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브로커는 어떻게 강남 성형외과 망쳤나?"

[의료 민영화, 재앙인가? 축복인가?] '성형대국'의 그림자<1>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는 성형외과 광고들이 즐비합니다. 한글과 한자가 같이 적힌 성형외과 간판들도 눈에 띕니다. 아예 중국어 홍보 영상을 틀어놓은 성형외과도 있습니다. 최근 1년 새 벌어진 현상입니다. 정부의 ‘의료 관광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중국어 간판을 건 성형외과들이 늘었습니다.

압구정역 인근의 한 성형외과에서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을 만났습니다. 의료 관광 실태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중국어 간판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답이 옵니다. “한국 시장이 포화 상태라 해외 환자를 늘릴 수밖에 없으니 간판도 바꾸고 그래요.” 성형외과만 3곳이 들어선 병원 건물이 치열한 경쟁 상황을 실감케 했습니다.

차 회장도 중국어 홈페이지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홈페이지만 보고 한국을 찾아오는 중국인은 드물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중국 현지 브로커를 통해 들어옵니다. 그 점이 문제였습니다.

“중국사람(관광객)이 돈 쓰고, 그 돈이 다시 중국으로 가요. 의사들은 곰처럼 재주만 부리고 돈은 왕 서방(브로커)이 벌죠.”

재주 부리는 의사, 돈 버는 왕 서방, 바가지 쓰는 환자

중국 성형 관광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일단, 중국 브로커들이 현지에서 환자를 모아옵니다. 단체로 비행기 표도 끊어주고 호텔도 잡아줍니다. 한국에도 해외 환자 유치업체가 있지만, 네트워크 측면에서 중국 브로커를 이기지 못합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 환자 중에 국내 유치업체를 통한 경우는 12.6%입니다.

중국 브로커는 강남 성형외과 원장들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중국 환자를 데려갈 테니까,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흥정합니다.

중국 환자를 받으려는 성형외과 간 경쟁이 심해지니, 브로커가 ‘갑’이 됩니다. 처음에는 10~20%선이었던 수수료가 요즘은 50~75%까지 올라갔습니다. 심지어 90%까지 떼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수료가 올라 환자가 내는 돈은 많아졌는데, 의사들이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인에게는) 1000만 원짜리 수술인데, 중국인 환자가 1억 원을 낸 사례가 있어요. 의사가 1000만 원 가져갔고, 9000만 원은 중간에서 먹은 거죠. 그 환자는 한국 수술비를 1억 원으로 아는데 말이 안 되죠. 그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보이겠어요?”
9000만 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환자를 데려온 브로커가 다 가졌을까요? 차 회장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브로커 조직도 다단계 형식이다 보니, 정작 성형외과에 전화를 건 브로커가 돈을 많이 챙겨가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최종 ‘왕 서방’이 누군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환자와 병원이 직접 거래하지 않고 중간에 ‘브로커’들이 끼면, 의사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입니다. 환자에게 시장 가격대로 정직하게 비용을 받고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브로커와 짜고 환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을 해도 병원으로서는 문제가 남습니다. 비용에 대해 영수증 처리를 못하니, 탈세를 하게 됩니다. 성형외과 수수료로 일종의 ‘지하 경제’가 생기는 것이죠.

여하튼 일부 병원들은 ‘바가지 씌우기’의 유혹에 넘어가는 모양입니다. 차 회장은 이런 식으로 피해를 본 중국인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바가지를 씌우는 방식도 여러 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유행이 지난 ‘줄기세포 가슴 성형’을 중국 환자에게 권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줄기세포라고 하면 중국 사람들은 되게 좋아해요. 중국에서는 의료기술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 했거든요. 줄기세포 성형이 한때 국내에서 유행했는데, 지금은 꽝이거든요. 중국 사람들한테는 줄기세포 섞어서 시술하고 몇 천만 원씩 더 받아요. 효과가 더 좋다고 속이는 거죠.”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기계 값을 충당하려면 단가가 올라가는데, 자가 지방 이식 성형과 줄기세포 성형의 효과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게 차 회장의 설명입니다.
▲ 한자 간판이 달린 압구정의 성형외과 개원가. ⓒ프레시안(김윤나영)

정부,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 허용 추진

차 회장이 성형외과 의사로서 양심선언을 한 이유는, 성형외과계의 불법과 탈법이 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수수료만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중국 환자 유치 기업이 한국 의사를 ‘바지 원장’으로 앉혀 놓고, 직접 성형외과를 차리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환자를 끌어와서 그 병원에만 데려가고, 병원 수익을 빼갑니다. 의사 아닌 사람이 병원을 차리는 것은 한국에서는 불법입니다.

“법망을 피하려고 중국의 성형외과 광고회사들이 불법 병원을 차려요. 광고비용이라고 해서 합법적으로 수수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며요. 하지만 광고비에 환자 유인, 알선비가 포함되죠. 광고 회사들은 중국에 온라인 성형 카페를 차려놓고, 자기가 차린 한국 병원을 소개해놔요. 그렇게 모은 환자를 자기네 병원으로 몰아주고….”

국내 의료법은 국내 ‘환자 유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간 업체가 ‘의료 시장’을 교란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외국인 환자에 한해 환자 유치업체가 병원과 직접 계약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도 허용하겠다는 게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제6차 투자 활성화 대책’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정부 방침대로 국내 대형 보험사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다면, 의사와 환자가 불법적인 수수료를 떼이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 보험사가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도 중소 국내 유치업체보다 수월할 것입니다. 단, 외국인 환자들이 30%선의 ‘합법적인’ 수수료를 떼이는 것은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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