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은 떨고 있다

[정욱식 칼럼] 애시턴 카터 美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애시턴 카터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의 시민단체인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프레시안>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오늘 한국 언론에 소개된 장관님의 말씀을 접하고 몇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장관님을 비롯한 미국 정부 고위 관료의 한반도 관련 발언은 미국 언론보다 한국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곤 합니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의 관심도 크고 또한 영향도 큽니다. 장관께서 9월 1일 펜타곤에서 화상으로 가진 '전 세계 미군 병사들과의 대화'에서 하신 말씀도 예외는 아닙니다.

장관께서는 "한반도는 아마도 언제든 쉽게(at the snap of finger)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한반도를 "불쏘시개(tinderbox)"에 비유하면서 오늘 밤 전쟁이 벌어져도 승리할 수 있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 정신을 주한미군들에게 강조하셨죠.

아울러 "얼마 전에도 남북한 간에 충돌이 있었는데 비무장지대(DMZ)는 미군이 1953년부터 북한의 공격을 억지해 오는 곳"이라며, "북한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좀 부드럽게 말해도 이상하고 위협적인 곳"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애시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 ⓒAP=연합뉴스

저는 한반도의 위험성을 강조한 장관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북한이 좀 이상하고 위협적인 나라라는 평가에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불쏘시개'를 안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장관님께 몇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장관님께 하고 싶은 핵심적인 말씀은 "왜 7000만 명의 한반도 주민들과 수만 명의 주한 미군은 한국 전쟁 이후에도 60년 넘게 이토록 위험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탄식 어린 질문입니다. 장관님께서도 "슬프게도 이것이 먼 과거의 유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어떤 도발도 격퇴될 것이고, 우리와 우리의 동맹인 한국을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을 북한이 알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죠.

저는 이 대목에서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슬픈 과거'를 극복할 수도 없고 '슬픈 현실'을 무한정 되풀이할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동맹이 북한에게 강력한 억제력을 과시하고 억제 실패 시 격퇴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60년 넘게 반복되어온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은 북한의 남침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억제했고, 한국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장관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전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미 동맹에 비해 재래식 군사력을 비롯한 총체적인 국력이 크게 뒤지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비단 안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반도의 불안한 정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야기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휴전선의 철조망이 날카로워질 때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나겠다는 이산가족의 꿈도 날아가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한국 내에선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미국 정부도 개정이나 폐지를 요구해온 국가보안법의 남용과 국가 안보기관의 선거 개입이 기승을 부리기도 합니다.

하여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와 경제,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해집니다. 그건 바로 60년을 넘긴 한반도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대체하고 미국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최대 우려 사항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미국에도 큰 이익입니다.

카터 장관님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 미군 장병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조너선 소머스 일병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불과 3주 사이에 DMZ에서 지뢰 사건과 포격전, 그리고 8.25 판문점 합의를 보면서 불안과 안도, 그리고 혼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장관께서는 '파이트 투나잇'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국방 장관으로서 당연히 부하에게 주문할 수 있는 군인 정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번 남북한 충돌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 특히 사랑하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손자를 둔 저의 부모님은 수시로 저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을 토로하셨습니다. "전화 한 통 없던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는 제 누나의 떨리는 목소리도 들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보낸 주한미군의 가족들과 친구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장관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심정으로 한반도 상황을 바라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싸워서 이겨라'라는 명령 못지않게 '싸우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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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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