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판 세월호 참사', 끊이지 않는 정부 조작·은폐설

[아시아 생각]탄광업체와 정부의 유착이 비극 불렀나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 즈음된 지난 달, 터키 역시 대규모 참사를 경험했다. 마니사(Manisa) 시 소마 구에 위치한 탄광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많은 광부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고 직후 국제 언론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가져온 이번 터키의 비극을 집중 보도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이스탄불은 물론이고 많은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어느새 안전사고를 막지 못한 무책임한 정부를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터키를 다시 한 번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단시키는 계기가 됐다.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곳곳에서 발생했고 경찰의 과잉 진압은 연일 문제시됐다. 반정부 세력과 정부간의 갈등 양상이었다. 몇 가지 측면에서 이번 시위는 지난해 태국에서 발생한 탁심 사태와 비슷한 면이 많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로 희생된 광부는 총 302명이다. 불행하게도 이들의 희생을 정치적 기회로 이용하려는 목소리가 높다. 반정부적인 성향이 있는 한 유명한 터키 기자는 최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현해서 “소마 주민들이 에르도안 총리의 정당을 투표했다. 이러한 사고가 나도 마땅하다. 우리가 에르도안 총리를 찍었기 때문에 더 큰 사고를 당해도 별 수 없다”는 취지의 망언을 해서 많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다. 반정부측 인사들의 이러한 끔찍한 발언이 인간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사실 사고 이후 정부의 행태를 들여보자면 이해하기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사고 직후 현장에 들른 에르도안 총리는 이후 마니사 시청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사고는 흔히 일어나곤 하는 일"이며 19세기 영국에서 발생한 탄광사고들과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일본 등의 사고가 바로 그러한 예라는 것이다. 에르도안 총리의 이 발언이 알려지자 민심은 폭발했다.

▲300명이 넘는 터키 소마 탄광 사고는 정부와 기업 간의 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형참사로 국민분열까지 초래하는 터키 정부

이후 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사고 3주 전,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한 의원이 소마탄광을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 정의개발당(AKP)은 이 제안을 묵살했다. 또한 이보다 전에 소마광산 기업 회장은 언론에 나와 자사 광산에는 ‘안전실(Safe Room)’이 있어 전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광산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들이 알려지면서 정부가 과연 소마광산을 제대로 검사했는가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많은 시민들이 광산기업과 정부가 특별한 관계가 아닌가 의심을 가질 즈음, 해당 기업 사장의 부인이 여당측 소마 구의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정부비판적 언론에 따르자면, 여당은 이 기업에서 비공식적으로 후원한 석탄을 선거 운동기간 중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데 활용했다. 이어 이 광산 기업의 회장인 알프 규르칸이 최근 7년 사이 30조원에 달하는 광산 민영화 입찰들을 따냈다는 뉴스가 들려오자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이번에는 정부와 기업간의 결탁관계에서 총리의 부적절한 태도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옮아갔다. 제일 먼저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총리 일행과 시위대의 충돌 과정에서 총리 보좌관인 유수프 예르켈(Yusuf Yerkel)이 보여준 모습이다. 시위 현장을 찍은 사진 속 총리 보좌관은 치안군에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진 남성을 걷어차고 있었다. 사진이 공개된 직후 친정부 인사들은 사진속 인물이 총리 보좌관이 아닌 경호원이라고 발뺌하려 했다. 그러나 진실은 숨길 수가 없었다. 보좌관은 결국 “시위꾼들이 우리를 심하게 자극했다”며 다리 통증을 이유로 일주일 병가를 내고 간접적으로 의혹을 인정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총리는 자신의 보좌관 사적인 일이라며 그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터키 시민들이 보좌관 사태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이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사고 현장을 방문 중이던 에르도안 총리가 야유소리를 내는 한 시위대 남성에게 "야유하면 때리겠다"고 경고하는 모습이 영상에 잡힌 것이다. 이 영상에서 에르도안 총리는 한 청년에게 다가가 "버릇없이 굴지 마라, (소마탄광 사고는) 이미 벌어진 일이다. 이건 신의 섭리다. 네가 이 나라의 총리한테 야유하면 넌 맞는다"라고 말했다.

이미 이 사건에 앞서 에르도안 총리는 소마지역 성난 시위대를 피해 슈퍼마켓으로 도망치는 과정에서 입구에 서 있던 청년을 때리는 듯한 모습의 영상이 포착돼 물의를 빚었다. 직후 자신이 총리로부터 폭행당했다고 주장한 타네르 쿠루자 씨는 "총리가 본의 아니게 뒷걸음질치던 나를 때렸다고 생각하기에 고소할 생각은 없다"며 "그러나 사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사를 통해 쿠루자 씨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자 친정부 기자들은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쿠루자가 반정부 성향이 있는 동성애자, 시민단체 활동가라며 두 개의 사진을 공개하고 이 사건을 반정부측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 아니란 것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쿠루자 씨가 친정부 언론에 응한 인터뷰를 공개해 자신들의 사건조작을 은폐하려 했다. 영상 속 쿠루자씨는 총리가 자신을 때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혼란 속에 자신을 보호해줬으며 과거 자신이 한 거짓말에 대해 총리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현재 소마 탄광사고의 최대 쟁점은 ‘정말로 302명이 사망했느냐’이다. 이러한 많은 조작과 은폐 속에서 많은 시민들은 정부가 희생자 수 역시 왜곡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정부가 공식 파악한 희생자, 구조자 수에는 마을의 비정규직 광부들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아직 광산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에서 터키 언론이 보여준 모습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언론은 구조 상황을 신속정확하게 전달하기보다 정치인들의 스캔들이나 사망 숫자 의혹 등 자극적인 소재를 보도하는데 열을 올렸다. 결국 정치권의 사건 조작, 은폐 그리고 정략적 태도는 터키 국민을 심하게 분열시켰고, 최악의 사고조차도 함께 슬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로 싸우고 반목하는 모습만이 터키의 전체는 아니다. 언론에 보도된 한 광부의 사연은 친정부-반정부를 넘어 많은 터키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구조 과정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한 광부는 구조원에게 “나를 구조하지 말고, 마흐무트(친구)를 구해주세요! 그 친구의 부인은 아이를 임신했습니다!”라며 먼저 구조될 기회를 양보했다. 그는 터키의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그가 보여준 배려와 화합의 정신만큼은 그 어느 정치인들의 행태에도 비할 바가 못된다. 오늘날 터키의 분열된 모습이 필자를 안타깝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조 현장에서 들려온 이러한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아직 터키의 앞날에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데 충분했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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