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라틴어로 '기계장치로 나타나는 신'을 말한다. 요새 말로 하면 무수한 '떡밥'(복선)들이 난무한 가운데 길을 잃은 플롯, 혹은 스토리의 대미를 갑작스런 '신의 현현'으로 마무리해버리는 셈이니, 연극에 이 '기계신'이 나타났다면 이는 곧 '망작'이다. 주인공이 갖은 역경을 거치면서 극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신이 나타나 주인공을 구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런 장치가 스토리를 망친다고 비난했다.
박근혜는 마치 고대 그리스 연극 속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국회에 강림했다. 숱한 사람들이 특검법 여론이 무르익지 않았고, 한동훈 징계와 겹쳐 정치적 효용성이 흐릿하며,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조언했으나 꿈쩍도 않던 장동혁 대표가, 8일째의 '단식 서사' 마침표로 선택한 게 박근혜다. 이로써 장동혁은 탄핵 대통령 윤석열과, 탄핵 대통령 박근혜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게 입증됐다. 이 '쌍탄핵'이 국민의힘 위기의 근본 원인인데, 장동혁과 그의 세력은 탄핵과 탄핵의 사이에서 여전히 공고한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하긴, 신앙심 강한 장동혁 대표는 "(윤석열의)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고쳐 주실 것"(3월 세이브코리아 주최 집회)이라고 말한 적이 있잖은가.
무슨 해결사처럼 단식 농성장을 찾은 박근혜와, 그 앞에 다소곳하게 두손 모으고 앉은 수척한 장동혁의 사진은, 예수가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고 있는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요한복음 13:3-5)
박근혜가 장동혁을 불렀을 때, 장동혁은 그와 같은 힘을 원했고 그처럼 되길 바랐으니, 주를 세 번 부인한 후에야 진정한 보수의 '적자'로 거듭나 '사람 낚는 어부'가 된 베드로의 이야기. 너절한 신화의 완성은 이렇게 해괴한 해프닝으로 정점을 찍었다. 더 슬픈 일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박근혜의 등장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굉장히 보수 진영에서 상징성이 있으신 분이고 또 평소에 정치 행보를 거의 안 하는 분이시지 않나. 그런 분이 국회에 무려 10년 만에 처음 방문해서 직접 장동혁 대표를 보고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는 것에 정치적 함의가 상당하다고 생각된다."(주진우 의원)
탄핵과 탄핵 사이에 갇혀 '자가(自家) 신화'를 만들고 있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2019년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체제와 꼭 닮아 있다.
"황교안 당시 대표는 그해 1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향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이 단식으로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서 촉발된 개혁파의 '쇄신 요구'가 쏙 들어갔고, 황교안 주변에선 '황교안 체제'를 공고화했다며 '단식 효과'를 호평했지만,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은 그야말로 '폭망'하고 만다."(교안복음?)
'박근혜 탄핵'의 강을 건너지 않고, 당내 쇄신 요구를 입막음하며 당내 기반을 다지는데 성공한 황교안처럼, 장동혁 대표의 주변 사람들은 이번 단식에 같은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구축한 '쌍탄핵' 사이에 낀 이 세계관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윤어게인'의 세계관과도 매우 닮아 있다.
'윤어게인'의 세계관은 과연 그 '보법'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지금 종교적 핍박을 영적인 힘으로 이겨내려 하고 있다. 이건 그들의 '성전'이다. 언젠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예언처럼 내려와 이 엉망진창의 '이재명 활극'을 끝짱내줄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까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트럼프의 항공모함이었는데, 이 상상력이 좌절을 맞자 아예 종교적 피안으로 도피를 시도하고 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용현의 변호인인 이하상 변호사는 유튜브 채널에서 '슈퍼챗'을 받으며 지지자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설교한다. 이 '진격의 변호사'들은 구약의 열왕기에 등장하는 예언자 엘리사를 예로 든다. 아람(시리아)의 왕이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포위하사, 엘리사의 종들이 벌벌 떨고 있음에 엘리사가 가로되 '걱정 마라. 우리 편이 더 많다.' 며 영안(영혼의 눈)을 열게 하니, 수많은 '불말(馬)'과 '불병거(兵車, 이륜전차)'가 눈앞에 보이더라.
윤석열을 구할 '불병거'와 '불마'의 '하늘 군대'는 이들 눈에만 보이는 약속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성경 속에서 이 스토리는 기적이지만, 세속의 서초동 내란 법정에선 판타지가 된다. 물론 '영혼의 눈'을 뜨고 보라며 연신 '아멘'을 외치는 변호사들에게 법정은 한낱 세속의 마굿간보다 더 못한 곳이겠지만. 다음은 이하성 변호사의 주옥같은 설교들이다.
"지금 적들이 완벽한 포메이션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가짜 대통령부터 판사 나부랭이들까지 완벽한 진영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병력도 없고 무기도 없고 사기도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전쟁이 참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만, 바로 이럴때 우리는 더 창조자, 절대자, 로고스, 성령님 하나님께 의지하는 이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치라고 할때 치면 된다."
"판결로 역사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인은 저런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 지들이 보는 것은 눈이 가리워진 좁은 세상이다. 이진관이가 끽 해야 지한테 기소해서 배당된 사건만 보는 거잖나. 그런데 그걸 가지고 지가 역사를 바꾸는 것처럼 설레발을 치고 눈물바람 해쌓고, 그렇다고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얼마나 황당하고 모자란 종류의 인간들인가."
이들의 세계관 속에서 이건 종교 전쟁이다. 이 세계관에선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들과, 이미 심판 받아 정치 생명이 끝난 전직 대통령이 '약속의 메시아'로 작동한다. 그 메시아는 언젠가 얌전한 화분을 매단 줄처럼 삐걱거리며 '신'을 무대로 내려보낼지니, 곧이어 계시를 받은 '잔다르크'가 나타나 저 무도한 가짜 신도들을 처단하고 윤어게인의 10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것이니라. 한덕수의 징역 23년 선고 따위는 신의 뜻 안에서 벌어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유한한 인간의 작은 고난에 불과할 것이오….
…우린 이런 싸움에선 절대 이길 자신이 없다.
평생 나치와 싸웠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옥중에서 쓴 <저항과 복종>에서 인간이 지식, 능력, 도덕적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르는 '도구적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비판한다. 지금 보수는 자신들의 문제를 회피하고, 세상의 문제를 회피하며 '박근혜 강림'이나 '윤석열의 재림'같은 '기계 장치로 나타나는 신'을 갈구하고 있다. 혹은 갈구하는 척을 하고 있다. 윤석열 본인도 최근 성경에 심히 취해 있는 모양이다. 이런 모습들은 이 땅의 보수가 처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극들이다. 장동혁 대표의 말대로 이 모든 게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면, 그들의 처지 역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리라.
그들이 '쌍탄핵'의 마법진 속에 갇힌채 현실을 회피하는 건 자유지만, 비극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닥쳐 온다. 제대로 된 보수를 가지지 못하고, 종교화 된 극우적 세계관에 빠진 이들의 '보수 참칭'은 민주당에도 좋지 않고, 나라에도 좋지 않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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