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 내용을 떠나 공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인권위 수장이 집무실에서 공권력과 독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비판의 소지가 커 보인다.
29일 복수의 인권위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위를 담당하고 있는 남대문 경찰서 정보과 형사와 취임 초기인 2009년 7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독대로 수차례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인권위 관련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정보과 형사와 인권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게 중론이다.
"위원장 집무실에 올라가 상당 기간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위 관계자는 "작년 시민단체의 현 위원장 취임 저지 등의 움직임이 있을 때, 경찰이 현 위원장을 경호해줘서 위원장실에 들어 간 적이 있었다"며 "이것을 계기로 이후 경비·방호를 책임지던 정보과 형사가 13층 현 위원장 집무실에 올라가 약 3개월가량 위원장과 긴 이야기를 나누며 왕래하는 것을 목격한 관계자가 다수"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정보과 형사가 드나드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후에는 비서실장을 만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초창기 위원장이 인권위 조직을 개편할 때 (인권위 소식에 밝은) 정보과 형사가 직원들 개개인의 성향을 분석한 자료를 넘겨줬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말했다.
▲ 현병철 위원장. ⓒ연합뉴스 |
정보과 관계자 "몇 번 만난 적 있다
남대문 경찰서에서 인권위를 담당하고 있는 정보과 관계자는 현 위원장과의 독대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면담 내용을 두고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정보과 관계자는 "옆에서 몇 차례 도와준 게 있어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별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며 "고생하니깐 차 한 잔 하라는 식으로 만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원장이 됐든 누가 됐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난다"며 "특별히 위원장만을 만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면담 과정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를 두고는 "말할 수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당사자의 시인에도 불구하고 인권위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김용국 인권위원장 비서실장은 "경찰과 위원장은 면담을 한 사실 자체가 없다"며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만난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김 실장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한 거라면 모르겠다"면서 "경찰이 면담을 요청해도 내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거듭 부인했다.
"과거엔 위원장실은 고사하고 사무실도 못 들어왔다"
과거에도 인권위에서 농성이 벌어지거나 집회 등이 열릴 경우 경찰이 정보 수집 차원에서 인권위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그 같은 경우에도 위원장과 단독으로 면담을 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완 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장은 "과거 현병철 위원장 이전에는 경찰이 위원장 실은 고사하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도 못하도록 했다"며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 1층 로비까지만 들어오는 걸 허락했고 인권위 직원들과 그곳에서 이야기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경찰의 인권침해 상황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위원장이 형사를 만난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허용되지 않는다"며 "인권위 내부 직원들도 이에 상당한 불만을 가진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명숙 활동가는 "직원과 정보를 교환한다는 이유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다른 직원을 만나게 했으면 되는 일인데 굳이 위원장이 독대를 통해 만났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며 "현 위원장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다. 사퇴 논란도 이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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