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에서 현실이 되어버린 신문사의 위기
좌파 정론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이 지난 2월 8일 자 '우리는 신문입니다(nous somme un journal)'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리베라시옹>이 급여 감축과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사옥 변경을 적자 경영 타계책으로 발표하자, 기자들이 반발한 것이다.
'우리는 신문입니다'
<르 몽드(Le Monde)>도 경영 위기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몇몇 언론사가 종이 신문 발행을 포기하고 온라인 매체로 전환하더니, <리베라시옹> 차례가 된 것이다.
이에 사르코지 정부는 2008년 신문사 위기 타개를 위한 대토론회 등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모색했다. 사회 공적 자원인 언론(또는 신문)을 유지하기 위해 긴급 수혈에 나선 셈이다.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위기 탈출 해법으로 늘 언급되는 것은 다름 아닌 양질의 기사 생산이다. 기자 입장에서는 가슴 쓰린 지적일 수 있다. 특히 자부심 강한 프랑스 기자들이라면, 더더군다나.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CSA에 따르면, 일간지 기자 중 약 80%가 자신의 직업에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기자들의 직업인식평가' 결과 2007년에는 96%, 2011년에는 81%의 기자들이 현재 직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프랑스 사회 역시 유력 일간지 기자를 18,19세기 정도의 지식인으로 바라본다. 그만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다. 기자 또한, 스스로를 '민주주의 보조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많은 젊은이들도 기자가 되길 꿈꾼다.(2011년 프랑스 전국 기자 조합(Syndicat national des journalistes)과 직업 위험 평가 전문 기관 테크놀로지아(Technologia)가 프랑스 기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프랑스 신문에 대한 높은 신뢰도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 블로거와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신문사의 위기'에 대한 담론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기자들이 높은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18세 이상 프랑스인 평균 69%가 뉴스와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가장 신뢰를 하는 미디어로 1위 라디오(58%), 2위 신문(55%)을 꼽았다.
프랑스인들이 뉴스를 획득하는 경로(매체)를 조사하면 1위는 늘 텔레비전이다. 하지만, 신뢰도 측면에서는 라디오와 신문이 TV에 비해 높게 나왔다. 그리고 인쇄매체를 위협해온 주범인 인터넷에 대한 신뢰도는 37%로 제일 낮았다(2014년 프랑스 시장조사업체 TNS-Sofre와 프랑스 일간지가 발표한 '2014 미디어신뢰도조사'). 한국의 경우, TV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으며 신문은 인터넷보다도 낮다.
이는 프랑스 기자들이 쓰는 양질의 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질의 기사 생산이 가능한 이유 또한, 기자의 자질을 키워내는 프랑스 기자 양성 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언론사 기자들의 권리에 대한 법적 보호
프랑스는 1881년 제정된 '언론의 자유'에 관한 법에 따라 기자의 취재와 작성에 제약이 적은 편이다. 또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프랑스 신문사 기자들 중 작가가 많았다. 오늘날 우리가 프랑스 소설가 혹은 작가로 잘 알고 있는 카뮈, 발자크 등은 오랜 기간 신문사 기자 생활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사(志士)적인 정신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기자가 사회의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지금도 살아 있는 이 전통은 프랑스 기자와 신문에 대한 신뢰의 바탕이다.
오늘날 프랑스 기자라는 직업은 과거와 차이가 있다. 지식인, 엘리트 계층의 기자 개념은 희미해졌지만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기자직은 노동법에 근거해 급여나 노동시간, 해고조치 등 법적 보호를 받는다. 프랑스 노동법 711조 3항과 5항에 따르면 "기자는 하나 또는 복수의 언론사, 통신사에서 전문적인 활동을 통해 급여를 받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에서 언론사의 출판물은 전자 형태의 출판물까지 포함한다.
또 1935년 '브라샤 법(loi Brachard)'이라는 기자의 위상에 관한 법에 근거해 직업적 위상을 보상받고, '기자 국가단위단체협약(Convention collective nationale de travail des journalistes)'의 보호를 받는다. 이를 통해 기자들은 매년 언론사 형태와 직급에 따른 최소 급여, 언론사의 사업변경으로 인해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받는다. 프랑스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으며, 편집의 독립성이 보장된다. 1974년부터는 '크레싸 법(loi Cressard)'을 통해 원고매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 프리랜서 기자도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기자'라는 직업적 신분의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은 프랑스 기자는 현재 약 3만 7500명 정도이다. 이중 약 66%가 신문 기자들이다. 그러나 언론사의 끊임없는 경영난으로 편집부 규모가 줄고 정규직 기자 채용이 감소하면서 2008년 이후 프리랜서 기자와 계약직 기자가 늘고 있다. 정규직 기자는 73.7%, 계약직 기자와 프리랜서 기자는 각각 3.8%와 17.5%로 집계됐다. 특히 26세 미만인 기자의 경우 정규직은 32.1%에 불과하다(기자직업관측소 l’Observatoire des métiers de la presse와 유관 단체들 발간 '2012년 기자현황').
프랑스의 기자 양성 제도와 기관
양질의 기사 생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기자'에 대한 직업적 안정성과 권리 보호를 통한 환경이 전부는 아니다. 유럽평의회에서 발간한 '2007년 언론인에 대한 교육 보고서'는 민주사회의 근간 중 하나로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과 그 언론의 올바른 기능을 위해 언론인들이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한 기자 전문화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의 언론인 양성제도는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언론학 전공의 일반적인 대학 교육, 둘째는 비비씨(BBC), 엘파이스(El Pais) 등에서 시행하는 유력 언론사의 언론인 전문 양성 기관, 셋째는 실용 교육을 중심으로 한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이다. 이 중 프랑스는 세 번째인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몇 교육기관이 언론사와 결연하는 식으로, 특정 교육기관출신이 특정 언론사에 대거 진출하기도 한다. 사실상 신문사 부설 기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파리 저널리즘 학교(ESJ- Paris)-<르 몽드>, 파리 9대학의 IPJ-<르 파리지앵(Le Parisien)>, 파리 저널리즘 교육 센터(CFJ)-<르 피가로>가 이런 밀접한 관계에 있다.
프랑스는 언론인 선발에 있어 특별한 학위, 전문 교육 수료 의무 등을 조건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문사에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사나 기자의 국가단위단체협약(CCNTJ)은 최근 신문사 지원자들에게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의 학위 소지를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의 학위는 좁은 신문사 취업문을 통과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기자 고용 국립 조정 위원회(Commission paritaire nationale pour l’emploi des journalistes, CPNEJ)가 인정한 유명 저널리즘 전문학교 출신은 2년의 수습기자 기간을 1년으로 줄여주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 입학은 신문사 취업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어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기관별로 한해 약 30~50명 정도를 모집하는데, 무려 600~900여 명이 지원한다.
프랑스의 유명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들은 대부분 실무가 강조되는 전문 석사 교육 과정(박사 학위 과정으로 진학하는 연구 석사 과정과 대비되는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학부 전공자들이 모여 언론인으로 활동하기 위한 전문 과정을 교육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은 약 2~3년으로 저널리즘에 대한 기본 이론은 물론, 취재 방법, 기사 작성, 카메라 취재, 뉴미디어를 이용한 기사 작성과 보도 등 실기를 중심으로 교육한다. 다수의 기관이 언론사 인턴십을 의무 과정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보도 윤리와 언론법에 대한 교육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기자로서의 소양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남녀평등에 관한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는데, 이 법안에는 저널리즘 교육기관의 남녀평등 교육이 의무로 추가되어 있다. 물론, 남녀평등 교육을 저널리즘 교육기관에만 의무화하고 있어 관련 기관은 반발하고 있다. 여러 국회의원들도 그 점을 인정, 법안 통과 여부는 현재 불투명한 상태다. 하지만 언론이 사회 여론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부가 기자의 소양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저널리즘 교육기관은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 등 분야별 교육내용을 특화하기도 한다. 국제 정세, 경제에 대한 이해 및 분석, 금융과 과학 분야 전문 기자를 위한 세분화 커리큘럼 등을 교육과정에 포함하기도 한다.
특히 파리 4대학의 CELSA, 파리 저널리즘 교육 센터 CFJ와 같은 일부 기관들은 기존 언론인을 위한 재교육도 담당하고 있다. 재교육 과정은 저널리즘 윤리 교육과 개인의 능력 배양을 위한 전문 테마 교육이 중심이 된다. 강사들은 언론학자에서부터 실무 분야의 전, 현직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 처음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은 기자 중 유력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 출신은 14.4%다(2012년 프레스 카드 소유 기자들 대상 조사). 실제 비(非)저널리즘 스쿨 출신이 기자로서 출발하는 평균 나이가 31세인 것에 비해 저널리즘 스쿨 출신들은 25.8세에 기자가 된다는 점에서 기자 직업 관측소는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을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몇몇 저널리즘 전문 교육기관은 특정 신문사와의 연계가 있고 그 결과 내부적으로 '학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높은 경쟁률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2~3년간 전문적인 언론인으로 양성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체계적인 전문 교육을 받은 언론인들 역시 전문직으로서 능력과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이제는 누구나 원하면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전문적인 기획 기사, 탐사 보도, 양질의 기사 작성은 전문 언론인이 담당해야 할 일일 것이다. 전문 언론인 양성, 그들이 생산하는 양질의 기사, 그리고 이를 통한 언론의 신뢰 회복은 우리 사회에서도 요구되는 사안이다. 이를 위해 보다 전문화된 언론인 양성과 고등교육의 제도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참조>- 수용자의식조사, 미디어통계정보시스템, 한국언론진흥재단- 최지선, '언론사 재정난에도 기자직 인기는 여전', 신문과 방송, 한국언론진흥재단, 2013년 9월.- Baromètre de confiance dans les médias 2014, TNS-Sofres, 01/2014- Baromètre du moral des journalistes, Institut CSA, 2007, 2011.- Education et formation professionnelles des journalistes, Rapport Doc.11170, Assemblée Parlementaire du Conseil de l’Europe, 02/2007.- Le travail réel des journalistes : Qualité de l’information & Démocratie, Technologia, 03/2011.- Les journalistes détenteurs de la carte de journaliste professionnel en 2012, Observatoire des métiers de la presse. 09/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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