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한에 이희호 방북 당일 대화 제의…왜?

북한, 서한 접수조차 거부…이희호 방북 의미 축소 의도한 듯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방북하던 지난 5일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서한 접수를 거부하고 있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8월 5일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서한을 통해 북측 통일전선부장에게 남북 고위급 인사 간 회담을 갖고, 남북 간 상호 관심 사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의할 것을 제의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그러나 북한은 '상부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이 없다'면서 오늘 아침까지 서한 자체를 수령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우리 당국의 공식적인 대화 제의 서한 전달 의사를 밝히고 충분한 검토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접수하지 않은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유감을 표하는 바"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굳이 이 이사장의 방북 시기에 맞춰 대화를 제의하는 서한을 보낸 것을 두고 이 두 사안 간의 연관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 대변인은 "연관관계는 전혀 없다"며 "8.15 이전에 시급한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남북 간 현안을 풀어야 된다는 필요성이 많았고, 경원선 기공식 바로 직후에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원선 기공식은 이날 오전 11시에 진행됐다.

▲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가 6일 평양의 한 애육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안아주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정부는 이 서한에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광복 70주년 공동 기념행사 개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북한이 원하는 관심사항도 함께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통일부는 이날 브리핑 이후 배포한 자료에서 "이미 정부는 북한에 어떤 형식의 대화도 가능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며 북한에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왜 이희호 이사장 방북 맞춰 서한 보냈나

통일부는 이 자료에서 "정부는 광복 70주년 남북관계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으나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협의가 진척되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정체된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당국 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 하에 고위급 인사 간 회담을 제의한 것"이라며 대화 제안 배경을 밝혔다.

정부 설명대로 현재 북한이 남북 간 대화와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남북 당국 간 고위급이나 최고위급 대화로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화 제안 시점이 공교롭게도 이희호 이사장의 방북 날짜와 맞아떨어졌다. 이 이사장의 방북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9일 <한겨레>에 "북에서 분개해서 (전통문을) 받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인사는 "북에서 이런 남쪽 당국의 처사는 자신들이 초청한 이 이사장에 대한 모욕이고 이는 곧 최고 존엄(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정부가 굉장히 서툴렀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렇듯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서한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지도부는 남한 정부가 이 이사장의 방북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의도로 서한을 보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 정부가 김 제1위원장의 직접 초청으로 평양을 찾은 이 이사장의 방문을 개인적인 역할로 축소시키려는 시도에 북한이 반발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부가 이 이사장의 방북을 '개인적인 방문'으로 묶어둠으로써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재개 역할을 과거 정부 인사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이른바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이사장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를 들려 보내지 않은 정부가 방북 당일 별도로 서한을 보내는 행위는 6.15 때 인사가 아닌, 지금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 이사장과 사전 조율을 거친 뒤 대화 제의를 했다면 지금과 같이 북한이 서한 접수조차 거부하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 이사장을 통해 정부의 대화 제의를 미리 알리고 난 뒤 공식적인 서한이나 전통문을 보냈다면 북한이 이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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