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북정책은 지지율 높이는 수단?"

[토론회]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

"10.4 남북정상선언은 평화 문제를 남북 당국 간 직접적 의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노무현재단,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한반도평화포럼, 통일맞이가 주관하고 영국 채텀하우스가 함께하는 10.4선언 8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이승환 통일맞이 운영위원장은 "평화문제가 직접 남북관계 의제가 돼서 구체화된 사례가 없다"며 10.4선언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 위원장은 "북한이 평화문제는 미국과 논의해야 할 의제로 규정하고, 남한과는 교류협력 의제를 다룬다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동안 남북 간 직접적인 평화체제 논의가 사실상 없었지만 10.4선언은 기존과 달리 평화와 통일 문제에 핵심적인 대목을 짚었다고 평가했다.

▲ 2일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 역시 "10.4선언은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선언"이라며 향후 대북정책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에서 사라졌던 '평화'를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4 선언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 주도의 협력과 노력을 문서에 명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이뤄졌기 때문에 향후 이행이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당시 노 대통령 역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가볍게 짚고 넘어간 적이 있다. 정권이 끝나가는 시점에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며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남북관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징검다리를 놓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해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정권 말기였기 때문에 이것이 정치적으로 다음 선거에 이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철저히 선거와 무관하게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 없었던 아버지와 다르지 않아

10.4선언이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과거 정부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으로 인해 실제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승환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 했던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ABR'(Anything But Roh)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박근혜 정부도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오히려 더 강하게 과거의 화해·협력 정책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힘의 논리를 관철시키고, 이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의제나 대화 공간에 북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일관해왔다. '힘으로 밀어붙이니 북한이 굴복하더라' 라는 식으로 과거 정부의 성과를 지우면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연철 교수는 지난 8월 5일 진행됐던 경원선 기공식을 예로 들며 박근혜 정부의 '과거 정부 성과 지우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남북 철도를 활용해서 대륙 횡단 철도와 연결하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이미 경의선은 2007년에 시험 운행도 했고 연결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 간 신뢰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의선 연결해서 대륙 철도와 연결할 수 있는데, 경의선은 과거 정부의 성과고 자신들은 새로운 성과를 만들겠다는, '정파적'인 시각으로 남북관계를 다루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가 국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고도의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흡수통일과 남북관계 개선 중 어느 것도 진정성을 가지고 추진하지 않으면서 평화통일과 안보 담론 모두를 손에 쥐고 지지율을 높이는 데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국민들에게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만들고 그 틈새를 치고 들어온 것"이라며 "고도로 계획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소 데탕트 분위기와 국민 여론에 어쩔 수 없이 편승해 간 것"이라며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성명 이후에 이산가족 상봉만 진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일갈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북한의 대남 정책이 각각 국내·대외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비록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마련됐지만, 실제 향후 남북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환 위원장은 "남북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대화 국면을 형성하더라도 서로가 품고 있는 적대와 불신은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어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이 지속적으로 고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8.25합의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김준형 교수 역시 "북한은 군축도 할 수 있고 6자회담도 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 적당한 수준에서 대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일 것"이라며 "남북이 서로 이런 식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나머지 2년 반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국내 여론 역시 남북관계 개선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김연철 교수는 " 남북관계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악화됐다. 최근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북한을 '북괴'라고 한다. 7.4 남북공동성명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이제 북괴라는 말은 쓰지 말자고 했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북괴라는 말이 젊은이들에게 각인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10.4선언의 이행과 관련해 그 철학은 계승하되 설득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과 정책의 방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김정일 직접 통화 단 한 차례도 없어

한편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 10·4 남북정상선언>을 공동 집필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느냐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질문에 단 한 차례도 직접 통화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 "노무현-김정일, 직접 통화한 적 없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6.15 남북공동선언이 빈 껍데기가 됐다는 발언을 했다고 책에 명시한 것과 관련해 김 전 원장은 "모 언론이 친노가 김대중 대통령을 폄하한 몇 가지 사례 중에 하나로 보도했던데 절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은 '6.15 남북공동선언이 나온 이후 정세의 변화가 있어 (공동선언이) 빈 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6.15 선언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이후 역사를 보면 빈 선전곽이 돼버렸다'라고 말한 것이다"라며 "6.15 선언이 빈 선전곽이 된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이)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가 6자회담보다 앞서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진술과 관련해 백 실장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참여정부의 기본 입장은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선순환시킨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관계가 잘 되면 6자회담도 잘되고, 6자회담이 잘돼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자는 것이 참여 정부의 기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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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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