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는 충치도 못 뽑나?

"진료 거부는 다반사…의료인들의 편견도 심각"

A 씨는 심한 치통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직 의사는 컴퓨터로 그의 질병 이력을 조회한 후 아픈 곳이 어디인지 묻지도 않은 채 진통제만 처방하고 그를 돌려보내려 했다.

A 씨는 의사에게 "적어도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한 후에 정말 치료할 수 없다면 설명해주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고 항의했다. 의사는 "상태가 더 나빠져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치료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진료를 거절당한 A 씨는 다음날 다른 치과를 찾았다. 그 병원은 A 씨의 어금니에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고 간단히 치료했다.

A 씨는 HIV/AIDS(이하 HIV) 감염인이다. 의료법상 "의료인은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A 씨를 비롯한 HIV 감염인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치료를 거절당하기가 다반사"라고 입을 모은다.

인권위 "HIV/AIDS 감염인 진료 거부는 차별"

▲ HIV감염인에 대한 편견 없는 묘사로 화제가 된 드라마 '고맙습니다' 포스터. 특정 질환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MBC
지난 2월 서울의 한 유명대학병원은 "수술용 특수 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 감염인의 인공관절 시술을 거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진료 거부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는 치료 거부를 차별이라고 판단하고, 지난 7일 해당 병원장에게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인권교육 시행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해당 병원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30여 시민사회단체는 "그간 HIV 감염인들은 HIV와 상관없는 피부발진, 감기, 충치 등의 치료를 거부당해 왔다"며 "1,2차 병원을 전전하다 진료 거부를 피하고자 감염내과가 있는 대형병원을 갔는데도 진료 거부를 당한다면 HIV 감염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는데 특수한 기술이나 의료 장비가 있어야 할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다른 환자들처럼 에이즈 감염인은 반드시 큰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감기에 걸리면 일반 내과에 가면 되고, 이가 아프면 동네 치과에 가면 되는데, 대부분 병원이 '우리는 (감염인을) 치료할 능력이 안된다'는 핑계를 댄다"고 비판했다.

권 활동가는 "전문가들이 조사한 결과 특수 장갑은 필요 없었다"며 "보통 병원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장갑으로도 충분하지만, 감염 위험 때문에 의료인을 보호해야 한다면 감염률이 더 높은 B형 간염 환자를 위한 장갑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병원이 특수 장갑을 쓰고 싶다면 환자에게 책임을 지울 게 아니라 병원에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6개월이면 나을 병, 1년 반 걸려 완치"

HIV 감염인은 빈번한 '진료 거부' 관행 때문에 가벼운 병에 걸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대형 병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HIV 감염인인 윤가브리엘 씨는 "스케일링이나 이가 썩어서 뽑는 것은 얼마든지 동네에서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1차 치과에서는 치료를 안 해줘서 할 수 없이 종합병원에 간다"고 말했다. 간단한 치료를 하는 데도 병원비가 몇 배씩 드는 이유다.

윤 씨는 "심지어는 종합병원에서조차 치과 진료를 안 해주는 경우가 있다"며 또 다른 감염인인 B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종합병원 감염내과 다니는 분이 있어요. 간호사가 이 환자에게 다른 감염인을 어느 병원으로 보내면 좋을지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 병원에서는 (감염인은) 치과 진료를 안 해줘서 다른 병원에 보내려 하는데 어딜 보내야 하느냐'라고요. 종합병원조차도 심지어 감염내과가 있는데도 치료를 거부합니다."

윤 씨는 "일회용 고무장갑을 끼면 되고 일회용 기구를 쓰면 되는데,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병원의 진료 거부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감염인들은 병을 악화하기도 한다. C 씨는 지방에서 일하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 다리뼈가 부러졌다. 뼈를 이어붙이는 응급수술을 한 그는 병원에서 쫓아내는 바람에 곧바로 퇴원해야 했다.

문제는 후처치였다. 소독을 해준다는 1차 의료기관이 없었다. 몇 차례 동네 병원을 전전한 끝에 그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가 손을 벌벌 떨었다고 했다. 진료 거부로 염증이 심해진 그는 결국 서울의 큰 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아야 했다. "치료만 제대로 했다면 (다른 사람이면) 6개월이면 나을 병을 1년 반 동안 키웠죠."

감염내과가 없는 지역에 사는 감염인은 간단한 진료를 위해 서울까지 오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제주도에 사는 D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진료하러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다. 하지만 건강한 편이었던 그에게도 '예기치 못하게 아픈 경우'는 있었다. 갑자기 복통과 열이 났던 그는 "감염내과가 없는 지역 병원은 치료를 거부할 게 뻔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와야 했다.

에이즈 상식에 대한 의사들의 정답률 50~60%

2004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407명의 공중보건의를 대상으로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에 대한 공중보건의사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일상생활에서의 에이즈 전염 가능성에 정답률은 50~6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인의 눈물과 침에 노출돼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정답을 맞힌 응답자는 전체의 26.4%에 불과했고, "감염인을 문 모기에 물려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정답은 37.0%만이 맞혔다. 에이즈는 '격리와 활동제한 등 특별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한 질병'이라는 응답이 52.2%인 것으로 나타나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가 우세했다.

감염인이 감기, 설사 등 가벼운 질환으로 진료받기를 원할 때 진료를 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69.1%였다. 그러나 감염인들은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감염인이 본인의 감염사실을 알리면 의사 대부분이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료하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만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는 52.5%가 자신의 진료능력을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39.0%는 감염 위험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윤가브리엘 씨는 "애초에 뻔히 거절할 걸 아니 이제는 (웬만한 병원은) 아예 가지도 않는다"며 "감기든 뭐든 죽으나 사나 멀리 있던 감염내과에 간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생명이 달린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의사들이 너무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환자를 제일 많이 받는다는 대학병원조차 진료를 거부하면 이제는 어디서 진료를 받아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에이즈 바로 알기

에이즈에 대한 무관심으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감염인에게 상처를 준다. 윤가브리엘 씨가 자신의 책 <하늘을 듣는다>에 적은 '에이즈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소개한다.

Q HIV/AIDS 감염인이라고 쓰던데 HIV는 무엇이고 AIDS와 어떻게 다른가?

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이고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를 HIV 감염이라고 한다. HIV가 몸에 들어오면 바로 활동하지 않고 대략 7~10년 정도 잠복기를 거친다. 잠복기에는 아무 증상이 없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각종 감염성 질환이 찾아와 에이즈가 된다.

Q HIV 감염 경로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HIV 감염인의 혈액을 직접 만졌을 때 묻은 부위에 상처가 없으면 안전하다. 그 외 땀, 침, 소변, 대변 같은 분비물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HIV 감염인과 국이나 찌개를 같이 먹어도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가벼운 신체 접촉도 마찬가지여서 일상생활에서의 감염 가능성은 없다. 모기를 통한 감염 가능성도 없다. HIV는 혈액이 일정량이 형성돼야 살 수 있는데 모기가 빨아 먹는 피의 양은 극소량이기 때문이다. 또한 HIV는 성 정체성과 상관이 없다.

Q HIV 감염 확률은?

성관계 시 질 삽입 성교 0.1~0.2%, 항문 성교 0.1~3%, 수혈 90%,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옮겨지는 경우 25~30%, 주사 바늘에 찔렸을 경우 0.3%이다. HIV에 감염된 산모로부터 태아에게 옮겨지는 감염은 보통 25~30%인데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면 이를 훨씬 줄일 수 있다. 주사 바늘에 찔렸을 때는 가능한 한 빨리 비누와 물로 씻은 후 에이즈 치료제를 4주 정도 복용한다. 성관계 시 콘돔이 찢어져 감염이 의심스러우면 의사와 상담 후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Q 에이즈는 바로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 아닌가?

의료기술이 발전해 약만 잘 복용하면 완치는 안 돼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됐다. 문제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에이즈 치료제를 특허로 독점해 비싼 약값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90%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환자들은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을 먹을 수 없어 죽어가고 있다.

Q 에이즈 환자들에게 붉은 반점이 나타나지 않을까?

붉은 반점은 피부암의 일종인데 HIV에 의해 면역력이 파괴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감염성 질환 중 하나다. 주로 서양인에게 나타나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인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 붉은 반점이 에이즈를 더럽고 무서운 병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제는 관리만 잘하면 붉은 반점의 피부암도 안 걸리는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다. 붉은 반점의 에이즈 환자 모습은 치료약이 없던 1980년대 이미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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