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회인가, 또 다른 사법부인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보내는 우리의 자세‧③]

언론 보도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이성호 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성호 후보자 내정의 문제점에 대해 법률가의 관점에서 말하고자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제2항은 "위원은 인권 문제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적시하고 있습니다. 즉, 인권 문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 법률 문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제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내정 소식을 브리핑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성호 내정자는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서울남부지방법원장을 역임하는 등 약 3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다수의 판결을 선고했고 합리적 성품과 업무 능력으로 신망이 높다."

우리는 법원 내부에서 이성호 후보자가 합리적 성품과 업무 능력으로 신망이 높은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법원장이 그동안 어떠한 판결을 해왔는지는 모릅니다. 이번 내정이 대통령의 일방적인 인사, 밀실 인사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성호 내정자는 어떠한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인물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권위원장의 자리에 법률가, 그것도 현직 법원장을 내정했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현병철 위원장의 지난 6년을 통해 법을 전공한 법률가라고 해서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검사 출신인 유영하, 판사 출신인 김영혜 상임위원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률 실무가라고 해 인권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없음 또한 우리의 뼈저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법률 전문가라는 사람들 여러 사람들이 인권위 전원위 상임위 회의장에 모여, 보장돼야 할 인권 문제를 내팽개치고, 인권위가 개입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인권위가 개입하지 않아야 할 이유만을 늘어놓으며 인권 피해자들을 외면해 온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 4.16연대 압수 수색에 반대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프레시안(서어리)

법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인권을 이야기해야 할 자리에서 법의 이름으로 인권 사안을 막아왔습니다. 바로 지난주 박래군 활동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과 독립성에 대해서 발언했었습니다. 그런데 박래군 활동가는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법의 이름으로 구속됐습니다. 인권의 기준과 법의 기준이 이렇게 다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성호 내정자가 단지 법조인, 현직 판사이기 때문에 인권위원장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단연코 말씀드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권위는 법을 뛰어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사법 권력과 행정 권력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법 논리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인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인권위가 이러한 사람들을 대변해야 합니다. 따라서 때로는 형식적 법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사법적 구제기구로서의 인권위의 성격은 바로 이러한 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법률가, 더욱이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고, 손해 배상의 액수를 법률이라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데 익숙한 직업 법관이 이러한 인권위의 지위와 성격을 잘 구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법조인 편중의 위원회를 만들 것이라면 왜 국가인권위원회가 필요합니까. 또 다른 사법부를 만드십시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권위법 제5조와 파리원칙, 그리고 국가인권기구간 국제조정위원회(ICC)의 권고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인권위원의 다양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인권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인권위원장이 돼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이성호 후보자에 대한 내정을 철회하고, ICC의 권고대로 투명하고 적법적인 인선절차를 마련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경청하십시오.

(장서연, 김동현 변호사는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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