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육참골단'으로 되지 않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선거는 노선 아니라 신뢰로 이긴다"

렛잇비, 렛잇고

2015년도 반년이 지나고 어느새 장마가 다가왔습니다. 올 상반기 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우를 세어보니 크게 다섯 번 정도 됩니다. 문재인 대표의 당선과 4.29 재보선 참패. 곧바로 이어진 정청래 의원 막말사건, 우여곡절 끝에 김상곤을 위원장으로하는 혁신위의 출범.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과 원내대표의 반발입니다. 5번 중에, 문 대표의 당선을 제외하고는 패배, 분열, 혼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리더십의 문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관악을 공천과정에서 잡음이 없었다면, 최고위 회의석상에서 주승용 의원을 붙들지 않고 반대로 정청래 의원을 꾸짖었다면, 그리고 주승용 의원이 돌아올 때까지 최고위 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했다면, 혁신위원장 선정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성공적인 영입 후에 발표했더라면, 혁신위 최종안이 나올 때까지 새로운 사무총장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나아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혁신위원회는 1차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언론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뉴스거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내에서 나온 평가도 '이만하면 무난하다' 혹은 '친노에게 심사를 어떻게 맡기느냐' 정도였습니다. 전에도 지적했듯이 혁신위원회의 안은 스스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대표가 실행해야 하는 안이기 때문에, 그 혁신안이 의미가 있느냐는 문 대표의 정치적 실행력에 달려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무슨 안이 나온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분위기도 그런 듯합니다. 혁신위가 뭐라든 상관할 바 아닙니다. 그 안을 실현할 문재인 대표의 임기가 10월 재보선으로 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10월 재보선은 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라 불리는 호남과 대전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국적으로 9곳의 기초단체장 중에서 전남 장성, 무안, 장흥군수, 광주 동구청장 등 호남이 많고, 권선택 대전시장도 대법원 판결을 기다라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저렇게 안팎으로 시끄러우니 현역 의원들은 참 고민이 많겠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소위 비노 진영의 의원들은 당장 10월까지는 문재인에 반대할 필요도, 찬성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역구에 가서 열심히 인사하고 당이야 어떻든 사람을 보아달라고 하면 됩니다.

혹시 요행으로 재보선에서 승리하면 그때 가서 지도부에 잘 보이면 됩니다. 재보선 승리 이후 문 대표가 처음부터 협조적이었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천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염려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의원들은 대단히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가서야 당무에 협조하는 의원들에게도 문 대표는 감지덕지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문 대표가 결판을 짓겠다고 나온다면 다수 의원들은 "우리당의 텃밭에서 겨우 기초선거 이겼다고 이렇게 오만하게 나올 수 있는가?"하고 반발하면 됩니다. 만약 문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당이나 탈당으로 위협하면 됩니다. 여차하면 실제로 감행해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보선에 이길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거의 없습니다.

재보선에 지면 당연히 대표직 사퇴를 요구할 것입니다. 대표직을 내놓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분당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정해진 수순입니다. 문재인 대표가 당선 되고 재보선에서 패배한 후 이 흐름은 거의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당과 야권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분들께 안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어떻게 되지도 않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토니 블레어가 마흔 살에 노동당 당수가 되었을 때, 그는 노동당의 집권전략을 바꾸었습니다. 이전까지 노동당은 무려 14년 동안 집권하지 못했는데, 당내 주류는 그 원인을 노선의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노선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결과는 계속된 패배였습니다.

흔히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의 강령을 제3의 길로 바꾸어서 선거에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에서는 그것을 타락이라고 보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사회주의에서 사민주의 노선으로의 합리적 전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선주의에 따르면 결론이 뻔합니다.

블레어의 선택을 타락이라고 보면 1997년 선거는 타락해서 이겼다가 2010년에 결국 스스로 판 신자유주의의 무덤에 들어가서 패배한 셈이 됩니다. 그리고 올해 선거도 역시 더 철저한 계급정당으로 탄생하지 못해서 진 것입니다.

블레어의 선택을 합리적이라고 보면, 1997년 선거는 노선의 승리이고 2010년 패배는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올해 선거의 패배 역시 레드 에드(Red Ed)라고 불린 에드워드 밀리반드 당수가 가진 과격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을까요? 아마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노선은 가치의 문제일 뿐, 선거의 승패와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노선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선을 통해서 무엇이 실현되었는가, 무엇이 실현될 것인가를 봅니다.

토니 블레어가 제 3의 길을 선택한 것은, 그 길이 분명한 대안이고 멋진 미래를 보장해서가 아니라, 당시 노동당이 내 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블레어가 인식한 가장 큰 선거 패배 이유는 '노동당은 허황된 목표를 제시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니 블레어는 노선 때문에 3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노동당은 오로지 실천할 수 있는 것만을 약속한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그 노선을 기꺼이 수용했습니다. 요컨대 선거는 노선이 아니라 신뢰로 승리한다는 점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를 모두 벗어나야 하고, 벗어날 수 있다고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노동당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노동당은 새 노동당(New Labour)이라는 캐치프레이를 내 걸었고,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집권 이후에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1)정책의 실효성은 협조성에 의거한다.

2)모든 정책은 정치적으로 우선 성공해야 한다.

불과 43살에 수상이 된 이 노동당 당수는 급진적 개혁은 성공할 수도 없고,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면 오히려 두 걸음 후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입니다. 백성의 신뢰 없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설 수 없는데 하물며 정당이 설 수 있겠습니까?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개혁은 '육참골단'으로 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국 이야기로 돌아와 봅니다. 질문은 분명합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문재인도, 김상곤도, 조국도 '육참골단'(肉斬骨斷.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개혁은 '육참골단'의 기개로 되지 않습니다. 무도 썰 수 없는 칼을 들고 살을 베고 뼈를 자른다고 하니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은 날이 갈수록 믿을 수 없는 말만 하는 정당인 셈입니다.

정치는 생물이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4.29 재보선 직후에 문재인 대표가 대통령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가 내 정치의 마지막이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 문 대표가 칼자루를 쥐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테니까요.

문 대표의 정치적 비전은 어차피 내년 총선에 달려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문 대표가 버티고 또 커 나갈 수 있는 힘은 본인이 이야기한대로 계파 정치의 종식에 있었습니다. 불출마 선언만이 계파 정치 종식의 기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불출마 선언으로 전권을 쥐고 내년 총선을 임해서 문 대표가 승리한다면, 그 다음 누가 '이제 약속한대로 정계를 은퇴하십시오' 할 수 있겠습니까?

동요할 것 없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곧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야권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신성화에서 벗어난 정당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아니라 나의 정신, 나의 비전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소회가 아니라 정치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기 정치를 위해 '호가호위'하려는 허울이라고 보아도 이제는 좋을 듯싶습니다.

김병준 교수가 뼈아프게 지적했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음의 바로 그 순간에 권력화 되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화장되어 나오는 입구에서부터 정치인들은 앞자리를 다투려고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어찌 그것이 노 대통령이 뜻이었겠습니까만, 그것이 또 부인할 수 없는 정치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처음과 달리 말년에 사람들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천정배 의원은 이희호 여사의 충고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김대중은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누구의 뒤를 이은 '뉴ㅇㅇ'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호남이 자랑스러워 한 김대중은, '대통령 김대중'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군부독재에 억압당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1971년의 그 김대중입니다. 그 희망 때문에 1980년 광주는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지금 천정배는 그 희망을 주고 있습니까?

지금 '뉴DJ'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호남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면, 그것은 평민당 출현 이후 30년째 호남을 집권한 세력의 잘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김대중의 책임도 빠질 수 없습니다. 당연히 천정배 의원의 책임도 빠질 수 없습니다.

호남 자민련이 아니라 진정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면, 지금 천정배 의원이 추구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천 의원은 정책에서는 새로움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에서는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호남 중심의 야권 분열은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에서 분열하면 호남은 두 개의 선택지를 갖게 됩니다. 이 정당은 현재로서는 충청이나 수도권에 미칠 영향이 없습니다. 오히려 영남에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새누리당의 줄 세우기에 반발하는 영남의 합리적 야권 후보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호남에서도 영남에서도 유권자들은 대안을 갖게 될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게 될 것이고, 소위 지역 텃밭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소수정당 후보들은 영호남 지역구와 수도권에서 비교적 대등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수도권에서의 득표를 위해서 정책정당 성향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호남에서는 분열하는데, 영남은 똘똘 뭉치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상관없습니다. 천정배 의원의 말도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을 안에서 개혁하려다 안 되니 밖에서 개혁하자는 대의명분을 벗어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영남에서 친박연대가 새누리당을 이긴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듯이, 호남에서 누가 이기든 세상이 변할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호남이 아니라 수도권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혁신위에 전권을 줄 정도로 당이 누란지위에 있음에도 특정계파와 대표가 손잡고 어떤 사무총장을 밀었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당에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휘체계가 무너졌다는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호남은 호남대로, 수도권에서는 수도권대로 희망을 가질만한 이야기가 과연 나오는지 그것을 기대해 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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