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영도에, 조국은 강남에 출마하십시오

[주간 프레시안 뷰] 문재인, 안철수, 천정배, 이해찬, 조국의 몫

가장 당황한 사람은 천정배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이제 각자 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럼 상황을 먼저 정리해볼까요.

우선 혁신위의 최종 안이 나오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의외로 천정배 의원입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특유의 어정쩡함을 그만두고 비주류를 압박하고, 결과적으로 화기애애한 저녁식사로 마무리되자, 천 의원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십년 전으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개혁성은 있지만 정치적 도량이 너무 좁은 사람 말입니다.

신당을 통한 본인의 정치적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에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한 마디로 모든 뉴스를 덮어버렸습니다. 이어진 인터뷰들을 보아도 '문재인이 대표인 당이라서 안된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주장의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신당의 구체적인 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창당의 구체적 일정도, 비전도, 정책도, 하물며 사람도 나온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누구든 천 의원에게 안에 들어와서 개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나는 개혁을 하겠다는데 왜 믿지를 않나? 신당을 하겠다는데 왜 자꾸 들어오라고 하나? 무례하다.'

이것이 천 의원의 생각입니다. 다수의 생각을 말씀드릴까요?

'개혁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개혁이라면 얼마나 쉽겠나? 신당은 혼자 하는가? 염동연, 이철 같은 흘러간 정치인말고 당신이 말한 새로운 인물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 한 명도 보여준 사람이 없지 않나?'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는 그 사람의 말만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처한 조건과 환경,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 앞으로의 가능성을 따져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천 의원의 태도야말로 무례를 넘어 오만한 것입니다. 그 오만은 새정치민주연합과 문 대표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조그만 관심이라도 있는 다수 시민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 천정배가 말하는 것이 틀렸나? 내가 하겠다는데 왜 믿지를 못하나'라는 울분이 있을 줄 압니다. 2003년 정기국회에서 4대 개혁입법,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겠다고 했던 원내대표 천정배가 보여준 태도가 그것이었습니다. 국보법 철폐에 대해서는 노회찬 전 의원조차도 전략적 실패였다고 회고합니다. 지금 천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정배 의원이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에 나왔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수도권에서 야당에게 가장 확실한 지역구 중 하나인 안산에서 15대 국회의원을 1996년에 시작했습니다. 16대, 17대를 거쳐서 2008년 18대 총선에도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16년 국회의원, 나름 편하게 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안산에서 5선에 출마하지 않은 것을 기득권 포기라고 보아야 할까요? 전북에서 종로로 지역구를 바꾼 정세균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것은 양심상 허락지 않는다며 대구로 내려간 김부겸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그래도 김부겸의 장점이 포용력이고 천정배의 장점은 개혁성인가요?

지난 총선에서 천 의원은 송파에서 출마해 3.9%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공천이 늦었다고는 하지만, 천정배라는 정치인이 지역구민들을 살갑게 대하는 능력으로 당선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천정배의 이름값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에도 천정배 의원은 송파을에서 지역구를 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어이 보궐선거에서 19대 국회에 다시 진출해, 5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비록 무소속이었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고향인 광주였습니다. 경북 출신의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해 떨어졌다가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돌아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 사람이 새누리당을 개혁하겠다는 말에 금방 귀를 기울이게 될까요?

친노와 계파수장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천 의원의 말은 어떻게 들릴까요? 천 의원은 오늘(24일)도 '문 대표의 부산 출마가 희생인지 모르겠다'고 비꼬았습니다. 본인의 광주 출마는 어땠습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먼저 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울분을 토하기 전에 우선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고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는 능력과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은 다른 것입니다. 본인을 너무 과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는 아직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에서 기득권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박준영 도지사가 신당 창당을 말하고 박주선 의원이 탈당했습니다만, 그래도 호남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개혁적인 대안은 역시 천정배 의원을 주축으로 한 신당입니다.

호남에서 건전한 경쟁이 펼쳐질 때, 영남에서도 균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모로 보아도 천 의원이 말하는 신당은 이점이 많습니다. 가능성도 있습니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천정배라는 정치인의 도량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언제든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정치인 천정배 개인은 물론이고 신당의 미래도 어둡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은 영도에서 김무성과 싸우십시오

이제 눈을 새정치민주연합 내부로 돌려봅시다.

문재인 대표는 부산출마를 심사숙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심사숙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 결단이 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비서실장 문재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악수는 장고 끝에 나오는 법입니다. 기세를 잡았습니다. 단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 개인과 친노라는 계파, 혹은 새정치라는 당이 잡은 것이 아닙니다. 사분오열, 지리멸렬해 있던 야권 전체입니다.

영도에 출마하십시오. 사지가 아닙니다. 어차피 살 곳은 없습니다. 엄살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당 대표가 선거를 지휘하지 못해서 불리하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김무성의 지역구가 영도입니다. 장수가 적진에 일전을 불사하지 않는다면 이기기 어려운 싸움입니다.

무엇보다 문 대표가 결단하지 않으면, 혁신위의 다른 제안도 빛을 바라게 됩니다. 함께 거론된 어느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득권의 포기 없이는 당 개혁도, 총선승리도 요원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합니다.

안철수, 김한길 의원의 장도를 기원합니다

안철수 의원이 노원병에 주저앉겠다고 했습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지역구민들과의 약속을 잘 지켜서 노원을 위한 일을 많이 하는 다선의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한길 의원도 광진에서 구민들을 위한 좋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한다면, 말릴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분이 오래도록 국회의원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해찬, 문희상 의원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역구가 아니라 정치를 말입니다. 두 의원은 당의 짐이 되었습니다. 20년 전에 선거를 지휘한 사람이 아직도 선거는 내가 제일 잘한다고 하고 있으니, 새정치민주연합이새누리당보다 늙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그만두지 않고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물갈이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의 수장들에게 희생을 요구한 것만큼이나 마지막 혁신안에서 중요한 것은 조경태 의원을 출당시키자고 한 것입니다. 잘 한 일입니다. '조경태 의원이 새정치의 이름으로 부산에서 당선된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짓말입니다.

조경태 의원은 한번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름으로 당선된 적이 없습니다. 조경태가 당선되었는데, 우연히 그 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이더라는 정도가 겨우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의정활동과 당내활동 모두 없느니 못합니다.


▲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강남 좌파' 조국 없이 혁신안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국 교수가 강남에 출마할 것을 제안합니다. 조국 교수는 오늘(24일)도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 정치를 하는 일은 내 인생에 없다'고 공언했습니다. 나쁜 태도입니다.

사교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사상가는, 자신이 정치에 맞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정치에 자신을 참여시켜 희생하지 않으면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없기 때문에 출마했습니다.

혁신위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을 내 놓으라고 하고, 나는 절대 정치 안 한다는 태도는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방법 중 으뜸입니다. 혁신안의 요구도 힘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역 의원들은 콧방귀를 낄 것입니다.

백마디 말보다 한마디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본령입니다. 그것만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인은 고고함을 유지한 채 희생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사람의 혁신안을 받아들일 정치인은 없습니다.

혁신안을 관철시키고 싶은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국 교수가 강남에 출마하십시오. '강남 좌파'가 정말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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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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