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휴대폰에 담긴 삶' 지켜다오!"

[주간 프레시안 뷰] 안철수, 국정원과 한판 승부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라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예언을 국정원이 실현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북한에서도 카톡 쓰나"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해킹업체인 '해킹팀'으로부터 스파이웨어(RCS)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대북 첩보활동을 위해서만 사용했다는 국정원의 발표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 전국 선거를 앞두고 RCS(리모트 컨트롤 시스템) 라이선스 주문량이 늘어났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북한에서도 카톡을 쓰냐는 조롱이, 또 메르스 정보 사이트에도 스파이웨어를 설치했다는 분노가 국정원을 향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 납세자인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게 된 국민들이 사생활 침해의 우려를 넘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위키리크스에 올라온 400기가 바이트라는 방대한 자료 속에서 찾아낸 구체적인 감시 대상자는 현재까지 재미 과학자인 안수명 씨 단 한 사람 뿐입니다. 아직은 밝혀진 것이 그리 많지 않은 셈입니다. 국정원이 자국 국민을 상대로 이 무시무시한 전방위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했는가를 밝혀낼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이 의혹을 풀기 위해 공식적으로 국민과의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한겨레> 기자들만의 힘으로는 이 400기가 바이트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수백만 건에 이르는 영국 국회의원들의 영수증 사용기록을 독자들에게 검증해 달라고 요청한 것과 같은 맥락의 '오픈 저널리즘'입니다. 의심이 갈 만한 것을 찾아 제보하면 신문사에서 심층취재를 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1주일 동안 트위터, 블로그, 커뮤니티, 뉴스 등에서 국정원을 언급한 문서는 20만2677건이나 됩니다. 이 중 트위터 문서의 비중이 98.6%에 이를 만큼 이 소식은 뉴스보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먼저 회자됐습니다. 특히 카카오톡, 삼성 안드로이드폰 등에 대한 해킹 문의가 있었다고 보도된 이후 언급량은 급증했습니다.

"7월 7~8일께 <보안뉴스>, <전자신문> 등 IT 전문지를 중심으로 외신을 통한 정보유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9일 온라인 매체 <미스핏츠>에 개발자 이준행 씨가 상세한 의혹을 소개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궜고, 9일치 <한국일보>, 10일치 <세계일보> 등 일간 신문에서도 '국정원이 구입처로 보인다'는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겨레>는 IT 담당기자가 유출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정원이 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영수증을 찾아 11일치 1면에 실었습니다."(<한겨레>)

같은 기간 SNS 언급량을 따라가 보면 7일 1583건(뉴스 24건), 8일 2618건(18건), 9일 5095건(15건), 10일 6374건(24건), 11일 7513건(11건), 12일 1만703건(28건), 13일 3만740건(145건), 14일 5만41건(471건), 15일 6만2535건(463건)으로 폭증합니다.(도표 참조)




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대법원 결심공판에서 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한 파기환송 판결이 나오면서 국정원 언급량은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정원 공포정치, 디지털 파놉티콘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실이 폭로되었는데도 국정원은 '안보 프레임'으로, 새누리당은 '정쟁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가두려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일컬어지는 사법부마저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선거개입에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계속 후퇴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대통령 한마디에 여당 원내대표가 쫓겨나고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는 쪼르르 달려가 대통령을 알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은 항상 정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대선개입의혹 사건으로 2013년 내내 국정원은 정치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채동욱 파동 등은 벌써 책장 속의 추억이 된 느낌마저 듭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여기서도 국정원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메르스 파동 때 잠시 주춤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국정원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국가정보기관이 여론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당이 어젠다의 중심에 서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정당보다도 국정원이 더욱 시끄럽습니다. 심지어 국정원 논란의 중심에는 댓글 작업 등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공포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국민을 전방위로 감시하는 악성코드를 무차별적으로 심는다면, 국민들은 이에 따른 공포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원형감옥)이 디지털화된 상태로 우리에게 존재하게 됩니다. 근대의 감옥이 수형자들의 행태를 감시했다면 디지털 파놉티콘은 국민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봅니다.

안철수 "휴대폰에는 개인의 삶이 담겨 있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사찰에 대항해 제대로 싸우지 않는다면 야당은 영원히 집권할 기회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불행한 전철을 원세훈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다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긴 선거는 처벌할 수 없다'는 새로운 경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 조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조사위원장을 맡은 안 의원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안 의원에게 기대감을 갖는 누리꾼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가 국정원발 악성코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안이 매우 엄중하기는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정치적 리더십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준다면 그를 떠났던 지지자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가령 메르스 사태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여준 역동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면 당의 구심력도 만들고 정치적 입지도 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대표도 안 위원장과 함께 단호한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문 대표는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댓글공작을 통해) 국민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전과가 있다"며 "여기에다 휴대폰을 통해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한 사실까지 있다면 국정원은 더 이상 국가정보기관이 아니라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습니다. 검찰수사도 촉구했습니다.

16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대표실에서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을 입증하는 시연회를 가졌습니다. 나아가 이날부터 중앙당에 악성 코드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센터를 가동하기로 했습니다. 안 의원은 "일단 안드로이드폰을 중심으로 한 검진센터를 중앙당에 설치한다"며 "혹시 내 휴대폰이나 PC가 악성 코드에 감염된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의 불안을 덜어드리는 활동을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불법적으로 국민을 사찰한 것이고, 모든 국민이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에는 개인의 삶이 담겨있다"는 안 의원의 발언은 아주 의미가 큽니다. 국민의 불안을 덜어줌으로서 권력이 국민의 천부인권을 침탈했다는 사건의 본질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해킹 프로그램 시연 및 악성코드 감염검사'에서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안 의원은 국정원의 스마트폰 해킹 의혹과 관련힌 당내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야당은 계파갈등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습니다. 대충대충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국정원입니다. 국정원은 국민사찰 의혹에 대해 끝까지 발뺌을 할 것이고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도 준비할 것입니다. 특히 새누리당 의원들이 내놓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안 처리를 시도할 것입니다. 국정원은 이참에 대간첩 수사를 빌미로 불법화되어 있는 해킹수사 합법화를 기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번에 국정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당은 다음 총선과 대선 승리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국정원 개혁은 국민을 위한 일이자 야당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공정한 선거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는 것입니다. 국정원의 국민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을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이후 정치지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싸움은 분열된 야당을 통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미국 상원은 지난 6월2일 론 와이든 의원의 주도로 국가안보부(NSA)의 감시활동을 크게 제한하는 일명 '미국 자유법(USA Freedom Act)'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희생 위에 이룩한 거대한 진전입니다. 9.11 테러 이후 대테러 명목으로 행해지던 국민에 대한 무차별 도‧감청에 대한 첫 제동이라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 법대 제프리 스턴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자유법 발효를 계기로 드디어 미국인들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 발짝 물러나서, 서로 상충된 가치로 보이는 '안보'와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찬찬히 생각해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무차별한 감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입니다. 정보인권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차제에 국정원을 개혁해 불법사찰 자체를 원천봉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전략적 목표는 당연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입니다. 아울러 국정원 개혁도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강조했던 이른바 '국정원 셀프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이번만큼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는 국정원법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그 초석을 놓는 것이 야당이 해야 할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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