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조롱하는 조중동…北처럼 되고 싶나?

[기자의 눈] 보수언론의 '정치 혐오' 조장, 문제 없나?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다."

이 유명한 격언은 주로 전쟁의 본질이 정치적인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할 때 많이 쓰인다. 그러나 격언을 만든 사람이나 활용해 온 사람들이 오히려 당연시해 온 것은, 이 문장 앞부분의 '정치 역시 전쟁'이라는 전제다.

한국 사람치고 정치 또는 정치인을 욕하지 않는 사람이 드문데, '왜 정치인이 싫으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 '만날 싸움만 해서'라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군인에게 '전쟁 준비만 한다'고 비난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본회의 이후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왜 유권자들이 이런 인식을 갖게 됐는지는 별로 의문스럽지도 않다. 물론 이런 보도는 지난 3일간만 나온 게 아니라,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나왔다.

"국회는 지난 3년을 대선 후유증과 세월호를 둘러싸고 싸움하는 데 보냈다. 이날 의원들 모습을 보면 마지막 1년이라고 해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다."

<조선일보> 14일자 사설(☞바로 보기)이다. 바로 국회를 '싸움하는 데 보냈다'고 비난한다. "적의 가득한 고성과 야유가 어지럽게 오갔다",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가 열렸으나 끊임없는 고함과 맞고함, 야유가 난무하면서 '막장'으로 시종했다", "가시 돋친 말들로 너무 시끄러워 아수라장 같았다"는 묘사가 동원된다. 큰일이다. 정치부 기자이니 익숙한 광경인데도 이 생생한 묘사들을 읽다 보니 국회로 출근하기가 싫어진다.

이어 <조선>은 국회를 한껏 조롱한다. "본회의는 65분 만에 끝났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얼마나 유치하고 황당한지를 보여주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거나, "발목 잡기를 하지 않기로 사후에 얘기했다지만 언제 또 다른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우리 국회"라는 식이다. 이 '황당하고 유치하고 비상식적'인 국회의원들과 대비되는 존재로 '캐스팅'된 이들도 있다. "이날 본회의장 방청석엔 초등학생들이 견학하러 와 있었다. 인솔 선생님이 당황해서 중간에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는 사실이 돌연 사설에 등장한다.

정치는 전쟁, 정치인은 용병…싸움은 본업

이 초등학생들을 추적해서 좀더 자세히 쓴 다른 칼럼을 한 번 보자.

"여야 의원들이 고성으로 막말을 주고받는 걸 지켜보던 한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물었다. '저렇게 소리 지르고 싸워도 국회의원은 안 혼나요?' 교사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겸연쩍은 웃음만 지었다. (…중략) 처음엔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던 학생들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급기야 본회의장에 들어온 지 15분 만에 인솔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당초 30분 정도 본회의를 관람할 예정이었지만 피하듯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 듯했다."

같은 신문이냐고? 아니. 이건 <중앙일보>다. 칼럼 필자는 이 뒷부분에서 "학교로 돌아간 학생들은 도덕 시간에 '다른 사람의 말은 경청해야 한다'고 배울 것"이라며 "상대방의 말을 듣기 싫다고 막말을 내뱉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준엄하게 혀를 찬다. (☞칼럼 바로 보기)

물론 국회는 초등학생·중학생들에게는 좋은 견학처가 아니긴 하다. 만날 싸움만 해서 청소년들의 정서 형성에 악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 자체가 복잡한 사회 갈등이 집약되는 과정이어서 이해하는 데 일정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알려면 '어른의 사정'을 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가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란 표현에 담긴 의미는 이렇다.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문제에 피 흘리며 폭력 투쟁을 벌이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대의 민주주의, 의회주의의 밑바탕에 깔린 생각도 이와 유사하다. 국회에서 늘 말싸움을 (19대 국회 이전까지는 몸싸움도) 하는 국회의원들은 지역과 다양한 이해 집단을 대변하고 때로 대리한다. 일종의 '용병'인 셈이다.

의회 정치의 본령은 일각의 주장과는 달리 '입법 기능'이 아니라, 이처럼 갈등을 공개적으로 해결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다. 법만 잘 만들면 된다면, 국회의원을 뭐하러 선거로 뽑나? 시험 봐서 뽑지. 앞의 칼럼으로 돌아가서 '저렇게 소리 지르고 싸워도 국회의원은 안 혼나요?'라고 묻는 귀여운 초등학생에게, 우리는 이렇게 답해 주도록 하자. "그러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이에요." (되풀이하지만, 그래서 국회는 별로 좋은 견학처는 아니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의원들이 얼마나 잘 싸우나 지켜보기만 하면 됐던 유권자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서 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정부와 공무원들이 연금 재원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데, 지금은 여야가 국회에서 양쪽을 대신해 싸워주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야당이 '여당과 싸우지 않겠다'며 정부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공무원노조가 더 강경한 기조로 전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피'가 흐르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최근까지도 정적 암살이나 폭력 혁명 등이 종종 발생하는 등, 정치가 실제로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었던 시간과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아직도 공공연하게 피를 흘리며 정치를 하는 나라도 있다. 정권 실력자였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전격 숙청하고 공개 총살했다는 북한이 대표적이다. 김정은과 현영철 사이에 어떤 정치적 대립이 있었는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내용이 뭐였든 인간의 생명에 값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회에서 막말 설전을 주고받는 식으로 갈등이 전개되는 것은, 그래서 숙청·총살이나 백색·적색 테러, 바리케이드 시가전이 일어나는 것보다 당연히 훨씬 발전된 정치체제다.

정치 혐오 높아지면, 재벌·관료만 웃는다

따라서 '국회에서 싸움질하는 것 자체가 꼴도 보기 싫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나의 이익을 국회에서 똑바로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는 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좀더 세게 하라'거나 '이번 건 별것 아닌데 살살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늘 흉흉하면서도 한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그 싸움의 본질은 '밥그릇 다툼'이며, 정치인은 아주 더러운 사람들이라는 식의 담론은 한 번 다시 검증해 볼 일이다. 물론 때로는 한심하고, 때로는 정말로 공천권 등 밥그릇을 가지고 싸우기도 하며, 어떤 정치인들은 정말 더럽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부각돼 유권자들이 정치 전체를 혐오하게 된다면, 이것은 유권자들 스스로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로 돌아온다.

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영역이고,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들에게 1인1표제 투표를 받아 선출된 결과로 권력을 쥔다. (또는 원칙적으로 그래야 한다.) 하지만 행정부 고위공무원들이나 사법부 법관들, 재벌 2·3세 등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시험을 잘 보거나,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등의 이유로 지금의 지위와 권력을 가진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윗사람 눈치만 보며, 그 '윗사람'의 정점까지 올라간 고위 관료들은 별로 무서울 게 없다. 재벌은? '군주제 사회에서는 왕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고 한 것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어도 이들이 가장 자유롭다. 언론조차 광고주인 기업들 눈치를 보는 판이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물론 그렇지 않다.)

저 고위관료와 재벌들이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눈치를 보는 곳이 국회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유일한 견제 세력인 정치권에 대해 일부 언론은 혐오를 마구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 빼고는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한승수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에게 최고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단연 국회의원'이라고 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200여 개에 이른다는 알토란 같은 특권도 특권이지만,국민의 대표라며 고관대작, 왕후장상, 천하재벌을 민의의 전당에 소환해 쩌렁쩌렁 호통칠 수 있는 마법의 완장을 찰 수 있으니 그 어떤 자리가 부러우랴. (…) 커져버린 입법 권력에 취해 통제력을 상실한 국회와 의원들이 보여주는 추악한 '갑질의 향연'만 크게 보인다."

앞의 <조선>, <중앙>의 사설·칼럼과, 이 <동아일보> 칼럼은 모두 같은날 조간에 실렸던 것이다. 심지어 이 칼럼 필자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전문 분야에 대한 식견도 탁월하고 투철한 공직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집단으로서의 국회는 십중팔구 정파적 이익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부도덕한 집단이 되고 만다"며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비꼬는가 하면 "국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절규를 극단론으로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까지 한다. (☞칼럼 바로 보기)

이같은 언론들 덕분에, 지금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뭐 필요하냐', '국회 없어도 아무 상관 없다'고 주장하는 택시 기사와 구멍가게 주인과 옆집 할아버지의 이해관계를 국회에서 대변하면서도, 때로는 택시 회사와 유통 대기업과 보건복지부와의 '싸움'에서 유권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성공한 대가로 그 자신이 이익을 지켜준 이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 왜 자꾸 싸움만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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