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아버지의 이름으로 '국민 개조' 시작"

[정욱식 칼럼] '독재자의 딸'이라는 콤플렉스

박근혜식 정치를 보면 앤 스톨러(Ann Stoler)가 말한 '제국의 긴장'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미국 뉴스쿨 인류 역사학 교수인 스톨러는 식민 지배의 내재적이면서 화해 불가능한 자기모순을 '제국의 긴장'이라는 표현으로 개념화 한 바 있다. 이는 제국주의자가 식민지 경영을 위해 '신민'을 제국의 주권 속으로 편입시키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편입과 동시에 배제라는 지배 체제가 지닌 긴장"인 셈이다.

이 개념을 박근혜식 정치에 적용하면 '선거의 긴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선거 때에는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국민 통합'을 강조하고, 당선 후에는 나 몰라라 하거나 특정 국민을 배제하는 경향이 생기곤 한다. 선거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드러내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 대한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하면 당선은 힘들어진다. 반면 당선 후에 공약대로 실천하려고 하면 정파적 이해관계에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모순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어쩌면 선거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이러한 현상은 너무 심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슬로건의 핵심으로 국민 통합을 강조하면서 "100퍼센트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는 이를 위한 핵심 공약이었다. 하지만 당선 이후에는 공약집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

▲ 한-미 정상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 대신 철저하게 편 가르기와 배제의 정치를 선보이고 있다. 집권 초기에는 주로 정치적 비판 세력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곤 했다. 북방 한계선(NLL) 파동과 통합진보당 해산이 대표적이다.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그 기준은 '친박 아니면 나의 적'이라는 수준까지 확대되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에 이어 김무성 대표 흔들기를 보면 이러한 진단이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그 백미에 해당된다. 친일과 독재에 대한 미화를 골자로 하는 국정 교과서가 한국 사회를 얼마나 심각한 갈등으로 몰아넣을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다. 더구나 이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의 입맛대로 역사 교과서가 단일화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전쟁을 치러야 한다. 국정화는 역사 해석을 둘러싼 내전의 영구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은 국정화에 집착하고 있다. 작게는 독재자의 딸과 친일파의 아들이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산물로 보인다. 크게는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역사관을 청소년에게 주입시켜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정치적 기획의 냄새도 풍긴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는 가족사의 신원 풀이의 수단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5.16을 쿠데타로 정의하고 박정희를 독재자로 서술하는 것을 아버지에 대한 '명예 훼손'으로 간주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를 단일화해 자신의 역사관을 관철시키는 것을 아버지에 대한 '명예 회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독재자의 딸'이라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과도하고도 그릇되게 표출하는 것이다.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한국갤럽이 조사한 것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으로 박정희는 44%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노무현(24%), 김대중(14%)을 합친 것보다 높을 정도로 말이다.

도날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나 얼마 전에 타개한 돈 오버도퍼도 박정희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이들은 대개 김대중 지지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 두 사람은 김대중과 함께 박정희를 한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뽑는다. 박정희가 친일파였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라고 기술하면서도 그의 산업화에 대한 공헌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러한 과분한 평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가 대선 유세 때 공약한 '국민 통합'과 '100%의 대한민국'에는 음흉한 정치적 기획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무리수를 둬서라도 자신의 정치관에 맞게 국민 개조를 시도하고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배제하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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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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