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사망…에이즈 환자 인권은 어디에?

인권단체 "정부 관리 부실"…해당 병원 "사실 무근"

국내 유일한 HIV/AIDS(이하 에이즈) 환자를 위한 장기 요양 병원에서 한 에이즈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권단체들은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취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주장한 반면, 해당 병원 측은 "질병이 깊어 사망이 예견된 환자였다"고 맞섰다.

한국 HIV/AIDS감염인 연합회(KNP+)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는 5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에이즈 환자는 왜 사망했는가?'라는 주제로 정부가 지원하는 에이즈 환자 장기 요양 사업에 대한 증언대회를 열었다.

"적절한 의료 조치 미비" vs. "전원하기엔 이미 상태 악화"

증언대회에 참석한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 활동가와 숨진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의 말을 종합하면, 에이즈 환자 김모 씨는 지난 6월 16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복막염으로 소장에 구멍이 뚫려 응급 수술을 받고 인공 항문을 달았다. 이후에도 요양이 필요했던 환자는 8월 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S병원으로 옮겼다.

김종훈 활동가는 전원 당시 환자의 지인이 "당분간 수액을 꽂아야 한다"는 세브란스병원의 말을 전했으나, S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수액을 맞아야 한다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 수액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후 환자는 8월 14일 세브란스병원에서 1차 외래 진료를 받고, 2주 뒤인 28일 2차 외래 진료를 예약한 상황에서 19일 오후 4시께 호흡 곤란을 호소했다. 환자는 S병원 측에 "세브란스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S병원은 "기초생활수급자인 환자 어머니가 전원을 원치 않아서 환자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환자는 고통을 호소한 지 하루 반 만인 21일 오전 숨을 거뒀다.

S병원 원장은 "환자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결핵이 악성이었고, 질병이 깊어 사망이 예견된 환자였다"며 "수액을 거부한 쪽도 환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송해서 살릴 수 있다면 보호자와 상관없이 이송을 고려했겠지만, 21일 오전 6시에 갑자기 나빠져서 6시 50분에 환자에게 이미 체인-스토크스 호흡(사망 직전 호흡 양상)이 와서 이송을 해도 구급차 안에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덧붙였다.

S병원으로 옮기기 이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김 씨를 담당한 간병인의 말은 다르다. 그는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으로부터 환자가 비활동성 결핵 상태라서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간병하고 퇴원할 때까지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환자의 위중함이나 사망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 감염인은 면역 저하 상태여서 감염에 취약한 상태고,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질 수 있다"며 "HIV 치료가 얼마나 잘 되고 있었는지 고려해야 하고, 요양병원이 실제로 어느 정도 환자 상태가 악화됐는지 인지하고 대처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2009년 12월 1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HIV 감염인 지원 예산 축소를 규탄하고 인권 보장을 촉구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프레시안

"에이즈 환자 차별했다" vs. "사실 무근"

이들 단체는 "이번 에이즈 환자 사망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견된 일이었다"며 "해당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 열악한 노동 조건, 종교 활동 강요 등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S병원에서 일했던 한 간병인은 "에이즈 환자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주는 환자복도 잘 안주려고 하는데, 암 환자에게는 공손하고 이불 등도 암 환자가 꺼내가더라"며 "환자가 잘못돼도 가족이나 밖에서 문제제기할 사람이 없으니 에이즈 환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복수의 에이즈 환자와 간병인은 "암 환자들은 외출이 자유로운데 에이즈 환자는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고, 연고자가 없는 에이즈 환자는 외출을 거의 할 수 없다"며 "에이즈 환자 병실은 9시에 일괄 소등한다"고 증언했다.

S병원에서 요양한 적이 있는 한 환자는 "병원 코디네이터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에이즈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라고 강조해 기분이 나빴다"며 "일주일에 한 번 병실 가운데서 예배를 드리는데, 거동이 가능한 나는 피했지만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주로 참석한다"고 말했다.

환자 성폭력 사건 논란

'국가 에이즈 사업 모니터단'을 꾸리고 '후천성면역결핍증 교육홍보대책분과위원장'을 맡았던 이훈재 인하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2011년 환자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간병인 2명이 동료 간병인이 환자와 병실에서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며 "환자는 거의 실명 상태이고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않은 분이었다"고 전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해당 병원에 성폭력 사건이 있어서 병원, 시민단체, 해당자를 대상으로 회의를 했다"며 "환자가 의사소통이 불명확해서 정확히 확인은 못했지만, 정황이 있고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부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11년 12월 병원에 주의 조치를 했고 해당 간병인을 해고하고 직원들을 상대로 직무 교육을 하도록 마무리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사업, 정부가 제대로 대처 안 해"

이훈재 교수는 "문제는 해당 병원이 법에 따른 국가 보건사업을 하는 유일한 병원이고, 국가 예산 투입된 현장"이라며 "그런 곳을 정부 당국이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S병원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2010년부터 선정한 유일한 에이즈 환자 장기 요양 사업 수행 기관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보면, S병원은 2010년 7000만 원, 2011년 4억1000만 원, 2012년 2억6000만 원, 2013년 2억4000만 원의 국가 예산을 받았다.

S병원 원장은 "문제를 제기하신 분들은 수익을 위해 제가 이 일을 한다고 한다"며 "그러나 대한민국 의료 수가의 구조상 의료 급여 환자들을 보면 볼수록 적자가 나게 돼 있지만, 우리 병원은 국공립 의료기관보다 4배가량 의료 급여 환자가 많다"고 반박했다. 그는 "무연고자의 경우 병원 자비를 들여 진료했으며, 2억 원 규모도 70병상에 환자 50명을 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절대 수익 때문에 이런 사업을 한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이 원장은 "질병관리본부 조치에 따라 해당 관계자를 해고 조치했고, 이후로 병실 당 간병인 2명을 두어 서로 감시하게끔 했다"며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병원 서비스에) 만족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예배도 병원의 여러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일 뿐 강요는 아니고, 에이즈 환자를 차별했다는 주장도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환자 사망 사건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고, 다른 시설을 찾든지 예산을 자르든지 올해 안에 결론이 날 예정"이라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 사업을 하려고 나서려는 병원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의 한 전문의는 "병원이 에이즈 환자 받기를 꺼려하는 것은 에이즈 환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B형 간염 보균자를 입사에서 떨어뜨리는 기업도 있고, 공공병원이 사스 지정 병원으로 기능하려고 하면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 사례도 있다. 제도적 사회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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