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 히로시마 핵폭탄 때문이다!

[정욱식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놀라운 아집

놀라운 아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한반도 통일"이라고 즐겨 말하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국과 국내를 거쳐 뉴욕 유엔 총회에서도 이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 생각이 삼단 논법으로 이어지면서 말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에 집착할수록 국제적 고립과 제재도 강해지고 이에 따라 북한이 무너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여 무너진 북한을 통일하면 핵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천만한 것인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본 글에서는 분단 70년과 핵 시대 70년을 융합해서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을 역사 구조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한반도의 핵 역사를 3단계로 구분해 설명한 바 있다.(☞관련 기사 : 박근혜는 핵전쟁을 감당할 자신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반도의 분단은 핵 시대 '개막'과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한반도의 통일은 핵 시대의 '폐막'과 연계되지 않으면 결코 이뤄질 수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 본부에서 열린 UN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핵 시대 개막과 한반도 분단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이런 질문은 던져본다. 만약 미국이 원폭 투하 대신에 소련과의 연합 작전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유도했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만약 미국이 핵무기를 손에 넣은 시점이 1945년 7월 중순이 아니라 8월 중순이었다면, 혹은 미국이 패망이 임박한 일본에 원폭 투하를 강행하지 않았다면, 당시 미국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그건 바로 소련의 대(對)일본 전쟁 참전과 미-소 연합 작전이었다. 당초 소련의 참전을 독촉한 당사자도 미국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8월 15일 소련이 참전한다면, 일본은 끝장날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7월 중순 '마스터 카드'(헨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이 핵무기를 일컬은 표현)를 손에 쥐면서 소련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핵무기로 소련의 참전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그 핵무기로 소련에 대한 무력시위를 선택한 것이었다. 미국이 핵을 갖기 전에는 '동지'로 여겼던 소련을 핵을 가진 이후에는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8월 6일 아침 히로시마(広島)에서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은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장송곡이었다. 히로시마 피폭 직후 스탈린은 이를 미국의 협박으로 간주하고는 "우리가 협박에 굴복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빨리 핵무기를 만들라"고 소련 과학자들을 다그쳤다. 또한 예정보다 6일 빠른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을 감행했다.

한편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히로시마 피폭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3일간 버티던 일본은 8월 9일 새벽 날벼락을 맞게 된다. 바로 소련의 참전 소식을 접한 것이다. 히로히토(裕仁)의 지시로 항복을 준비하던 일본은 또 한 차례 핵폭탄을 맞았다. 조급해진 미국이 또 다시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다.

소련의 참전 소식에 긴장한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었다. 미국 역시 긴장했다. 그리고 국무장관의 지시로 2명의 젊은 장교 딘 러스크(Dean Rusk)와 찰스 보네스틸(Charles Bonesteel)은 서둘러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펼쳤다. 눈짐작으로 38선이 한반도의 중간선으로 여기고 지도 위에 줄을 그었다. 이를 받아든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한반도 북쪽을 점령한 소련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8월 10일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 장면 ⓒ프레시안(자료)

흔히 우리는 한반도가 미국의 원폭 투하 덕분에 해방을 맞이했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시간적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결정적 사유는 소련의 참전에 있었다. 오히려 미국의 원폭 투하는 한반도 분단의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당시 미국이 원폭 투하를 선택하는 대신에 소련과 연합 작전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유도했다면? 독일과 비교해보면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독일의 항복은 연합국의 연합 작전 결과였다. 이에 따라 전후 처리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 승전국의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 만약 대일본 전쟁 역시 흡사하게 전개되었다면, 일본의 전후 처리는 미국, 소련, 중화민국 등 승전국의 협상에 따라 이뤄졌을 것이다. 그 결과는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의 분단 내지 공동 관리로 이어졌을 공산이 컸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해방 전부터 완전한 독립 국가를 만들려는 자생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패망을 예상한 조선총독부도 여운형과 협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무기를 손에 쥔 미국은 일본을 독점하려고 했다. 그리고 소련의 영향력이 일본으로 뻗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분할해 완충지대로 삼고자 했다.

핵시대 폐막과 한반도 통일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6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정전체제는 핵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분석이 타당하다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핵무기와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체제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그 체제를 만드는데 가해진 힘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분단과 정전체제를 만들어낸 핵심적인 힘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핵이다. 이에 따라 정전체제와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통일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탈핵'의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핵 시대의 개막이 한반도 분단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면, 통일은 핵 시대 폐막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곧 '핵무기 없는 세계'가 한반도 통일의 선행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체제를 관통해온 '제1의 핵 시대'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핵우산'이라는 이름하에 드리워진 미국 핵 문제를 적어도 한반도 차원에서는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당연히 북핵 해결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평화적인 융합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지대로 귀결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지대는 동북아 비핵지대로 퍼져나가야 한다.

핵 시대의 개막은 한반도 분단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고, 그 분단은 한국전쟁의 원인(遠因)이 되고 말았다. 또한 한국전쟁은 핵의 위력을 과신한 트루먼과 스탈린의 오판이 만나면서 발발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은 강대국들의 핵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핵시대의 세계화에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1)

이러한 역사를 복기해본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도 자명해진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남-북-미 모두 핵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과 결합해 세계 비핵화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출발점은 핵의 세계화를 야기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함으로써 '탈핵의 세계화'의 문을 여는 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도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으로 돕겠다"거나 "북핵 해결의 근본적인 해법은 한반도 통일이다"라는 하나마나한 얘기 말고 아래와 같은 연설을 유엔 총회에서 했으면 어땠을까?

"올해는 핵과 인류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된 지 70년째 되는 해입니다. 둘 사이의 동거가 얼마나 위험한 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직시한 버락 오마바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인류 모두의 염원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70년 동안 핵시대 한복판에 있어온 한반도에서 시작하자고 말입니다"

□ 필자 주석

(1) 핵의 세계사, 정욱식 지음, 아카이브 펴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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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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