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유산' 남북파경, 현실로 받아들여야

[김근식의 남북 관계 중년 부부론] <6> 주입식 '반북의식' 넘어선 '혐북' 어쩌나

신혼은 영원하지 않다. 신혼을 지나 파경의 위험까지 겪은 남북은 각자 사정이 달라지고 상황이 변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느낌도 바뀌었다. 이를 충분히 객관적으로 인식해야만 올바른 남북관계를 모색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의 경제사정이 달라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은 정말 어렵고 힘든 시기를 맞았다. 고난의 행군을 겨우 지나고 경제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 식량난과 에너지난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거의 전적으로 외부로부터의 경제지원에 매달려야만 했던 당시 북한은 남측에 의존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남북관계가 그나마 좋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살림하기 위해 남편에게 돈을 타서 써야 하는 아내는 무작정 남편에게 대들고 싸울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의 경제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 보수적으로 통계를 잡는 한국은행의 추정치를 봐도 연속 플러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식량 사정이 나아지고 대외교역이 증대되고 있다. 6.28 방침과 5.30 조치로 농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공장 기업소의 자율권이 확대되어 경제에 활력이 돌고 있다. 북·중 교역의 지속적인 증가는 북한 경제에 상품 유통과 시장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

이렇듯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북한은 남쪽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들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대북지원이 중단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오히려 북한의 경제는 나아졌다. 신혼 초기에 남편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써야 했던 아내가 이제 딴 주머니를 차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 셈이다. 남측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줄어들면서 북한은 신혼 때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북한은 명실상부한 핵보유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3차례의 핵실험과 다종다양한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핵과 미사일의 결합이 실전배치의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과시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최첨단 기술로 여겨지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까지 초기 단계를 시도하고 있다.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실질적인 안보능력과 자신감을 과시하고 있다. 남쪽과 미국에 기죽지 않고 큰소리 치는 이유다.

북한 주민들의 인식도 변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면서 북한 내부의 대남 의식이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화해협력이 증진되던 시기에 북한 주민의 대남의식은 상당히 호의적이었지만, 이명박 정부와 날 선 비난·대결을 주고받으면서 내부 의식도 남쪽에 대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됐다. 매번 주던 쌀 지원을 끊고 북을 압박해서 굴복시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북한 주민은 모욕감을 느꼈고 갈수록 반남(反南)의식이 커져갔다. 탈북자들이 북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쳐주면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해도, 북의 가족들은 이젠 돈만 부쳐달라며 남아 있겠다는 것이 북한 내부 대남 인식의 한 단면이다.

남쪽 사정도 과거 신혼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졌다. 경제사정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만 양산되는 비정상의 노동시장이 이젠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저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용 없는 성장 덕에 청년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피해 가는 폭탄 돌리기 신세가 됐고 정부 부채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997년 IMF 당시 기업의 도산 상황에서도 탄탄한 정부 재정으로 공적자금을 댈 수 있었고 견실한 가계 저축률로 기업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지금 가계 부채와 정부 부채의 급증은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짐작게 한다.

이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는 쓸데없는 토건사업과 불확실한 자원외교로 50조 가까운 세금을 낭비했고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에 헛삽질과 허망한 짓만 하고 말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당연히 북에 지원할 수 있는 여력과 여유가 줄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남북관계도 갈등으로 치달았을 뿐 아니라 대북 지원과 경제 협력에 대해서는 여론도 경제적 여유도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대북 강경정책으로 5년 내내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면서 급기야 북한은 해서는 안 될 무력 도발을 강행하고 말았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이 그것이다. 이는 휴전 이후 사상 최악의 군사 도발이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은 우리 영토에 대한 명백한 무력 공격이었고 애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대북 여론은 최악으로 돌아섰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데는 물론 양측 모두에게 이유가 있을 법이지만 연평도 포격은 모든 책임을 하루아침에 북한 탓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마치 접촉사고를 낸 두 사람이 서로의 책임을 놓고 말싸움을 벌이다가 한 쪽이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한순간에 모든 도덕적 책임과 비난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화해협력 시기 남북관계에 의해 과거 냉전 시대의 반북의식이 눈 녹듯이 녹고 북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며 동질감과 민족의식을 공감했다면, 이제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 대결과 군사적 충돌을 경험하면서 남쪽의 대북 의식은 과거의 반북을 넘어 혐오스럽고 지긋지긋해 하는 이른바 '혐북', '염북'으로 확산됐다.

직접 겪어보고 만들어진 혐북과 염북의식은 주입식 교육으로 형성된 반북의식보다 훨씬 고질적이고 해소되기 힘들다. 상상 이상의 심한 욕설과 대남 비방 그리고 매번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도 이젠 남쪽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신혼과 파경 위기를 겪으면서 이제 남과 북은 모두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새롭게 변화된 각각의 처지와 감정에 맞게 새로운 관계가 모색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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