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이던 집을 어떻게 5억으로 후려치나?"

[재개발, 길을 잃다‧③] 헐값 감정평가액으로 끊이지 않는 논란

서울시 뉴타운 및 재개발 조합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의견 수렴 기한이 내년 1월 31일까지 1년 연장됐다. 이 기간 내에 주민 반대가 50%를 넘긴 조합은 해산할 수 있다. 2012년 시행된 뉴타운 출구전략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이 출구전략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편집자


"어떻게 9억이던 집을 5억4000만 원으로 평가할 수 있나. 차라리 고아원에 집을 기부하면 마음이라도 편하다. 그것도 아니고 대기업에 내 집을 바치는 식이다. 울화통이 터지지 않겠나."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있는 북아현3구역 뉴타운 사업 반대 비상대책 위원회 사무실. 지난 26일 오후, 평일임에도 10여 명의 지역 주민이 모였다. 모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기자가 한 마디 물으면 열 마디의 답이 돌아왔다.

이날 모인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제 삼는 것은 자기 집에 대한 감정평가액이었다. 턱없이 낮게 책정돼 헐값에 집을 빼앗기게 됐다는 것.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이정현 씨는 자기 집 감정평가액이 3억400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우리 아파트와 평수가 비슷한 옆집의 경우, 경매가가 4억3000만 원이었다"며 "그런데 그것보다 더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감정평가를 받을 당시 이 씨 집은 건립된 지 채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상' 아파트였다. 문제는 이렇게 평가절하된 감정평가를 받은 게 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주민이 시중가보다 현저히 떨어진 감정평가를 받았다.

▲ 북아현3구역 비대위 사무실 ⓒ프레시안(허환주)

평생 모아 장만한 집, 한순간에 날아 갈 판

뉴타운 사업에서 감정평가액은 시중 실거래가보다 낮게 나오기 마련이다. 감정평가 금액이 높으면 개발이익이 낮아져 조합에서는 높은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뉴타운 사업 구역에서는 감정평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시세 대비 60~70% 선에서 책정되는 감정평가액으로 보상받아야 하는 조합원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뉴타운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자기 집이 뉴타운 구역에 포함되는 것을 환영했던 주민 대다수는 평가절하 된 감정평가액을 접하면서 개발 반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감정평가 논란은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정체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북아현3구역 뉴타운 사업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북아현3구역 감정평가 금액은 시세보다 약 35% 정도 낮다. 게다가 이 금액은 애초 나왔던 감정평가 금액을 조합 측에서 임의로 조작해 세 차례 수정된 평가액이라고 비대위는 주장한다.

이 씨는 "감정평가를 진행한 업체를 찾아가 왜 이렇게 가격을 낮게 책정했느냐고 따졌더니 조합에서 감정평가액이 높으면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해서 그렇게 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씨는 "사업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대다수 주민의 집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며 "이렇게 조합 마음대로 평가액을 책정하다 보니 평생 모아 마련한 집이 한순간에 날아갈 판이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렇게 낮게 책정된 평가액으로는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판단해 현금청산을 신청했다. 이 씨처럼 현금청산을 신청한 주민은 상당하다. 비대위에 따르면 현재 북아현 3구역에 사는 세대주 2535명 중 현금 청산자는 779명이다.

문제는 이들 현금 청산자들에게 줄 현금 청산액이 약 3720억 원으로 북아현 3구역 전체 감정가의 44%나 된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인근에서 뉴타운 사업이 진행 중인 북아현 1-2구역(26%), 북아현 1-3구역(32%)보다 높은 수치다.

▲ 주택에 걸린 뉴타운 재개발 사업 반대 깃발. ⓒ프레시안(허환주)

"지금 감정가로는 전셋집도 얻지 못한다"

비대위 측은 이 금액을 모두 지급할 경우, 사실상 뉴타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사업 수익성 하락으로 주민들이 높은 분담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합은 지속해서 뉴타운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대위는 그간 사용한 업무추진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까지 북아현 3구역 재개발 조합에서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315억 원으로 알려졌다.

비대위는 뉴타운 사업 구역 해제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조합이 조합원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조합원들이 자기 개인정보를 비대위에 알려주기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다.

급기야 서대문구청에서는 조합 측에 정보를 공개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조합은 요지부동이다. 되레 구청 요구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구청에 손을 들어줬으나 조합은 이에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갈 태세다. 대법원 판결까지는 조합원 명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셈이다.

조합 해산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조합원 50%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조합원 명부가 없어 조합 해산동의 여부를 묻는 연락도 돌리지 못하고 있다. 북아현 3구역에는 외지인이 전체 주민 중 약 60%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지금 감정가로는 은행 빚 빼고 나면 서울에 전셋집도 얻지 못한다"며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집을 뉴타운 한다고 헐값에 넘기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이렇게 문제 많은 뉴타운 사업을 왜 진행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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