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원도 사퇴…"인권위 사태는 이명박 대통령 책임"

"국정감사 현 위원장 발언 듣고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국 비상임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10일 사퇴했다.

조국 위원은 10일 새벽 공개한 '국가인권위원직을 사직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작금의 인권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임기 전에 국가인권위원직을 사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인권위 역사상 유래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현 위원장은 여전히 '인권위가 잘 운영되고 있다'라고 강변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며 "본인의 임기는 12월 23일로 곧 종료되기에 조용히 물러갈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전격적인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국가권력 눈치를 보는 인권위원장의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

▲ 조국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조 위원은 "현재의 인권위 사태는 정파적 분쟁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현병철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는 '인권'의 잣대가 아니라 '정파'의 잣대를 사용하면서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방기해왔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또한 이번 사태는 현 위원장의 인권의식, 지도력, 소통능력 부재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전세계의 부러움을 받던 인권위는 이제 국내 인권단체, 전직 인권위원, 국회로부터 조롱받고 외면 받는 상황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은 "어느 국가권력과도 맞서는 인권위원장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는 인권위원장의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며 "온갖 반대와 방해를 무릅쓰고 인권위를 창설하기 위하여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을 생각하면 치욕과 통분의 감정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조 위원은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인권위원장의 임명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인 바, 현재의 인권위 사태는 이 대통령 책임"이라며 "이 대통령이 인권위 자체를 무력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면, 인권위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 위원은 "인권과 지도력은 진보와 보수를 넘는 것"이라며 "인권의식 있고 지도력 있는 보수인사에게 인권위원장직을 맡기는 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인권위원도 사임 가능성 커

조 위원은 그동안 사직서를 내는 것을 고민해오다 지난 9일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한 현병철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조 위원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미리 고민을 했지만 국정감사에서 현 위원장이 '여전히 인권위는 운영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사태를 안일하게 파악하는 현 위원장에게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사퇴를 결정했다"며 "다른 위원들과 의논하고 계획을 해서 결정한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 내에서 현병철 위원장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인사로 꼽히는 장주영 비상임 위원도 거취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위원은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퇴만이 능사는 아니기도 하고 지금 어찌할 바를 고민하고 있다"며 "추이를 지켜 보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임기를 시작한 장향숙 상임위원도 향후 거취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위원은 "장향숙 위원에게는 끝까지 남아야 된다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향숙 위원은 민주당 추천 인사다.

조국 위원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대법원장 추천으로 인권위원이 됐으며 올해 12월 23일 임기가 만료된다. 조 위원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대검찰청 인권존중을 위한 수사제도 개선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그간 현병철 위원장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인사로 분류된다.

아래는 사직서의 전문.

국가인권위원직을 사직합니다.

근래 상임인권위원 두 명의 사직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안팎에서 매서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56개 단체로 구성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시민단체 긴급 대책회의'는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4일부터 인권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9일에는 인권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야5당이 국회 본청 앞에서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촉구 정당·인권시민단체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였습니다. 전직 인권위원장 2명과 전직 인권위원 8명도 인권위의 위기를 비판하며 현 위원장의 "책임 있는 처신"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였고, 인권위 직원들도 징계 등 불이익을 감수하고 위원장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도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현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이렇게 인권위 역사상 유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현 위원장은 여전히 "인권위가 잘 운영되고 있다"라고 강변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정파적 분쟁의 결과가 아닙니다. 현병철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가 '인권'의 잣대가 아니라 '정파'의 잣대를 사용하면서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방기해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현 위원장의 인권의식, 지도력, 소통능력 부재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던 인권위는 이제 국내 인권단체, 전직 인권위원, 국회로부터 조롱 받고 외면 받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어느 국가권력과도 맞서는 인권위원장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는 인권위원장의 초라한 모습만 남았습니다. 온갖 반대와 방해를 무릅쓰고 인권위를 창설하기 위하여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을 생각하면 치욕과 통분의 감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권위원장의 임명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인 바, 현재의 인권위 사태는 궁극적으로 이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이 대통령이 인권위 자체를 형해화 또는 무력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면, 인권위의 미래를 위하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원래 인권은 진보와 보수를 넘는 것이고, 국가기구의 장관급 수장으로서의 지도력 역시 진보와 보수를 넘는 것입니다. 인권의식 있고 지도력 있는 보수인사에게 인권위원장직을 맡기는 이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위원장 교체는 반대파에게 밀리는 것이다는 식의 소아병적 조언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인권위법의 정신으로 돌아가 결단을 내리길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국가인권위원으로 이상의 사태를 막지 못한 본인의 능력과 노력 부족에 대하여 반성하며 사과드립니다. 본인의 임기는 12월 23일로 곧 종료되기에 임기를 다 채우고 조용히 물러갈 수도 있지만, 작금의 인권위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임기 전에 국가인권위원직을 사직하고자 합니다. 향후 인권위 바깥에서 인권 수호와 신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2010. 11. 10.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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