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동적인 선거 과정이 말해주듯, 이번 선거는 당원의 힘입니다. 우리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당원들의 지혜와 열정에 힘입어 더 크고 강한 정당으로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선거는 그 과정에서 아름다웠고, 결과는 드라마틱했습니다."
도대체 이번 정의당 대표 경선이 어땠길래 진보정치판의 백전노장으로 2012년 '통진당 사태'까지 겪은 심 대표의 입에서 '역동적', '드라마틱'이라는 말이 나온 걸까?
1차 투표에서 10%P 넘게 뒤진 심상정, 결선에선…
시계를 1주일 전으로 돌려 보자. 지난 11일 정의당 당 대표 선거 1차 투표 결과는 노회찬 3179표(43.0%), 심상정 2312표(31.2%), 조성주 1266표(17.1%), 노항래 643표(8.7%)였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 2위인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의 표차가 너무 커서, 노 후보의 승리를 점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의당 안팎의 누구에게 물어도 예측은 비슷했다. 그러다 18일이 되어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결선투표 결과는 심상정 3651표(52.5%), 노회찬 3308표(47.5%)였다.
아무도 이변을 예상치 못한 것은, 이번 선거가 당내 정파 간의 타협과 담판에 의해 결과가 좌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신 정파로 보면 심·노 후보는 둘 다 진보신당 탈당파 출신이고, 당내 인천연합 그룹이나 참여계는 이번 선거에서 정파 단위의 공식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조성주 후보와 노항래 후보가 조직적으로 특정 후보를 밀지도 않았다.
즉 '열세였던 A후보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한 C후보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전폭 지지를 받아 우세였던 B후보를 꺾었다'거나, '결선투표를 앞두고 당내 유력 계파인 D정파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해 역전승을 거뒀다'는 등의 시나리오는 이번 선거에서 등장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들은 꼭 진보정당사에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선출대회 등 정치사에 무수히 많은 사례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에서처럼 의사결정의 주요 행위자가 '계파'가 되면, 좀처럼 '의외의 결과'란 나오지 않는다. 협상 과정에서 당 내의 많은 눈과 귀를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과 자체는 역동적일지라도, 과정은 논리적이고 행동은 일사불란했기 때문에 눈 밝은 관찰자에게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것이 이런 정치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나름대로 정당 내 선거로 잔뼈가 굵었다는 많은 이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심 후보가 노 후보를 300표 넘는 차이로 눌렀다는 결과가 나오자, 말 그대로 정의당이 뒤집어졌다. 심지어 심 후보 측 관계자조차 "정말 놀랐다. 내가 그 결과를 가장 먼저 현장에서 봤는데 '이게 뭐야? 진짜 개표 결과 맞아?'라는 말이 나오더라"라고 술회했다.
沈의 역전승, 어떻게 가능했나?
정의당 관계자들에게 대역전극의 배경에 대해 묻자, 한결같이 "나도 모르겠다"는 말부터 나왔다. "선거 결과가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워낙 이변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충격적이다" 등의 말들이 놀란 당심을 대변하는 듯했다.
먼저 1차 투표에서 탈락한 3·4위 후보의 표가 대부분 심 후보에게 집중된 이유는 뭐였을까? '진보정치 2세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번 선거의 최대 돌풍이 된 조성주 후보의 표는 왜 심 후보에게 갔을까? 결선 이전까지 오히려 조 후보의 지지층은 심 후보보다는 노 후보와 겹칠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조 후보라는 '젊고 새로운' 인물에 대한 선호를 보인 유권자 층이, 결선에서는 노 후보의 '대중 중심 노선'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성향 분석이었다.
그러나 정작 조 후보의 표는 1차 투표에서 노 후보의 표를 '갉아먹은' 게 아니었다. 정반대로 심 후보의 표를 갉아먹었던 것이 결선투표 결과로 증명됐다. 복수의 정의당 관계자들은 "조 후보와 심 후보의 메시지가 비슷했다"고 지적했다. 노 후보가 '2016년 총선 승리' 중심의 대중노선을 들고나온 데 비해, 심 후보와 조 후보는 정당 구조 개혁이나 비정규직·최저임금 문제 해결 등 자체적인 당 역량 강화를 핵심 메시지로 했다는 점에서 노선이 일정 부분 겹쳤다는 분석이다.
둘째, 한 관계자는 "심 후보의 '팀 정의당'이라는 이야기가 3·4위 후보를 지지했던 분들의 마음을 얻은 것 같다"고 짚었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심 후보가 "우리 당이 가진 단 한 방울의 자원도 누수돼서는 안 된다. 당의 역량을 적재적소에 재배치하고 최적화시켜, 막강 '팀 정의당'을 만드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며 "전직 당 대표·후보자 등 당의 핵심 역량을 망라해 '총선 드림팀'을 구성하자"고 했던 것이 통했다는 이야기다.
셋째, 심 후보가 "무엇보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원내 3당으로서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원내외 단일대표체제가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도 의외로 먹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를 분리해, 당 지도부에서 원내를 통제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겨 온 진보정당의 전통이 많이 사라졌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심 후보의 '원내 중심 총선 돌파' 메시지가 먹힌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마지막으로, 투표율 하락의 영향이다. 결선투표 투표율은 1차 투표 때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1차 투표 때 9722명 중 7400명이 투표해 투표율이 76.1%였던 반면, 결선에서는 7011명이 투표(72.1%)했다. 한 당 관계자는 "투표율이 떨어진 부분의 손해를 전적으로 노 후보가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1차에서는 투표하고 결선에는 참여하지 않은 약 400명의 당권자들 가운데, 노 후보의 '대중 노선'에 상대적으로 많이 공감했던 신입 당원들이 더 많이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다.
정의당, '성숙한 선거' 자평…심상정 "정의당의 역동적 변화"
선거 결과에 대한 놀라움이 걷히면서, 정의당 내에서는 이번 선거에 대해 긍정적 자평이 나오고 있다. 선거 결과보다도 '과정'에 초점을 둔 시선들이다. 한 당직자는 "당원들이 당의 미래를 놓고 나름 수준 높은 고민을 한 결과로 보인다"며 "계파 투표도 없었고, 동원도 없었는데 투표율도 매우 높았다"고 자부했다.
당 내의 이런 분위기는 심 신임 대표의 19일 수락연설에서도 묻어났다. 심 대표는 "정의당의 역동적인 변화에 저도 놀라고, 우리 당원들도 놀라셨을 것"이라며 "정의당이 예사롭지 않다. 상서로운 조짐이 하나 둘이 아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의당의 '역동적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공직 출마 예정자들이 경쟁적으로 당겨온 '종이 당원'이 아니라 자발적 당원 가입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당 대표를 '시한부 생명'에 빗대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천호선 전 대표는 2년 임기를 채웠을 뿐 아니라 구성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떠난다. 막후의 '계파 정치'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로지 후보자들의 정견과 능력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심 대표는 자신이 앞으로 당 대표로서 "당의 조직과 문화, 담론을 일대 혁신해서 한국 정당 조직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나갈 것"이라며 "거대 정당들에게 정치 혁신을 위한 제도 개혁을 당당히 요구할 것"이라고 향후 방향에 대해 밝혔다.
이같은 긍정적 평가가 당 내의 '자평'을 넘어 정치권 전체로 뻗어나가고, 유권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우선은 앞으로 당분간의 정당 지지율 조사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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