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치 월세에 이익금 얹어 3억 준다 해놓고…"

[재개발, 길을 잃다‧④] 조합장 '감언이설'에 넘어간 뉴타운 사업 주민들

서울시 뉴타운 및 재개발 조합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의견 수렴 기한이 내년 1월 31일까지 1년 연장됐다. 이 기간 내에 주민 반대가 50%를 넘긴 조합은 해산할 수 있다. 2012년 시행된 뉴타운 출구전략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이 출구전략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편집자

<1> 재개발, 길을 잃다 ① : "호떡 장사로 마련한 내 집, 이제와서…"

<2> 재개발, 길을 잃다 ② : 남편 떠난 빈집 지키는 독거노인, 사연은…

<3> 재개발, 길을 잃다 : "9억이던 집을 어떻게 5억으로 후려치나?"

"아이고, 말도 마. 조합장이 자기 마누라랑 부침개까지 구워서 노상 마을을 돌아다녔어. 여름엔 노인들 노는데 수박이랑 아이스크림 등을 사서 돌리기도 하고…. 재개발 관련해서 불리한 거는 일체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돌변한 거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거주하는 김득남(77) 할머니. 그가 침을 튀겨가며 연신 조합장 욕을 하자,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들도 같이 거들기 시작했다.

"여우도 그런 여우가 없어."

다들 그간 쌓인 게 많았던 듯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경쟁하듯 그간 있었던 일들을 기자에게 쏟아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재개발 조합장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대부분 휘경동에서 적게는 30년 많게는 5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다.

이야기는 2006년 자신들이 살던 집이 뉴타운 사업 구역으로 지정되던 때로 올라간다. 김득남 할머니는 처음엔 '뉴타운'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저 '헌집 주면 새집 준다'는 말에 넘어가 덜컥 조합 동의서에 사인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망 얻어 조합장 되더니 감언이설로 주민들 설득

하지만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뉴타운 사업이 재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협력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검찰에 기소된 조합장이 해임되면서 이러한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됐다.

이후, 새 조합장이 조합원 총회에서 선출됐다. 김득남 씨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김 씨 옆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조합장으로 선출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새 조합장은 이전까지 뉴타운 반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재개발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다. 2012년 초의 일이었다.

"화장실 배관, 수도꼭지 등을 수리하는 수리기사였어. 우리 동네에 워낙 늙은이들이 많이 살잖아. 집 문고리가 고장 나면 이것을 고치기도 힘들어. 게다가 집들도 죄 낡았잖아. 자연히 고칠 게 하나둘씩 생기기 마련이야. 그런데 이 사람이 집집이 돌아다니면서 그런 것을 거의 무료로 고쳐주는 거야. 우리 집 계단이 부서지자 거기를 시멘트로 발라 주기도 했어. 얼마나 고맙던지… 그런데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부 계산된 행동이었던 거야."

뉴타운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간 보여준 행동 등을 믿고 재개발 조합장으로 밀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꼴이 됐다. 새 조합장은 그간 동네에서 쌓은 인맥을 이용해 재개발 사업에 반대해온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휘경동 주민인 염규례(71) 씨는 "조합장이 와서는 (뉴타운 사업 관련해서) 가계약이라면서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해지할 수 있다고 했다"며 "그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일정 단계가 지나면 이후에는 무조건 진행되는 게 뉴타운 사업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김용순(78) 씨에게는 뉴타운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이젠 몇 명 안 남았다며 나중에는 김 씨만 남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 씨에게 재개발이 진행되면 새 아파트를 얻는 건 물론이고 1억 원의 이익금이 남는다고 설득도 했다.

건물에서 한 달에 월세 400만 원을 받는 박영숙(가명‧61)씨에게는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는 3년 동안의 월세에다가 추가이익금까지 얹어 약 3억 원을 사업이 마무리되면 준다고 약속했다.

삶의 터전도, 인간관계도 망가뜨리는 뉴타운

뉴타운 반대 목소리를 감언이설로 잠재운 셈이다. 이후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동대문 지역 내 14개 뉴타운 구역 중 가장 빠르게 진행됐다. 뉴타운 반대 비대위 위원장이 조합장으로 선출되면서 비대위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된 것도 한몫 차지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 소유 주택의 감정평가액이 형편없이 나오면서 또다시 논란이 됐다. 평당 시세가 1800만~1900만 원인 김득남 씨 집이 평당 850만 원의 감정평가를 받았다. 다른 집도 대략 비슷한 감정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 탓에 추가이익금은 고사하고 ‘추가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합에서 흘러나왔다. 조합장이 말했던 것과 정반대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김득남 씨를 비롯해 몇몇 마을 주민들이 조합장에게 따졌다. 그러자 '내가 언제 (추가이익금을 준다는) 그런 말을 했느냐'고 발뺌했다. 조합을 탈퇴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래도 뉴타운 사업은 계속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화가 나서 조합장에게 어떻게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도 이렇게 안하무인일 수 있느냐고 따졌지. 그랬더니 '죽여보세요. 죽여, 죽여' 이러면서 머리를 내 가슴으로 들이밀더라.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뭘 어떻게 하겠어? 조합장에게 속은 내가 바보라고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지."

김봉순 씨는 "조합장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길래 각서를 쓰라고 하니, 자기는 글을 모른다며 각서를 쓰지 않았다"며 "조합장으로 나올 때 찬조금까지 주면서 밀어줬는데, 이렇게 배신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봉순 씨는 현 조합장이 선거에 나오자 150만 원을 그에게 줬단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조합장 '뚝심'으로 이 지역은 지난해 12월, '관리처분인가'가 조합원 총회에서 통과됐다. 조합은 3월 말까지 조합원(세입자 포함) 이주기간으로 정하고 이주를 진행하고 있다. '발 빠른' 조합장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마을 주민 이주를 준비해왔기에 일사천리로 이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득순 씨는 "이곳은 대다수가 늙은이들이 살고 있어서 조합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분위기"라며 "뉴타운 지역 해제를 위해 조합원에게 반대 서명을 받고 있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를 일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뉴타운 사업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이주가 시작되면 나는 50년 넘게 살아온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이 나이에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뉴타운 사업 전만 해도 친한 이웃으로 지내왔던 조합장과 지금은 완전히 원수가 돼 버렸다. 생활터전, 그리고 인간관계를 다 망가뜨리는 게 지금의 뉴타운 사업인 듯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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