뒷받침됐기에 빠른 정치적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캐나다의 유명한 총리였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AP=연합뉴스


명쾌한 슬로건 "부자증세로 일자리를!"

어쨌든 그가 이끈 자유당은 이번 총선에서 34석에 불과하던 의석을 184석으로 여섯 배 가까이 늘렸습니다. 집권 보수당은 166석에서 99석으로 줄었습니다. 제1야당인 신민주당은 103석에서 44석으로 몰락했습니다.

트뤼도는 흥밋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의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고 변화를 바라는 캐나다 국민의 여망을 정책에 반영했습니다. 어정쩡한 기득권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캐나다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소신있는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트뤼도의 자유당은 중산층의 소득세율을 현행 22%에서 20.5%로 낮추고,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 부유층에 대해 33%세율을 적용하는 '부자 증세'를 공약했다. 법인세도 증세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나오는 재정은 일자리 창출과 인프라 건설에 쏟겠다고 했다. 이는 "세금 인상은 경제활동을 위축하는 잘못된 발상"이라고 주장하며 부자 증세에 반대해온 보수당과 정반대의 길이었다."(<조선일보>)

소득 불평등 사회에 대응하는 트뤼도의 단순 명쾌한 해법이 캐나다 국민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습니다. 왜 저항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트뤼도는 완강하고 단호하게 진보의 가치를 지켜냈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완강하게 싸우지 않을 때, 모두가 기득권 정당구조에 안주해 있을 때 트뤼도는 그것을 정면돌파 해냈습니다. 힐러리마저 진보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 미국 대선의 샌더스 돌풍과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 얘기가 길어졌지요?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두려웠습니다. 기분 좋은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었습니다.

트뤼도 총리가 "2015년이잖아요!"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우리는 1975년 같은 2015년을 살고 있는데"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프로'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리꾼은 트위터에 "여 15 : 남 15 캐나다 내각 출범 '동등한 성비를 중요하게 고려한 이유가 뭐냐' 트뤼도 총리 "2015년이잖아요. Because it’s 2015" 그렇답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 박근혜 씨"라고 일갈해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을 상기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실 겁니다.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 미화 위한 '사상전'

국정교과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반동의 상징입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이념 보수 진영의 매우 조직적인 전투입니다. 이를 박근혜의 고집 정도로만 폄훼하는 것은 저성장-소득 불평등 시대가 낳은 대중의 절망을 악용한 보수 반동의 패러다임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2004년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박세일 전 의원이 당선자 신분으로 '신보수를 위한 사상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이른바 진보 진영은 이 흐름을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들은 사상전의 진지로 뉴라이트를 만들고 확산시켰습니다. 관변단체를 교육하고 종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은 지역 대결, 이념 대결의 정치 지형 위에 세대 대결이라는 날선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국정교과서로 이목이 집중된 사이 상시고용 5인 미만인 언론사를 퇴출시키는 시행령으로 소규모 인터넷 언론에 철퇴를 내렸습니다. 지방정부의 자율적인 복지정책에 제동을 거는 시행령도 만들었습니다. 중앙정부가 허락하지 않은 예산을 쓸 경우 그 만큼의 지원을 삭감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계엄령 독재가 시행령 독재로 바뀌고 있습니다. 법을 위반하거나 법의 약점을 파고들어 시행령으로 반동의 질서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군 동창회가 성명을 내는 것도 기이한데 국방 장관까지 국정교과서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대한민국은 왜?>라는 책을 낸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가 되고 박정희가 그 계승자가 되면,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나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어리석은 존재가 된다. 더 나아가 시대를 읽지 못한 바보 같은 인간이 되어 버린다. 반대로 독재에 부역했던 모든 부패, 반인권, 반민주 세력들이 모두 정당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들의 요구 위에 박근혜가 있다."

싸우기도 전에 퇴각? 구체적인 목표 세워라

그런데도 거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히 좌고우면,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거나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는 게 정공법'이라거나 '국정화 반대투쟁에 올인할 수 없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지도급 인사들에게서 나옵니다. 본격적인 싸움을 하기도 전에 퇴각 의사를 미리 내비치는 장수나 다름 없습니다. 너무 가혹한 평가인가요? 그런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6일) 나온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저는 여론조사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갤럽을 인용하는 이유는 그나마 정기적, 추세적 조사는 조금 더 믿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3% 하락한 41%, 부정평가는 5% 상승한 49%를 기록했습니다. 부정평가가 늘어난 가장 큰 이유가 국정교과서 추진이었죠. 그런데 새정치연합에 대한 지지율은 오히려 2% 하락한 20%에 머물렀습니다. 관계자들이 굉장히 심각하게 곱씹어야 할 대목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은 53%로 찬성 36%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습니다. 10월 2주부터 반대 여론은 42%=>47%=>49%=>53%로 높아진 것입니다. 지식인 사회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여론이 크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 농성에 대해서도 지지가 43%로 40%에 머문 반대를 앞질렀습니다. 세대 별로 보면, 20대는 63%가, 30대는 59%가, 40대는 55%가 국정화 반대 농성을 이해한다고 답했습니다. 야당의 주요 지지층에서 정의로운 투쟁을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민생? 전패 각오하면 이길 것

지금 박근혜 정부는 1975년의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2015년의 정치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당은 1987년의 정치에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이 국정화 반대투쟁이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는 요즘 '민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덜컹합니다. 야당이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안식처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이 거대 양당체제의 기득권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찾아내는 명분이 이른바 '민생'은 아닐까요?

민생이라는 말은 원래 보수가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쓰는 단골메뉴입니다.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면서 새누리당은 '민생을 외면한다'고 비판하지 않습니까. 보수는 1%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민생이라는 추상적 언어로 자신의 거짓말을 덮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야당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민생입니까.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대 노동개혁법안이 민생입니까. 쉬운 해고와 임금피크제가 민생입니까. 청년 일자리를 핑계로 일방적으로 재벌 대기업 편의를 봐주는 것이 민생입니까.

진보라면 민생 같은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어젠다를 말해야 합니다. 최근 수년 간 야당이 프레임을 주도했던 시기는 '무상급식'으로 복지 어젠다를 가져왔을 때뿐입니다. 트뤼도처럼 부자증세를 말할 용기가 있습니까. 오바마처럼 동성결혼 합법화를 말할 용기가 있습니까. 샌더스처럼 은행 국유화를 주장할 용기가 있습니까. 거대 양당체제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당제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할 용기가 있습니까.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반대 투쟁을 총선 득실로 계산하는 한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정의로운 투쟁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국민을 위하겠다는 것은 반동적 흐름의 부역자가 되는 길을 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계산되지 않는 가치입니다. 총선을 전패하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인 것입니다. 역사의 장강은 그만큼 도도한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이기도 한 것입니다.

2015년의 정치로 돌아와 1975년의 정치로 회귀하는 반동적 권력을 막아낼 미래권력이 필요합니다. '2015년이니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판 트뤼도는 어디에 있을까요?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시작해야 한다"는 영화 <마션>의 대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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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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