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의 3일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새누리당이 정무위 안(案)으로부터 점차 뒷걸음질 치고 있다.
가족신고 의무 조항, 포괄적인 가족 범위 등을 지금처럼 둔 채로 김영란법이 만들어지면 '서민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까지 등장시키면서다. (☞ 관련 기사 : 새누리, 김영란법 '주저'하는 이유 알고 보니…)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서민 경제' 카드를 김영란법에서까지 꺼내 들며, 2월 임시국회 통과 불발 때를 대비한 포석을 깔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1일 저녁 새누리당은 100여 명이 참석한 의원총회를 열고 3시간 40분에 걸쳐 당내 부정적 여론을 수렴했다.
물론 적지 않은 의원이 '여론이 거센 만큼 일단 법을 통과시키자'며 정무위 안 통과 반대 의원들과 맞섰다지만, 이 역시도 가족 관련 조항들에 대한 '추후 수정'을 염두에 두고 나온 주장들이다.
이 같은 여론을 확인한 당 지도부는 정무위 안 수정을 목표로 야당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유승민 원내대표는 2일 오전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부모 자식 간 고발하거나 가족 범위가 지나치게 넓거나 직무 관련성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부칙에 언제부터 시행 시기를 정할 건지 하는 부분들에 대해 오늘 오후 야당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부터 진지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가 언급한 '부모 자식 간 고발'은, 공직자의 가족이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공직자가 이를 의무적으로 신고하게끔 한 조항을 일컬은 듯하다.
김무성 대표는 유 원내대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정 후 제정'에 무게를 실으며 발언했다.
그는 "법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면 오히려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무엇보다 서민 경제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포괄적인 가족 관련 조항들이 '서민 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을 소개했다.
그는 또 "일단 적용된 다음 새롭게 고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면서 "의총에서 나온 이 모든 것을 담아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모든 협상 권한을 위임한다"고 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김 대표가 소개한 서민경제 '위축' 우려도 부족했는지 서민경제 '붕괴'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야당과 협상이 잘 이뤄지길 바라지만 그게 안 된다면 한 달 정도 늦추더라도 서민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특별한 장치를 하면서 우리 국가의 청렴 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법을 만들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공직 사회 부패의 근본 원인은 지나친 규제 때문이라는 아전인수식 논리도 펼쳐 보였다.
이 최고위원은 "저는 근본적으로 왜 경제력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의 청렴지수가 39위 정도인지 생각해봤다"면서 "부패를 부르는 근본적 원인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규제, 시대에 뒤떨어져 벌써 치워버렸어야 할 규제, 전문가들도 해석하기 어려운 모호한 규제"라고 했다.
"그걸(규제) 뚫기 위해 부패 동기가 생기고 부패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게"되니 "우리 당이 주도해 규제 혁파의 불꽃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게 이 최고위원의 주장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가 만든 수정안을 또 '수정'하자는 목소리를 서서히 키워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한 '절차' 중 하나였던 지난 1일 의원총회에 대해 자화자찬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 대표가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게 새누리당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자당의 의원총회를 추켜세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영란법은 2012년 8월 입법 예고돼 국회에 넘어온 이래 2년 6개월이 넘도록 표류해 왔다. 지금 새누리당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문제 삼고 있는 포괄적 가족 범위와 가족 신고 의무 조항 등은 정무위에서 논의되던 때도 도마에 올라있던 쟁점들이다. 본회의 처리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수정' 목소리를 모아가는 것은 만시지탄이란 지적이다.
이처럼 '수정 후 처리' 또는 '처리 연기'란 기로에 선 새누리당을 상대로 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한 처리 시한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회의에서 "새정치연합은 (3일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합의가 안 되면 정무위 원안대로 통과시킬 예정(표결할 예정)"이라면서 "김영란법이 연기된다면 (새누리당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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