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 합의', 3중 분단 고리 끊는 시발점

[정욱식 칼럼] 유연성 발휘한 남북 당국에 박수를

한마디로 극적 반전이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남북 고위당국자들은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을 가졌다. 그리고 양측은 마라톤협상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남측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의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참가한 고위급 접촉에서는 "최근 남북 사이에 고조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6개 항목에 걸친 합의문을 도출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당국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대화와 협상 진행 △지뢰 폭발로 부상을 당한 남측 군인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 △남측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 △북측의 준전시 상태 해제 △추석 이산가족 상봉 및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 9월 초 개최 △다양한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이다.

현 사태의 수습뿐만 아니라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뜻깊은 합의가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가뭄에 시달려온 남북관계에 일시적 단비로 끝날지, 아니면 해갈을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를 '8.24 합의'로 부르면서 그 역사적, 미래지향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 남북 고위급접촉 대표단. 왼쪽부터 북한 김양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남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북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남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 ⓒ통일부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 정신 발휘

먼저 남북한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위기의 발단에 되었던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해 양측이 유연성을 보여준 것이 주효했다. 이는 1972년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연 '상하이 공동 코뮤니케 방식'이 원용된 것이라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당시 두 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했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식 지지한 것으로, 미국은 평화적 해결 조항을 들어 대만 방어의 책임은 유지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고 양자는 상대방의 해석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유감 표명도 흡사하게 해석할 수 있다. 남측은 북한의 유감 표명을 지뢰 도발에 대한 북측의 인정과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로 해석한다. 반면 북한은 유감 표명의 대상은 지뢰 폭발로 부상을 당한 남측 부사관 2명이라고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아마도 마라톤협상의 핵심 사유는 이러한 양측의 해석에 대해 서로가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 합의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문제 해결에 양측 모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협상에서, 특히 이번 사건과 같이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에서 '각자'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8년간 남북관계가 계속 꼬인 데에는 양측 모두 협상의 정신을 저버리고 완승을 추구하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이번 합의가 빛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보수 정권 하에서도 남북 협상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말 모처럼 보는 반전이라는 점이다. 1990년 이후 한반도 드라마는 그야말로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반전은 사라지고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8년 가까이 이어져 온 반전 없는 드라마에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체념과 식상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 백척간두에서 극적인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한반도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셋째, 2008년 보수 정권 출범 이후 나온 가장 고위급이자 포괄적인 합의라는 점이다. 고위급 접촉은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양측의 '안보' 사령탑과 '남북관계' 사령탑이 동시에 만난 것 자체가 새로운 형식이다. 특히 북한이 남측 통일부 장관을 노동당 대남 비서의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 눈에 띤다. 또한 6개 항목에 걸친 합의문에는 군사적 긴장 해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부 간 대화의 활성화, 민간 교류 활성화를 담고 있고, 이산가족 상봉을 그 첫 단추로 꿰기로 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번 합의의 의의가 남북관계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광복 70년을 거치면서 한반도는 남남 분단-남북분단-동북아분단이라는 '3중 분단'의 질곡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보수 정권이 북한과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대북 문제를 둘러싼 남남갈등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냈다. 여야와 대다수 언론이 이번 합의를 환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데에서 이러한 희망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8.24 합의'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미·일 동맹 대 중·러 협력 체제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이 '샌드위치 코리아' 신세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낸 셈이다.

아낌없는 박수를

물론 한반도 정세의 반전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또다시 막장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 바로 한반도 문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집념과 유연성을 발휘해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낸 남북 당국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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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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