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인권 침해, 인권위 대체 뭘 했나"

인권단체 "이제라도 '최루액 물대포' 의견 표명해야"

"권은 나 몰라라 / 력과 국제행사만 신경 쓰는 / 기의 인권위"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인권위가 보여준 행태를 이 삼행시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19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건물 앞에서 20여 명의 사람이 이같은 삼행시가 적힌 손피켓을 들었다. 국민 인권의 최후 보루를 자임하는 인권위의 낯부끄러운 실상을 밝히기 위해 모인 인권 단체 소속 회원들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인권침해에 인권위는 없었다"고 규탄했다.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생명권을 잃었다. 이같은 인권 침해에 대해 진상조사를 촉구한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로부터 연행당하고 차벽에 가로막혀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다. 인권 단체들은 지난해 6월 9일, 이같은 인권 침해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인권위에 집단 진정을 냈다. 그러나 그 후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인권위로부터 답변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다수의 진정이 기각된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대표 진정인이었던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경찰의 인권 침해 행태에 대해 '피해자 주장일 뿐'이라거나, '(경찰에) 주의 조치를 했기 때문에 괜찮다'는 이유로 기각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경찰의 '만민공동회 집회 금지 통보' 건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받지 못했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가 행정소송 결과를 지켜보고서 결정한다더라"며 "소송 결과에 따라 입장을 결정한다는 것은 인권위법 28조에 명시된 '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대한 의견 제출 표명'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9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인권위 규탄 기자회견을 벌이는 인권 단체 회원들. ⓒ프레시안(서어리)

"인권위 3연속 등급 보류?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던 무자격자들 탓"

인권 단체들은 인권위가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원인으로 '무자격 인권위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반인권 인권위원들이 인권이 기준이 아니라 권력을 기준으로 인권현안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정부가 행하는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현병철 국가위원장이 "독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며 용산 참사에 대한 의견 표명을 거부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관련 기사 : 인권위원장, 용산 참사에 다수결 무시 침묵 강요) 지난 2010년 한태식 위원은 "헌재가 심리 중인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헌재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비정규직종합대책 안건 회의에서 윤남근 위원은 "(정부가) 한창 논의 중인데 우리가 끼어들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고, 유영하 위원은 '정규직들이 기득권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해 논란이 인 바 있다. 또 최근에는 현 위원장이 세월호 추모집회에 대한 경찰력 남용 관련 성명을 발표하려다 인권위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인권 단체들은 "인권위원 인선절차가 없어 무자격 인권위원들이 인권위원이 되어 임명권자의 눈치, 권력의 눈치를 본다"며 "이로 인해 인권위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인권위는 지난 3월 국제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 지난해 3월과 11월에 이어 또다시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바 있다.(☞관련 기사 : MB·현병철과 함께 추락한 인권위, '등급 보류' 굴욕)

이들은 인권위가 '국가권력옹호기구'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인권위원장, 인권위원을 선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은지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ICC가 권고 사항에 인권위원장 선출할 것을 명시했다"며 "그러나 인권위는 물론이고 정부도, 국회도 인권위원 인선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가한 인권 단체 소속 회원들은 앞서 '국가인권위원위 인권위원장 인선절차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인권위원 인선절차 마련을 위해 시민사회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달 18일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에게 최루액 물대포를 쏘는 경찰. ⓒ프레시안(최형락)

"인권위, 이제라도 '최루액 물대포' 의견 표명하라"


인권 단체들은 "인권위가 이제라도 권위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월호 집회 시 경찰의 공권력을 남용에 대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헌법소원 제출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표명을 촉구했다. (☞관련 기사 : "경찰, 하룻밤에 물대포 4만 리터 퍼부었다", "최루액 대포 쏘고 CCTV 감시…우리가 테러분자?")

이들은 "자의적 물대포 사용으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며 "헌법상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는 경찰력의 남용에 대해 인권위의 분명한 입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인권위에 '최루액 물대포로 인한 인권침해 의견 표명 및 헌재 의견 제출 요청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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