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의 군사 갈등, 누구 책임인가"

[주간 프레시안 뷰] 진퇴양난 빠진 한국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의 군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10월 27일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 12해리(22.2km) 안에 구축함을 진입시킨 데 이어 1일에는 앞으로 매 분기(3개월) 2회 이상 이같은 순찰 활동을 정례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반발하면서 주권 수호를 위해 실탄 군사 훈련을 벌이는 것으로 맞받았습니다. 지난 1971년 미중 화해 이후 그런대로 순항해 왔던 양국 관계가 남중국해 남사군도(스프라틀리)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대결 양상으로 바뀌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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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1일 미 군함의 남중국해 순찰 정례화를 밝히면서 "국제법에 보장된 권리를 정기적으로 행사해 미국의 뜻을 중국과 다른 국가들에 상기시키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중국을 방문 중인(2~4일)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3일 베이징대 강연에서 "미군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 비행하고 항해하며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며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항행 자유 원칙에 따라 활동해 왔다. 일상적인 작전 수행이 특정 국가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순찰 활동은 국제법에 따른 자유 항행 원칙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 중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 구축함 라센호가 중국 인공섬 12해리 안에 진입한 지 이틀 후인 지난 10월 29일 미국과 중국 군사 당국자는 1시간에 걸쳐 화상회의를 연 바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인민해방군 해군사령관 우셍리 장군은 미 해군작전본부장 존 리차드슨 장군에게 이번 미군의 순찰 활동은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위협하며 지역 평화와 안보를 해치는 지극히 위험하고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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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 해군의 순찰 정례화 방침이 보도된 직후 중국은 실탄 군사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싱가포르 유력지 연합조보는 2일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로 향하고 있다면서 이번 훈련은 주야에 걸쳐 남중국해의 '중국 영해'에 침입하는 가상 적군 함정을 타깃으로 방어, 수비, 반격을 염두에 두고 모두 실탄을 사용해 실시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 실전 훈련에 투입된 부대는 중국 광둥(廣東)성 잔장(湛江)군항에 기지를 두고 남중국해 해역을 관할하는 중국 남해함대의 주력부대로 052B형 구축함 2척과 054A형 호위함 4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간 훈련은 주로 해상편대 타격, 함재기 연합 대잠수함 작전, 합동 대미사일 방어 작전 등이, 야간 훈련엔 함포 및 미사일의 해상 사격, 대(對) 연안 화력 지원 등이 실시될 예정인데 정확한 훈련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군의 남중국해 순찰 정례화와 이에 반발한 중국군의 실탄 군사 훈련이 맞물리면서 남중국해가 미중 군사 대결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 해군의 남중국해 순찰은 지난 2012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는 지난 해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40여 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진 남사군도는 지난 1970년대부터 분쟁 지역으로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타이완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해저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 자원이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 가운데 7개 섬 및 암초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4개 암초를 매립하는 동시에 3000미터 길이의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1개는 완공, 2개 건설 중). 또한 군함과 대포 등 군사 장비를 배치했습니다. 중국의 속셈은 인공섬 매립을 통해 이 해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 ⓒAP=연합뉴스


한편 남중국해에는 원유를 비롯해 연간 5조 달러 상당의 물자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 말라카 해협이 있습니다. 이중 1조2000억 달러 상당은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은 중국의 인공섬 매립이 이 해역의 자유 항행을 위협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이 인공섬 주변 12해리를 배타적 주권 해역으로 고집할 경우 다른 나라들의 자유 항행이 위협받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중국은 아직 인공섬 12해리 해역을 영해로 공식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타국 선박의 통행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도 내비친 적이 없습니다. 즉 아직까지는 자유 항행의 원칙이 훼손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중의 이번 갈등은 '자유 항행 대 주권 수호'보다는 남중국해 주변의 군사 패권을 위한 것입니다. 중국은 자국 주변 해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합니다. 중국의 남사군도 인공섬 매립은 하이난섬에 있는 중국 잠수함의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중국은 '접근 저지 / 지역 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에 따라 미군이 자국 주변 해역에서 마음대로 활동하는 것을 견제하려 합니다. 지난 2013년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태평양은 두 나라가 나눠 써도 될 만큼 넓다"며 신형 대국 관계를 제안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반면 2차 대전 이후 태평양 등 전 세계 5대양을 제 집 안방처럼 누벼왔던 미국은 지난 70년간 마음껏 누려왔던 군사적 행동의 자유를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게다가 미국은 지난해 3월 러시아의 크림 반도(우크라이나 영토였죠) 합병에 아무런 대응도 못했고, 최근 시리아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개입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최강 군사대국의 체면을 구긴 것이죠. 이에 대한 미 군부 및 의회의 분노와 좌절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군부는 이미 지난 5월 중순, 중국 인공섬 매립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가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지난 10월 27일에야 군사적 대응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즉 오바마의 주도적 결정이기보다는 군부와 의회의 강력한 압력에 밀린 결정이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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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일본 편을 든 것처럼 남사군도 분쟁에서도 필리핀, 베트남 등의 편을 들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미 필리핀은 남중국해 섬들을 둘러싼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국제재판소인 네덜란드 상설중재재판소(PCA·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에서 다뤄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PCA는 지난 10월 29일 필리핀이 제기한 남중국해 도서를 둘러싼 분쟁이 PCA의 관할권에 속한다고 발표했다고 하는군요.

한편 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는 미중 간의 충돌로 공동선언문 채택이 무산됐습니다. 이번 회의에는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호주·뉴질랜드·인도 등 모두 18개국 국방장관이 참석했는데 남중국해 문제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미국과 일본, 필리핀 등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항행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해양 패권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일본 그리고 필리핀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도 항행의 자유를 강조한 문구를 공동선언문에 포함시켜 중국의 인공섬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할 방침이었습니다만, 중국의 강한 반발과 몇몇 아세안 국가들이 암묵적으로 중국을 지지하면서 공동선언문 조인식 자체가 취소된 것입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중국 국방부장(장관)이 보는 앞에서 말했습니다. 이 연설은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과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등이 직접 지켜봤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 고위 인사가 남중국해 갈등 당사국인 미·중 국방장관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국이 공개적으로 미국 편을 든 셈입니다.

미국은 국제법을 내세워 필리핀, 베트남 등과 함께 다자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다자적 해법에 극력 반대하면서 양자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대적 열세에 있는 베트남, 필리핀 등을 힘으로 누르겠다는 속셈이죠. 힘의 우위를 앞세워 영토적 팽창을 노리는 중국의 태도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국제법과 자유 항행의 원칙을 외치면서 군사적 해법을 추구하는 미국의 태도도 정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내세우는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1982년 체결되고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해약(UNCLOS)인데 미 의회는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멜 거토브 교수는 미국은 지난 1986년 이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자국에 불리하게 내린 결정을 단 한 번도 이행한 적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즉 UNCLOS에 가입도 하지 않고 국제기구의 결정에도 불복해온 미국이 국제법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명분 없는 행동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중국해 자원의 공동 개발 등 다자적 해법을 통해 분쟁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군사력의 일방적 과시와 이에 대한 맞대응은 결코 건설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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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미국과 중국은 군사적 갈증 심화의 악순환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핵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를 타고 남중국해 인근을 항행할 예정이라고 미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의 목적지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항공모함이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높아진 남중국해 인근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해온 점을 감안할 때 카터 장관이 영유권 분쟁지 인근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 경우 미중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중의 군사 갈등 속에 한국은 진퇴양난의 입장에 빠졌습니다. 최근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와 아베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콕 집어 지지를 요청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오바마와 시진핑, 양국의 지도자들이 이 분쟁을 평화롭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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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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