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쳐다보는 박근혜 정부, 한심하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미사일 발사-핵실험-한반도 정세 악화' 악순환 반복된다

지난 8월 25일 남북은 고위급접촉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일정 부분 해소했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9월 14, 15일 잇따라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감행을 시사하면서 당장 다음 달로 예정돼있는 이산가족 상봉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을 언급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이를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기보다는, 미국과 중국의 관심을 끌고 이에 따른 반대급부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성명서나 담화도 아니고 질의 응답식으로 입장을 밝혔다는 점, 그리고 직급이 낮은 인사들의 발언을 이용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상당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 이전까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을 막을 시간적인 여유는 분명히 있다. 문제는 정부가 당국 회담 등 북한의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이를 이용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는 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진행한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통일부 장관은 남북대화 재개하고 외교부 장관은 미국, 중국과 이야기하면서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과 핵을 막는 과정에서 센터포워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한국은 관중석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알아서 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의 외교는 '용수철 외교'다. 용수철 같은 북한의 특성이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안전이나 생명, 재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사전에 나서야 하는 것"이라며 "이번에도 사태를 방관하기만 한다면 장거리미사일 발사-핵실험-한반도 정세 악화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이해서 장거리 로켓 발사와 4차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 이후에 북한은 실제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시사하기도 했는데요. 북한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미국에서 25일(현지시각) 열릴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일까요?

정세현 : 누군가가 자신을 강력하게 말려주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즉,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심을 끌고,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반대급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이런 행위들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반대급부 말입니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외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결국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축포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죠. 미사일과 핵실험의 성격이 이렇게 규정되다 보니 북한으로서는 외부의 소문대로 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그런데 축포를 쏘면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북한 경제는 아주 나빠질 수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북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북한의 경제가 나빠지고 인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유엔 안보리의 제재라는 것이 초기에는 반짝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올해 8월 압록강·두만강의 국경 지역을 직접 가보니 제재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제재가 시작되면 처음 1~2년은 타격이 큽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금 이 시기에 이러한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실험을 언급했을 때 발언자의 직급을 낮춘 것을 보더라도 북한의 의도가 실제 발사나 실험 강행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사일의 경우 지난 14일 북한의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으로 언급했고 핵실험은 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역시 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을 통해 밝혔습니다.

우주개발국 국장이나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북한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이러한 입장이 공화국 정부 성명이나 국방위원회 또는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그건 되돌릴 수 없는 확고한 방침, 말 그대로 '최종 통보'였을 겁니다.

여기에 북한은 이 입장을 대외용으로만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이나 중앙TV에서는 방영하지 않아 북한 주민들에게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들한테 공개적으로 알려지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입장을 뒤집기가 어려워집니다. 북한 나름의 퇴로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결국 북한이 성명서나 담화도 아니고 질의 응답식으로 입장을 밝혔다는 점, 그리고 직급이 낮은 인사들의 발언을 이용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상당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10월 10일 기념일을 20일 이상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군불을 땐 것인데, 오는 25일(현지시각)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사일 발사든 핵실험이든, 미-중이 만났을 때 북한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한 작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지난 15일 핵실험을 언급하면서 이는 미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19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9.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세미나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북한에 강력하게 경고했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을 달래는 것 같은 이야기도 했습니다.

▲ 지난 19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9.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제재 이상'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며 겁을 줬지만, 동시에 성김 미국 6자회담 수석 대표는 필요하다면 평양도 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이러한 관련국들의 반응이 나올 것을 계산하고 이를 역으로 추산해 행동에 들어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중국에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계기로 고위급 인사를 보낸다고 하는데, 이는 북한을 압박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북한을 달래는 조치도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북-중, 북-러 관계를 살펴보면 거물들이 움직일 때 빈손으로 가지 않습니다. 상당히 큰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갔다가 조용히 내려놓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이 여기까지 계산하고 행동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미사일과 핵실험을 언급하면서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 진짜 의도라면,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우리가 가장 불안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대 피해국이 우리인데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건 중대한 상황입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회담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면서, 그런 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진행한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접촉 이후 공동보도문 1항에 있는 당국 회담을 여는 방법, 북한에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말라는 성명을 내는 방법, 직접 평양에 들어가서 만나는 방법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널려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평양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쥐고 있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8월 25일에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자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남북 정상은 8.25 합의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단 70년간 계속된 긴장의 악순환을 끊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고 김정은 제1위원장 역시 "북남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남북 정상이 이번 합의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북한에 당국 회담 개최를 강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 전에 회담을 열고 상봉 사업의 지속 문제도 논의해야 합니다. 8.25 합의 공동보도문 6항에 나와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도 당국회담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남북은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양에 가겠다고 하면 저쪽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비공개 접촉을 통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곤란하다, 양측 정상이 큰 의미를 부여한 8.25 합의가 앞으로도 힘을 가지려면 그런 짓 하지 마라, 너네가 미사일 쏘고 핵실험 하는데도 이 합의가 이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애초에 8.25 합의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당국 회담의 수석 대표도 장관급이 돼야 합니다. 통일부 장관이 입장을 정하고 북한에 제안하고 직접 올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당사자인 한국은 미국만 쳐다보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프레시안 : 미국과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같은, 현재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공조 작업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정세현 : 10월 10일 이후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전에라도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든 외교부 장관이든 8.25 때 합의한 당국 회담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겠다고 미국에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하고 미국에는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 달라고 하면서 역할 분담을 통해 사전에 북한의 행위를 예방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통일부 장관은 남북대화 재개하고 외교부 장관은 미국, 중국과 이야기하면서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과 핵을 막는 과정에서 센터포워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한국은 관중석에 앉아 있는 형국입니다. '미국이 알아서 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이 움직여야만 북한이 그나마 듣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에 향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비전을 주면 북한도 한국말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 잘 들으면 북한에도 실익이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하고 나면 미국도 체면이 있기 때문에 대북제재 결의안을 유엔에 내놓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외교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중국도 여기에 동참할 겁니다. 그런데 이건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일이 이미 벌어진 다음에 사후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뿐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 수습하겠다는 것밖에 안됩니다. 단호한 대응이라는 내용 자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겁니까? 군사적인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책임지지도 못하고 내용도 없는 레토릭에 불과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실제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이산가족 상봉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요? 일부에서는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정세현 : 일단 북한이 쏘면 이산가족 상봉은 못 한다고 봐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인 사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만큼 정치적인 사안도 없습니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주장처럼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북한이 먼저 끊어버릴 겁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우리는 유엔 안보리 제재에 동참할 텐데, 그러면 북한은 미국과 한편이 돼서 자신들을 압박하는 제재에 동참하는 남한과 "상종할 수 없다"면서 상봉을 취소할 것입니다.

문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이산가족 상봉뿐만 아니라 8.25 합의도 휴짓조각이 돼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행태를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8.25 합의가 당시에 불거졌던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면 북한의 행위를 지켜보고만 있어도 됩니다. 하지만 이 합의를 통해 남북관계 모멘텀을 살려 나가려면 이렇게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북한 입장에서도 8.25 합의를 살려 나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북한 주민들에게 손에 잡히는 선물을 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8.25 합의에 상당히 신경을 썼던 것입니다. 물론 막판에 우리가 목함 지뢰 폭발과 관련해 북한의 시인, 사과, 재발 방지를 '유감 표명'으로 '퉁'쳐주고 넘어가면서 합의에 이르긴 했지만, 8.25합의를 만들기 위해 밑자리를 깐 것은 북한이었습니다. 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했구요.

즉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대내 경제 문제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우선 남북관계를 풀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관계를 풀지 않으면 북-미, 북-중 관계도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서울을 들러서 워싱턴, 베이징으로 가야 한다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한편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이어질 것이고 그러면 거기에 반발한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사일과 핵실험을 분리해서 보기 힘든 이유입니다.

▲ 지난 2012년 12월 광명성 3호-2호기 발사 장면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2012년 말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후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이어졌고 다음 해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를 보면 제재를 가했을 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더 반발하는 양상을 취해왔습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사태를 방관하기만 한다면 장거리미사일 발사-핵실험-한반도 정세 악화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의 외교는 '용수철 외교'입니다. 바로 튀어 버리는 용수철 같은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서워서 달래자는 것이 아니라, 용수철 같은 북한의 특성이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안전이나 생명, 재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사전에 나서야 하는 겁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미국, 중국, 러시아는 어쨌든 '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피할 수도 없고, 퇴로도 없습니다.

정부 "잔소리하지 말고 듣기나 해"?

프레시안 :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보안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어떻게 정책을 집행해 나가고 있는지 국민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북한과 협상이 밀실에서만 이뤄지다 보니, 오히려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군사 정권 시절에도 판문점에서 하는 회담의 경우 기자들이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기사를 송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8.25 합의를 만들어낸 고위급접촉만 해도 완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최종 결론 나올 때까지는 접근 자체를 못하게 했습니다.

600차례가 넘는 남북 회담 중 99차례 직접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에 비춰봤을 때 회담 내용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회담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1998년 비료회담 당시 수석대표로 참석했을 때 1970년대 남북대화를 주도했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회담은 실제 협상은 3이고 홍보가 7이야".

강 전 장관은 협상 대표들의 협상력은 국민적 지지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추측성 기사가 나가지 않아야 협상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고하는 효과도 있지만, 오보가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내용 공개는 필요하다는 겁니다.

실제 1998년 회담 당시 밤 12시, 새벽 1시를 가리지 않고 그날 일정이 끝나면 협상 상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습니다. 오전 회의 때 뭐했고 오후에 실무접촉 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했고, 접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추측성 기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효과가 있는데도 왜 박근혜 정부는 남북회담만 하면 함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잔소리하지 말고 기다려. 결과만 발표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물론 비공개 회담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공개 회담을 통해 얼개를 짰으면 그다음에는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초창기에 소위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비공개로 하는 것이지, 모든 회담을 비공개로 처리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비공개로 한다고 했으면 처음부터 장소도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판문점에서 만날 것이 아니라 제3국에서 만나야 하지 않습니까? 판문점에서 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은 알려주면서 회담 상황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안하고 나중에 합의문만 읽는 것은 국민들에게 "닥치고 듣기나 해"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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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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