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메르스', 대한민국은 운이 좋았다!

[기자의 눈] 박근혜의 엉망진창 '메르스 리더십'

"메르스는 말하자면 중동 독감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6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강남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손만 잘 씻고" "골고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이런 전염병은 얼씬할 수 없다"는 덕담도 덧붙였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눈높이 메시지를 놓고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계절성 독감"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 번쯤 짚어야겠다.

사실 독감도 무서운 전염병이다. 지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흔히 '조류 독감'의 원인으로 알려진 독감 바이러스(H5N1)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다. 2009년 유행한 신종 플루(신종 인플루엔자 A)처럼 감염성이 높은 데다, 독성까지 강해진 돌연변이가 사람을 공격하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이런 돌연변이 독감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쳤다면, 지금쯤 나라 꼴은 엉망진창이었을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수만 명의 감염자가 나타났을 것이고, 독성까지 강하다면 노약자 여럿이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은 운이 좋았다. 메르스가 전염성이 비교적 약하고, 그 독성도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오해가 발생했다. 지금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일부 윤똑똑이들이 잘난 척하면서 한마디씩 하는 것처럼 "근거 없는 공포" 때문이 아니다. 시민들도 안다. 메르스가 계절성 독감에 비해서 전염성도 낮고, 감염되기만 하면 둘 가운데 하나가 죽는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통제'되어야 마땅한 바이러스가 거의 한 달 가까이 고삐 풀린 맹수처럼 돌아다니는 일이다. 더구나 이 바이러스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건강이 취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원을 무대로 돌아다닌다. 심지어 국내 최고 병원이라는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한 몇 곳의 병원이 사실상 폐쇄되었는데도 도대체 잡힐 기미가 없다.

6월 16일 기준으로 격리 조치된 사람 수는 5586명으로 늘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확진 환자 수도 총 154명으로 늘었다. 정부는 6월 초부터 "이번 주가 고비"라고 떠들어왔는데 벌써 2주가 지났고, 앞으로 또 얼마나 연장될지 모른다. 이 와중에 사망자는 19명으로 늘었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중증 환자도 16명이나 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시민이 분통을 터뜨리고, 불안해하는 진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백날 "계절성 독감" 수준이니 "일상으로 돌아가라"(2015년 6월 14일)고 얘기해도, 많은 시민이 되레 짜증을 내는 까닭도 여기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동대문 시장이 최선이었나?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대문 시장으로, 강남 초등학교로 돌아다니는 그 시점에도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다 수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장 15~16일 사이에만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2명은 평소에 별다른 지병이 없었다. 메르스에 감염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몫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대한민국 시민 3명이 생명을 잃은 것이다.

감염 우려 때문에 가족은 이들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 시점에 상당수 가족은 확진되어 치료를 받고 있거나, 추가 감염을 우려해 격리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제대로 된 장례식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24시간 내에 화장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망자를 보내고 하도 기가 막혀 슬퍼할 겨를도 없는 유가족의 눈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피눈물이 흐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애초 지난주로 예정된 미국 방문도 연기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미국 대신 가야 할 곳은 당연히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유족 앞이다. 그들 앞에서 머리부터 조아리는 게 우선이 되어야 했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대통령이 그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상황 파악도 안 되고,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도 헷갈리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메르스 리더십', '전염병 리더십'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은 이번에 정말로 운이 좋았다. 이런 대통령 밑에서 메르스보다 훨씬 더 센 놈이 왔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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