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집권엔진'? 감동이 없는 이유

[주간 프레시안 뷰] 신자유주의 사고에 갇힌 우경화 행보 '위험'

정치인의 메시지는 '관심의 크기'라는 열차에 탑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멀리, 넓게 퍼질 수 있습니다. 국민의 관심이 큰 곳에서 자신의 일관된 가치를 설파해야 하고,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어젠다를 개발해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논의를 끌어들여야 주장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론에 주목하는 까닭은 거기에 주눅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름을 타고 자신의 진짜 가치를 제 때에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관심의 크기가 다는 아닙니다. 일관된 메시지를 반복해야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작은 관심이 쌓여 큰 관심이 되고 큰 관심이 시간이 흘러 작은 관심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갑을관계의 택시를 타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메르스의 지하철을 타고 사회안전망을 점검할 수도 있으며, 동성결혼의 비행기를 타고 국제적인 흐름에서 평등과 인권의 가치에 주목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통해 핵심가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안보라는 보수적 가치로 오랜 기간 독재정치를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핵심가치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한 끝에 집권했습니다. 보수는 일관되게 애국과 안보, 성장과 작은 정부, 산업화, 선진화의 가치로 세뇌에 가까운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여기에 공포를 곁들입니다. 권위와 복종을 강조하는 것은 보수의 오랜 전통입니다. 진보는 정의와 평등, 민주화와 인권, 평화와 복지 등의 가치로 국민의 마음에 다가서려 합니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은 진보의 전통입니다.

메시지를 부각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선명한 차별성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유리한 것은 차별화하고 불리한 것은 동일화하려는 경향을 갖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한 이유는 불리한 이슈를 동일화하려는 것이고, 최근 문재인 대표가 안보행보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불리한 것을 동일화하기 위해 유리한 것의 차별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 출범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달 30일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경제를 무능한 정부에만 맡겨둘 수 없다"며 "우리 당의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총선 승리를 넘어 우리 당이 집권하는 그 순간까지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가 경제 분야 섀도 캐비닛(그림자 내각) 같은 역할을 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며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는 우리 당의 집권 엔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당대표 선거에서부터 문재인 대표가 일관되게 강조해온 경제정당 이미지를 공식기구로 강화한 것이다. 19대 총선에서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정세균 상임고문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구체적인 경제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총선과 대선을 대비한 정책을 만들어낸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 경제행보를 강화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1992년 빌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고 했던 것을 20년이 지나서 벤치마킹하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들은 항상 경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왠지 가슴이 설레지는 않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능한 경제정당이 되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큰 믿음이 가지도 않고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문재인 의원실

우선 타이밍의 문제

위원회를 출범시킨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고강도 '의회 하이킥'으로 정국이 완전 마비상태에 이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배신과 국민의 심판을 말한 대통령의 도발로 여당이 쑥대밭이 되고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이 완전 무력화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메르스 사태도 진정되지 않았고, 그리스발 금융위기까지 덮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학자들 모아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해서 관심과 신뢰를 가질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지난 6월25일부터 7월2일까지 트위터, 블로그 등에 나타난 이슈들의 언급량을 조사해 봤더니 경제정당 언급량은 530건에 불과했습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묻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간 가장 큰 언급량을 기록한 것은 미국 대법원 판결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동성결혼 이슈로 무려 30만2336건이나 됐습니다. 타임라인은 온통 동성애로 상징되는 무지개로 뒤덮였습니다. 이날 발표된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보수여당의 난처한 입장을 이해한다 치더라도 진보를 표방한 우리나라의 야당 정치인들마저 이 세기적 판결에 대한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메르스가 20만5882건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진정국면에 들어갔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야당이 응당 해야 할 일은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대안적 보건의료정책을 내놓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가 10만건이 넘는 언급량을 기록하면서 폭풍정국을 주도했음을 드러냈습니다. 연평해전과 세월호, 거부권, 그리스 등도 수만 건이 넘는 의미 있는 언급량을 기록했습니다(도표 참조). 이런 와중에 서둘러 경제정당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심각한 타이밍의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네이밍의 오류

이름에는 가치가 포함됩니다. 경제나 민생 같은 추상적인 언어는 항상 보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의도 정치에 아주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항상 경제와 민생, 국민을 앞세웁니다. 메르스 정국에서도 대통령은 국가의 잘못된 대응으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앞세우지 않고 메르스로 인한 경기불황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인상을 줄 정도였습니다.

'경제 정당'은 과연 진보를 표방한 야당의 핵심가치가 될 수 있을까요. 보수정당의 프레임을 오히려 강화시켜주지는 않을까요. 유능하다는 말은 무능하다는 말에 대비되는 차별적 언어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많이 들어 유능하다는 말을 앞세웠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정당이 맨 앞에 세워야 할 핵심가치라고 보기엔 뭔가 미심쩍은 데가 있습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청년실업 해소 같은 우리사회의 이름 지어진 가치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더 호소력이 있을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텐텐(10.10달러)을 강조한 연설을 상기해 보십시오.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이를 진보의 핵심가치인 평등, 정의, 민주화, 평화 등과 결합시켜 반복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지 않을까요.

셋째, 감동을 주는 비전이 없다

'집권 엔진'이라는 문 대표의 말은 단순한 전략적 목표이지 비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번에 미국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끈 '프리덤 투 매리(Freedom to Marry)의 수석 디렉터 마크 솔로몬(Marc Solomon)은 캠페인 승리의 10대 요소를 정리하면서 맨 앞자리에 "강하고 감화를 주는 비전을 전달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비전 - 당신이 정말로 이루고 싶은 것 - 을 찾아서 일찍부터 자주 전달하라.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대담한 가능성이 수십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자극해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시민결합(Civil Union) 같은 어중간한 목표였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 과정의 미봉책도 정치 체계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걸 받아들인다고 진짜 목표를 늘 미뤄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정치인들에게 이게 왜 중요한지 계속 상기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진짜 목표보다 못한 것에는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안보를 말하려면 평화, 통일 메시지를 강화해야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중도화 논쟁을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이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서민의 지갑을 지키는 정당'이라고 했을 때 지킬 지갑조차 없는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최근 문재인 대표는 연평해전 기념일을 맞아 특전사를 방문하고 영화를 관람하는 등 안보행보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야당발 평화 메시지를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통일에 대한 비전은 갖고 있는가. 안보는 중요하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방어적 어젠다일 뿐입니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그 안에서 안보를 강조해야 주도적으로 프레임을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숱한 탄압 속에서도 연방제 방안을 포함한 3단계 평화적 통일방안을 갖고 더불어 안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지 레이코프의 표현을 빌면 '좌에서 우로' 척도 증후군에 빠져 있습니다. 표를 더 많이 얻으려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논리죠. 레이코프에 따르면 이럴 경우 진보주의자에게 불리한 세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1. 진보주의의 도덕적 세계관에 어울리는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당신의 정치기반이 스스로 소외감을 갖게 된다.

2. 보수주의의 도덕적 세계관에 일치하는 정책을 수용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뇌에서 보수적 세계관이 활성화된다.

3. 그리고 일관성 있는 도덕적 세계관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당신은 아무런 가치도 보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조지 레이코프, <폴리티컬 마인드>)

이런 경향성에 대해 레이코프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계몽주의가 결합한 결과라고 진단하며 진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뚜렷한 우경화 경향 역시 신자유주의 사고에 지배당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이른바 진보가 추구하는 일관성 있는 도덕적 세계관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정당이며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여기에 대해 '집권을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집권하지 못할 것입니다. 야당의 전매특허인 민주주의 가치에서조차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면 도대체 야당의 존재이유가 무엇입니까.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가 주는 교훈은 여론이 아주 불리할 때에도 평등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감동적인 울림이 역사적 판결을 이끌어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도전자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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