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통일 대박' 타령하면서 '외교 쪽박'?

[한반도 브리핑] 진전 없는 남북 관계, 동북아 갈등의 빌미

2015 동북아 지형

막바지로 가는 2015년의 한반도 및 동북아 국제 정치를 요약하면, 패권 하락의 가능성에 직면한 미국이 '재균형전략'으로 아시아의 동맹 네트워크를 부활시켜 중국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를 본격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략의 성패가 동맹국들, 특히 한국과 일본을 통한 아웃소싱 정도에 달려있기 때문에 미국이 지향하는 것은 최대 한-미-일 삼각 동맹, 최소 통합적 군사 협력 체제 구축임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현재 입지는 미국의 이같은 구상과 보합성이 높다. 이에 일본은 편승 전략을 통해 재무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정권이 미-중 갈등 구조의 촉매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중 사이에서 난처해 하면서도 한-미 동맹의 프레임에 갇혀 운신의 폭이 좁아진 양상이다.

지금 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동북아에서는 안보 담론이 도그마로 자리 잡고 있으며 평화 담론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냉전적 진영 논리, 배타적 민족주의, 영토 갈등, 군사적 현실주의, 그리고 지정학적 사고 등 퇴행적 현상이 두드러진다. 냉전이 종식된 지 사반세기가 지나고 있지만 유럽과는 달리 통합이나 평화보다 군비 경쟁이 더욱 불붙고 있으며, 분열과 대결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세력 전이에 따른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구조적 요인에다 국내 정치적 필요와 리더십의 특성이 맞물리면서 동북아 6개국은 공통적으로 강경한 대외 정책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선군 정치, 일본의 재무장, 러시아의 반미 정책, 중국의 신민족주의, 미국의 중국 봉쇄론, 한국의 안보 포퓰리즘들이 같은 맥락이다.

그 중심에 남북 관계 악화가 놓여있다. 분단이 해소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호 적대감은 더 커졌다. 남북 관계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한-미 동맹은 군사 요소가 지배하고 있다. 또 남북은 물론이고 동북아 전체의 안보 딜레마가 초래되고 있다. 물론 북한의 책임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일이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는 북한을 압박하고, 이를 동맹 강화나 진영 외교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재균형 전략과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

한-미-일 군사 협력의 시작점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다. 미국은 전후 처리를 위해 유럽에서 다자 체제를 선택했던 것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중첩적인 양자 동맹을 기본 프레임으로 설정했다. 해방 후 한-일 관계 역시 지역의 여러 문제는 도외시된 채,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냉전 구도 속에서 설정돼왔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재균형 전략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수정 구축이라는 함의를 지닌다. 또는 전후 지속되어왔던 한-미-일 '의사 동맹의 실질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제한하는 미국의 역할이 사라지고,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일본의 군사 및 경제적 동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2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정상 회담 결과 발표를 위해 기자 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을 일본을 연결시킨다는 미국의 계획이 본격화된 것은 2012년 6월 한-미 외교·국방 장관(2+2) 회담과 이듬해 10월 미-일 외교·국방 장관 회담이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위협 인식을 일치시켰다. 한-미-일 군사 협력의 핵심은 단일전장을 전제한 동북아 지역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에 있다. 미국은 동맹국에 MD를 구축함으로써 확장 억지를 지원하고, 동시에 MD의 엄청난 소요 비용을 아웃소싱하며,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미국 내 반대 여론을 비껴갈 수 있는 통로로 활용했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제(KAMD)는 물론이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등도 모두 미국의 지역 MD로의 편입이라는 동일한 지점을 향한다. 2012년 제기한 소위 '포괄적인 연합 방어' 태세가 바로 한국형 MD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확인해준다. 국방부는 여전히 MD 참여를 부인하고 있지만 KAMD가 미국의 조기 경보 지원이나 관련 무기 구입, 지휘 체계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의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한-미-일 군사 정보 공유에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2년 밀실에서 추진했던 시도가 국내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이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가속화되는 일본 우경화로 인해 국민 감정이 악화되면서 꼼짝하지 못하다가 미국이 한-일 관계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3월 헤이그에서의 한-미-일 3자 정상 회담의 분위기를 타고 차관보급 안보 토의(DTT)에서 한-미-일 군사 정보 교류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방안이 본격 거론되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위해 필수적인 한-미-일 3각 군사 협력을 원하는 미국의 입장이 착착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계획의 최대 걸림돌은 악화된 한-일 관계라고 판단해왔다. 처음에는 아베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비판적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전략적 필요가 커지면서 태도가 달라졌는데, 올해 초 웬디 셔먼의 발언으로 이러한 입장이 표출됐다. 미국은 현재 자신의 세계 전략에 일본이 공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군사 협력을 방해하는 우경화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한-일의 역사 대립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회피 또는 최소화해야 할 영역일 뿐이다.

2015년 4월 말 아베의 방미 당시 합의한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 개정과 9월 개정 안보법의 참의원 통과는 전후 70년 만에 요시다 독트린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국의 재균형 전략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양국의 협력 범위를 세계로 확대하고, 협력에 대한 제한 조건을 사실상 철폐하고, 중국을 봉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하위의 실행 규칙인 안보법과 가이드라인의 개정을 통해 상위의 법 체계인 평화헌법과 미-일 상호 보장 조약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이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주도로 이어져 온 한-미-일 군사 협력의 강화는 곧바로 북-중-러 협력 가능성을 높일 것이므로 신(新)냉전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현재 미-중은 물론이고 역내국들의 높은 수준의 상호 의존을 감안하면 과거 냉전 질서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중은 지속적으로 한반도를 시험대 삼아 상대의 의도를 알고자 하는 유혹이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미-중 양국의 '간보기'와 '돌 던지기'사이에서 괴롭힘을 당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방공 식별 구역, 사드 배치, 집단 자위권 허용, 그리고 미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한국 역할론 제기 등이 바로 그런 함의를 가지며, 앞으로도 유사 사례들이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기회는 어디에?

전후 한반도를 규정했던 두 개의 삼각동맹이 냉전 붕괴에도 해체되지 않고 있다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복구되고 있다. 여기에 남북 대결 구조는 빌미로 작동한다. 2015년의 동북아 국제 정치는 이것이 확률적 가능성만이 아닌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점점 뚜렷해지는 진영을 뛰어넘는 외교로 진영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먼저 북한으로, 다음은 중국으로, 또 러시아로 향해야 한다. 또한 외교적 상상력과 다양한 레버리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외교는 여전히 한-미 동맹과 안보 중독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근본주의적 원칙 외교로 인해 스스로를 제한해왔으며, 구조적인 대외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매우 피상적이고 지엽적으로 대처해왔다.

지난 8월 말 휴전선에서의 북한 도발로 인한 위기가 남북의 극적인 합의로 타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뒤이은 9월 초 중국의 전승절 방문은 바로 '진영을 넘는 외교'로 볼 수 있었으며, 중단되었던 한-중-일 3자 정상 회담을 이끌어낸 것도 고무적인 성과였다. 줄줄이 이어지는 정상 회담들은 모멘텀을 이어가야 하는, 허비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 기회가 제대로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당분간 동북아 각국은 어느 정도 관리와 조정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정치 일정이 그러하고, 중국 역시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일본 역시 개헌이라는 최종 관문이 남아있지만 안보 가이드라인과 안보법을 개정한 이후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추석 연휴 기간 있었던 미-중 정상 회담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양국 모두 생산적인 회담이었다고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세력 전이의 불안정한 상황이 제로섬 관계로 악화되지 않도록 협력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윈-윈의 강대국 관계를 구축해가자는, 지난 수년 간 미-중 관계를 규정했던 주제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70차 유엔총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만이 과감한 이니셔티브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동북아 평화를 선도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그 기대가 무리였던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외교에는 8.25 남북 합의와 9월 초 한-중 정상 회담의 탄력을 받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낼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제안은 없었다.

여전히 인권과 도발에 대한 경고와 '통일 대박' 담론만 반복했고, 북한은 이에 예외 없이 강력 반발했다. 로켓 발사나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나 압박을 논의하는 것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일뿐, 이미 정책적 대안으로는 실효성을 상실해 버렸다. 조정 국면에 편승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북한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핵능력은 더욱 고도화될 것이며, 이번에 미-중이 잠정적으로 덮어둔 진영 대결 구조는 다시 고개를 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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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는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의회산하 평화재단 연구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평가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한미관계를 포함한 국제정치경제 등을 주 연구 분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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