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립형 비례', 선거 제도 대안 맞나?

심상정 "연동형 도입해야, 나머지 쟁점 양보 가능"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가 10일 정의화 의장에게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야권이 도입을 주장하고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제안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는 개념과 시행 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제도다.

당장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조정 결정을 끌어낸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은 "염치없는 개악 보고서이자 비례대표제를 후퇴시키는 제도"라며 자문위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를 맹비난했다.

심 대표는 더불어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이루어진다면 의원정수 확대 등 다른 쟁점에서는 양보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입장도 내놨다.

자문위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 도입" 제안

총 12명의 정치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는 올해 3월 첫 회의를 시작해 5월 29일까지 총 13차례의 전체회의를 거쳐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여기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도는 현재의 선거 제도에서 비례대표 의석수의 선출 방식에만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전국을 지리적 여건과 생활권 등을 고려해 6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각 권역에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하는 절차를 우선 거친다.

이후 비례대표 명부를 각 정당의 권역별 조직 단위에서 결정해 제출하고 선거를 치른다. 이렇게 나온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원들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병립형 제도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은 현재와 같이 다수 득표자 1인을 당선인으로 한다. 다시 말해, 비례대표 선출 단위만 전국에서 권역으로 바꾸는 것으로 보면 된다.

자문위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병립형 제도를 제안함과 동시에, 전체 의원 정수는 300명(지역구 246명·비례대표 54명)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비례성 확대는 지역주의 완화와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 체제에서의 탈피라는 장점이 있으나, 병립형 제도는 연동형보다 그런 효과를 적게 가져올 것으로 분석된다.

자문위가 19대 총선 결과에 병립형 제도를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의 비례 의석수는 각각 1~2석이 감소한다.

또 새누리당은 호남권에서 비례 의석수를 1석을 얻을 수 있고 새정치연합은 영남권에서 4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변화가 생기나, 이는 권역 총 의석의 90% 내외를 여전히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가운데의 변화라 유의미한 개혁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자문위 소수 의견 "병립형, 연동형보다 효과 없어"

자문위가 제안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도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애초의 목표한 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은 자문위 안에서도 '소수 의견'으로 제시됐다.

애초에 하나의 지역구에서 다수 득표자 1인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 비례성 보장 정도가 약한 권역별 병립제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문위의 선거제도 개혁 보고서를 보면, 소수의견을 제시한 위원들은 "전체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더라도 6개 권역에서 각기 병립형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할 경우 소수 정당의 과소대표 문제는 여전할 것"이라면서 "예컨대 봉쇄조항인 전국 득표율 3%를 겨우 달성한 소수 정당들은 한 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봉쇄조항이란 군소 정당의 난립을 막고자 설정된 의석 배분의 최소 기준을 말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 온 정의당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내놨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당 상무위 회의에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를 후퇴시키는 제도"라면서 자문위 보고서를 "개혁안이라고 하기엔 염치없는 개악 보고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 대표는 또 "권역별 평균 9명 내외의 비례대표를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할 경우엔, 의석을 배분 받을 수 있는 소수 정당은 권역별 커트라인(하한선)에 걸려 한 석도 배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서 "이 제도는 우리 선거 제도의 가장 큰 문제인 불비례성을 개선하기는커녕 더 심화시킬 것이며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크지 않다"고도 했다.

정의당 "병립형 아닌 연동형 도입해야…나머지 쟁점 양보 가능"

소수 의견을 제시한 자문위원들이나 정의당 등 야권은 그래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연동형 제도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하는 것은 병립형과 같다. 그러나 인구비례에 따라 구분하는 의석수가 비례대표 의석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의석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 의석 할당 정당은 현행과 같이 전국 득표율 기준 3% 이상 득표 또는 지역구 5명 이상 당선을 기준으로 정하자는 게 자문위의 소수 의견이다.

권역별로 각 의석 할당 정당에 배분할 총 의석수를 확정(권역별 총정수-(무소속 당선인 수 + 의석할당 정당 외의 정당 소속 지역구 당선인 수))되면, 이렇게 확정된 총 의석을 각 의석할당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나누어 의석(지역구+비례대표)를 배분하게 된다.

이후 각 의석할당 정당에 배정된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빼고 나머지 인원을 권역별 각 정당 조직 단위에서 결정해 제출한 비례대표 명부순위에 따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이 같은 연동형 제도를 19대 총선 결과에 도입해 보면 비례성이 확연히 제고되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외 다른 유력 정당도 부상하는 결과가 나온다.

새누리당은 현행에서 152석을 확보했으나, 바뀐 제도에서 138석을 확보하게 돼 14석이 줄어든다.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은 127석에서 119석으로 변하고, 통합진보당은 13석에서 34석, 자유선진당은 5석에서 9석으로의 변화가 생긴다.

김무성 "병립형, 처음 듣는 얘기"…이종걸 "기왕에 연동형 관철해야"

이처럼 같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도, 그 구체적 시행 방식이 연동형이나 병립형이냐에 따라 선거 결과에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 정치권이 자문위의 병립형 제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새누리당은 아직까진 이렇다 할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병립형 제도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처음 듣는 얘기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병립형에 명확한 찬성 입장을 내놓은 여당 정치인은 아직 하태경 의원뿐이다. 하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야당이 주장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필연적으로 의원 정수가 늘게 돼 있는 제도"라는 입장도 밝혔다.

한편,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기왕에 선관위가 제출한 연동형을 관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면서 "병립형이 가지고 있는 여러 지역 구도의 고착형과 같은 문제들을 잘 숙고해 독일식(연동형) 권역별 비례제 입장을 잘 살펴달라"고 자당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연동형 제도를 앞서 새정치연합에 당론 채택할 것을 주문했던 김상곤 혁신위원장도, 병립형엔 부정적인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선거 제도 개편 논의를 위한 6자 회동을 새누리당, 새정치연합에 제안했다. 3개 정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심 대표는 이날 "정의당은 앞서 세비 삭감 등을 전제로 의원 정수의 360석 확대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지지율에 비례하는 의석 보장이 이뤄진다면 다른 모든 쟁점은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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