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그러나 2017년 국정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집필진 논란, 학교 현장의 반발 등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지난 12일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내용을 담은 '중등학교 교과용 도서의 국·검·인정 구분고시'를 행정예고했다. 행정예고 기간은 다음 달 2일까지로 약 20일간이며, 다음 달 5일엔 최종 고시된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은 12일 기자 회견에서 "행정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국정화를 결정한 만큼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국정 교과서 책임 편찬 기관으로 지정된 국사편찬위원회가 다음 달 중순께 교과서 집필진 및 교과용 도서 편찬심의회를 구성하며, 본격적인 집필에는 다음 달 말 돌입할 예정이다.
역사학계에선 교과서 제작의 가장 첫 단계인 집필진 구성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회견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내락받은 분이 많다"고 했고,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또한 "집필진 구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젊은 학자부터 명망 있는 명예교수까지 노‧장‧청을 아우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집필진 물망에 오를 학자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미 상당수 역사학자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서울대학교 역사학 관련 교수들을 시작으로 국정화 반대 선언에 참가한 교수 및 역사학자 수는 12일 기준 2648명에 달한다.
이와 별개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전문가들도 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13명은 13일 국정 교과서 제작 과정에 일체 참여하지 않겠다며 다시 한 번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연세대뿐 아니라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들도 이미 집필진 불참 입장을 밝혔다. 많은 역사학자가 반대 성명을 낸 만큼, '집필 보이콧' 또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차후 집필진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학자들은 누가 이름을 걸고 국정 교과서 집필에 선뜻 나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역사학자 이만열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동의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안한 얘기지만,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나섰던 분들이거나 그 아류들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일본 식민통치 수법까지 쓰려나")
이같은 지적대로, 겨우 집필 인원수를 맞췄다 한다 해도 우편향 인사로만 채울 경우 편향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학자들로 집필진을 꾸리겠다는 정부 뜻과도 어긋나는 터라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교학사 재탕' 예상… 대체 교재 제작 움직임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학교 현장의 반응이다. 이미 상당수 교사들이 국정 교과서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태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달 9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중‧고교 사회과 교사 2만4195명(응답자 1만543명) 가운데 77.7%(8188명)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14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1009명의 경기도 중‧고교 역사 교과 교사 가운데 91.58%인 925명이 국정 교과서 발행에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대 이유로는 응답자 가운데 73.96%에 해당하는 747명이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고 정치적 목적 하에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을 꼽았다.
교과서 집필 기간이 짧은 점 또한 국정 교과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존 검정 교과서 제작 기간은 집필 1년, 검정 및 심의 과정 1년으로 총 2년이었다. 이에 비해 국정 교과서 제작 시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부실 교과서'가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1년 안에 교과서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교학사 교과서' 같은 수준 미달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교사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보니, 국정 교과서가 발간된다 하더라도 교육 현장에서 외면당하리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이미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국정 교과서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교재를 마련할 뜻을 밝히고 있다.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은 12일 "교과서 발행에 관해 교육감이 가지고 있는 합법적 권한 내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며 대안 교과서나 보조 교재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광주시 교육청, 강원도 교육청 등도 "인정 도서의 경우 교육감에게 선택 권한이 위임돼 있는 만큼 균형 잡힌 다양한 교수 학습 자료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여러 시도 교육감이 공감대를 이룬 만큼, 오는 15일 열리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공동 교재 개발에 관한 논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송 대변인은 "과거 국정 교과서 시절에 교사들이 '배움책 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다"며 "교육감협의회가 됐든 전교조가 됐든 학교 현장에서 이런 운동을 다시 벌일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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