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싸움, 박근혜에게 배워라"

[주간 프레시안 뷰] 대통령이 맞고 틀린 것

적과 싸우면 닮아간다고 하던가요,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종북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국가가 하나이듯 국사도 하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대통령이 맞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이 갈라섰습니다. 대통령이 틀렸습니다. 그 이유는 국정교과서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논리라면 국정화는 수학부터

우리 대통령께서는 공대를 나오셨으니 수학을 예로 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학은 계산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인가요? 아닙니다. 그건 보통 산수라고 하지요. 수학은 자연의 과학적 이치를 수를 통해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집합과 논리명제 등을 통해서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학문입니다.

수학이 계산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듯이, 역사는 기술된 사실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외우는 대로 답을 쓰는 것도 아니지요. E. H. 카가 역사란 대화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역사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정답이 없다면, 아이들 수능시험은 어떻게 보란 말이냐?'는 질문을 던지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분명 그렇게 이해하실 겁니다. 대통령이 또 틀리셨습니다. 역사에는 정답이 없지만, 수능시험에서는 정답이 있습니다.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이 합의한 사실들이 그런 정답에 속합니다. 수학에서 기본적인 명제에 속하는 부분들이 그렇듯, 역사에서도 그런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배운 것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시험에서 정답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기준을 국가가 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지요. 물리학과 천문학의 예를 들어볼까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오랫동안 사실이자 진리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그 사실을 뒤집었습니다. 또 얼마 전까지 화성에는 물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한 대학원생이 화성에 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것을 국가가 정할 수 있을까요?

역사보다 객관성, 명료성이 뛰어나다는 과학도 이론과 해석의 정확성을 국가가 정할 수 없습니다. '1+1=2'가 수학적 사실과 진리로 이해되는 것은 국가가 그것을 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수의 학자들이 그것을 이견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수학과 역사가 다르다고요? 맞습니다. 다릅니다. 무언가 기준과 표준을 정하기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 과학이라면, 역사는 가장 먼 쪽에 있습니다. 하물며 수학과 과학이 학문으로서 후세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해석이 고정적이고 단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니까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독재정권이나 전체주의 정권에서 그런 것들은 가능합니다. 단일한 역사를 국가가 정해서 가르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민주국가가 그렇게 하려면, 일단 수학과 과학 교과서의 국정화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역사 과목에서 분명한 정답이 하나 있습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단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당은 국가보안법과 사학법에서 배우십시오

그럼 야당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것은 상대에게서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저는 비근한 사례로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개정안을 들고 싶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시도한 이 두 법안의 개정에서 하나는 실패했고, 하나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재창출에 실패하고, 국회를 상대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결국은 둘 다 실패했습니다.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배울 것이 있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할만한 정치적, 사회적 힘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시도했습니다. 안됐습니다. 역풍을 맞았습니다. 이것이 이번 국정교과서 논란에서 야당이 배울 점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야당이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사학법 개정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를 기점으로 정치적 고립을 벗고,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 경제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연대를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학법과 연계된 개별적 이해관계들이 결국은 정치와 정당을 통해서만 결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대오를 통해 선거에 진 당을 추슬렀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강추위로 벌게진 얼굴을 하고 신촌 거리를 누비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동지적 연대감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사학법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상지대 등 전국의 비리사학들은 이제 모두 되살아났습니다. 법과 정책이란 그렇습니다. 정권을 잃고, 국회를 잃으면 다시 돌아갑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지속성을 갖고, 선거에서 꾸준히 승리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 동안 그 효과를 국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지속되니까요.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6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었던 사학법 반대 집회. ⓒ연합뉴스


지금이 전력으로 싸울 때입니다

분명합니다. 정부 여당에게 유리한 싸움은 아닙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여론은 팽팽한 것으로 나옵니다. 예전 국가보안법 개폐 때에도 그랬습니다. 영남에서는 지지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호남과 충청은 다릅니다. 결정적으로 수도권에서는 반대가 많습니다.

법률적, 행정적으로 국정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되돌리면 됩니다. 바로 내년에 선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주지시켜야 합니다. 수도권에서 야당의 압승이야말로 국정교과서를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국정교과서는 이념적, 정치적 사안이고, 보수/진보 대립구도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민생사안이 아니니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과거 NLL 포기 합의 논란이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 사건과는 다릅니다.

그 사건들은 당이 총력을 집중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당에서는 이것을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보았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그것은 노무현과 문재인의 사건입니다. 고영주 씨가 왜곡된 세계관을 갖고 있어서 야당이 저렇게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재인을 욕했기 때문에 야당이 저렇게 펄펄 뛴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시각은 국민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맞는 생각입니다. 왜 야당은 고영주 씨가 방문진 이사장이 될 때는 가만있다가, 이제와서 문재인이 공산주의자냐 아니냐를 물으면서 국정감사를 파행시킵니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그 사안에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 그 사안의 당사자가 국민이냐 정치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했더니, 다수 국민들이 분개하고 학자들이 나서고 거리로 학생들이 나섰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사안에 야당이 총력을 기울인다면 당연히 민생을 외면하는 정당이 되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그 기회를 포착해서 노동개혁을 들고 나오면서 민생정당을 외칠 것입니다.

싸우되 민생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국정교과서는 다릅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관심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 이래 민생이 아닌 문제로 거의 처음 정치적 쟁점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외연을 확대하고 연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목을 매 성공한 이유는, 다양한 보수 세력이 이 사건을 계기로 한데 뭉쳤기 때문입니다.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에 소위 민주, 진보, 개혁 세력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분열되어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황폐화되다시피 했습니다. 국민들의 시선도 따갑습니다.

외부적으로 연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싸우게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돌려야 하니까요. 그 결과는 진보세력의 분열과 제1야당의 계파정치화입니다. 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정교과서 문제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어떠한 민생 이슈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외연을 확장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국정교과서에 투쟁하듯이 민생 문제에 대해서도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전선을 확장해야 합니다.

이 전선은 반드시 민생법안과 정책을 향해야지, 다른 정치적 사안으로 번져서는 곤란합니다. 강동원 의원의 대선불복 주장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대가 떨어져나가고 본질이 흐트러집니다. 무엇보다 국정교과서가 정쟁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게 됩니다.

태도는 악착같이, 전술은 유연하게, 전략은 계산적으로

바둑이 그렇든가요. 내가 잘해서 이기기보다는 상대가 실수를 하느냐, 그 때를 얼마나 잘 포착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고요.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교과서 문제와 이를 통해 엮어진 사회적 연대가 선거 승리의 수단이자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당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해당 행위는 엄벌해야 합니다. 선거가 코 앞입니다. 당 지도부가 한참 전력을 기울이는 판에 지역구에 올인하는 의원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읍참마속은 이럴 때 필요합니다.

여론이 불리하지 않은 싸움에서 지는 경로는 하나입니다. 내부반란, 외부단절, 갈팡질팡, 유야무야, 선거패배의 길이 그것입니다. 태도는 악착같이, 전술은 유연하게, 전략은 계산적으로, 국회의 절차를 지키면서 싸우십시오. 국민과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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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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