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본질은 힘의 관계다"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3> 남북, 원래 갈등 관계라는 걸 인정해야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은 왜 어려울까? 왜 이렇게 남북관계의 제도화는 힘든 걸까? 비가역적이고 지속적이고 합의하면 이행이 보장되는 안정적 남북관계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나아졌다. 수많은 회담을 개최했고 적잖은 합의를 도출했으며 꽤 많은 문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정체됐고 전망마저 오리무중이다. 지나친 낙관과 성급한 비관을 넘어서서 실현 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이루기 위해선 우선 남북관계의 근본 속성에 대해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남북관계에 깊이 내재하고 있는 '구조적 딜레마'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이 되지 않고서는 향후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모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이 관계 진전과 대립을 반복하는 데는 행위자의 주체적 요인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더 고질적인 것은 남북관계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딜레마적 속성 때문이다. 이는 바로 남북관계가 '힘'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본질은 힘의 관계다. 남북관계는 결코 선의의 관점, 즉 화해와 협력과 존중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에 가까움을 인정해야 한다. 엄연한 현실이 힘의 관계인데도 이를 경시하거나 도외시한다면 지나친 감상주의로 흐르게 되고, 반면에 힘의 관계에 매몰된 나머지 관계개선이라는 가능성을 포기하고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면 이 역시 지나치게 단선적인 접근이 된다.
냉전시기 상호 적대와 대결의 남북관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힘으로 상대방에게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힘의 관계였다.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이 당시 힘의 우위에 있던 북이 열세에 놓인 남을 공산화하려는 것이었다면 탈냉전 시기 한국의 대북포용정책도 근본은 화해협력을 통해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북한을 변화시켜 결국은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다.

하지만 탈냉전시기의 화해협력도 사실은 남북관계의 근본속성이 힘의 관점에서 작동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전히 힘의 우위에 있는 측이 힘의 열세에 놓인 측을 흡수하려는 것이었다. 햇볕정책의 창시자인 김대중 대통령도 사석에서는 햇볕정책을 '트로이의 목마'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난하며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 역시 힘의 우위 입장에서 북을 굴복시키려는 압박과 봉쇄의 접근방법이었다. 접근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를 제압하고 흡수하려는 최종 목표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남북은 원치 않는 분단으로 인해 남과 북은 상대방을 타도와 적대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를 자신의 내부 통치에 활용해왔다. 강요된 분단이었기에 남과 북은 언제나 상대방을 자기 체제로 인입하고 흡수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일관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체제 우위에 있는 쪽은 언제나 열세에 놓인 상대방을 통일하려 하고 반대로 힘의 열세에 놓은 쪽은 어떻게든 우위의 상대방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 할 수밖에 없다. 분단의 속성상 힘의 우열관계는 우위의 체제가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고 열세의 체제는 안간힘을 다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근본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티격태격 우여곡절의 힘겨루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북한에게 남북기본합의서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체제위기를 맞아 어떻게든 자신의 체제를 흡수통일로부터 지켜내려는 전략적 발로였고 반대로 남한에게 기본합의서는 화해협력을 내세워 북한을 변화시켜 남한과 동일한 체제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기본합의서라는 모범답안을 만들어놓고도 결국 현실의 남북관계에서는 휴지조각이 된 것도 힘의 관계라는 본질적 속성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도 힘의 우열관계에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고 옷을 벗겨서 한국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것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힘에서 밀리는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를 내세우지만 이 역시 전략적 의도는 한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얻되, 북한체제를 위험하게 하는 체제영향력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남측의 흡수통일 공세를 막아냄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 공동선언이 도출돼도 힘의 우위와 열세 사이에 기본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길항관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고, 한쪽은 끌고 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결코 끌려가지 않으려는 속성 때문에 화해협력의 시기에도 남북관계는 항상 순탄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결국 남북관계는 흡수하려는 한쪽과 절대 흡수당하지 않으려는 한쪽의 힘의 작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힘에 의해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한, 대화를 통해 관계개선이 순탄하게 이뤄지기 힘든 구조적 딜레마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본질은 힘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현실주의일뿐만 아니라 갈등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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